킹갓알파고님이 오셔도 제 일은 대신 못합니다 ⭐️ 어거스트 특집: 집 나간 에디터들의 생존 신고 ⭐️
오래 구독해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어거스트에는 그동안 많은 에디터들이 오고 갔습니다. 다들 본업이 있는지라 바빠지면 어거스트 활동을 잠시 쉬기도 하고, 그렇게 새로운 에디터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했어요. 그때 그 레터 썼던 에디터는 요즘 어떻게 지낼까? 궁금하셨을 분들을 위해 8월의 목요일에는 예전 에디터들의 요즘 사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해요.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피드백으로 주신 질문은 모아서 답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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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집 떠난 지 일곱 달이 지난 에디터 움큼입니다.
어거스트 뉴스레터를 쓰느라 고민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반년이 넘게 지나 생존 신고를 하러 돌아왔습니다. 8월에 어거스트 (잠시) 복귀라니 감개무량하네요.
어느새 구독자 1만 6,000명을 돌파한 어거스트 8월 특집, <집 나간 에디터들의 생존 신고> 세 번째 레터로 인사드립니다.
저는 지금도 콘텐츠를 다루지만, 미디어 업계에서는 한 발짝 떠나 있습니다. 처음 레터를 쓰던 때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로 제 업무를 소개해 드리면, 홍보와 대관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홍보....는 뭐 광고인가? 대관....은 어디 회의실 빌리는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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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보가 뭐죠? 광고만드시나요?
2. 대관은 또 뭐길래
3. 홍보와 대관의 공통점 : 팝니다, 신뢰를
4. 킹황인공지능님께서 '스팸체'는 쉽게 간파하실지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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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하면 '충주시 홍보맨' 같은 일을 하는 게 PR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21세기 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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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레터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신문 기자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7~8년간 운이 좋게 메이저 언론사에 입사해 비주류/변방부서부터 핵심/주류 부서까지 골고루 경험했죠.
그리고 지금은 기업으로 이직했습니다. 아직 학생인 분들이라면 회사 이름이 더 궁금하실 수 있겠지만, 직장인이라면 어떤 직무를 하는지가 더 궁금하실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홍보/대관 조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두 직무를 영어로 바꾸면 PR과 CR입니다. Public Relation, Corporate Relation의 줄임말이죠. 무슨 일을 하는지 감이 잘 안 오는 분도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하면 관계(Relation) 업무, 외부 이해관계자를 상대하는 것이 제 주된 업무입니다.
만나는 사람으로 설명해 드리면, PR은 언론사와 기자를, CR은 정부 및 국회 이해관계자를 상대하는 업무입니다.
PR부터 설명해 드리면, 기업에서 알리고 싶은 사업 내용을 보도 자료로 정리하거나, 기획 기사 형태로 정리해 기자들에게 제안하는 것이 주 업무입니다. 보도 자료는 우리 기업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일괄적으로 이를 배포하는 형식이고, 기획 기사는 특정 언론사의 특정 기자에게 접촉해 이런 내용을 기사화할 만한지 제안하는 형식입니다.
반대로 언론에서 우리 회사와 관련한 '단독' 보도를 하면, 다른 언론에서 우리 회사로 문의가 쏟아집니다. 이때 대응하는 것도 PR 업무입니다. 이때 대응이란, ▲사실이 맞는지를 알려주고 ▲사실 또는 사실이 아닌 것에 관해 필요한 수준까지 맥락을 더해 설명하고 ▲이때 회사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프레이밍'하는 것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 사업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고, 이를 외부에 알려도 좋은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잘 판단하여,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가 최근 미국과 협력 계획을 밝힌 조선소라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 회사가 배를 잘 만든다고 하는데 세상엔 배가 여러 가지입니다. 군에서 사용하는 군함이라면 간단한 정찰 임무를 맡은 초계함부터 본격적인 군함, 더 크게는 항공모함, 더 안 보이게는 잠수함이 있을 수 있고요. 민간에서 사용하는 배라면 큰 화물을 옮기는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 LNG운반선 등 다양한 배가 있겠죠. 이 중 어떤 배를 우리가 어떤 품질로 어떤 가격으로 잘 만들고, 그 배경에는 어떤 기술력이 있고, 우리는 과거부터 어떤 역사가 있기에 지금의 경쟁력을 갖게 됐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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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 직무를 어떻게 소개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 찾아본 <기아> PR팀의 직무 소개글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보다 훨씬 잘 소개되어 있어서,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지 또는 우측 출처를 누르시면 연결됩니다. © KIA Talent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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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PR을 잘 한다'라는 얘기를 듣기 위해서는 만나는 상대 이해관계자인 언론인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필요한 내용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저 회사(출입처) 직원이 나와서 자기 회사 좋은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 인식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서비스를 잘 제공하는 회사라도, 그 기업 소개가 칭찬 일색이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런 만큼, 긍정적인 사실을 얼마만큼 부담스럽지 않게 잘 전달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앞서 충주시 홍보맨을 언급 드린 것처럼, 기업 또는 기관이 하는 일을 잘 알려 긍정적인 인식을 조성하는 것이 PR, 홍보 직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TV나 유튜브, 신문 광고 등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즉, 기업 PR/홍보 직무는 광고도 '도구(tool)'로 씁니다. 긍정적인 대중(Public)의 인식(Relation)을 잘 만들기 위해 광고도 사용하는 것인 만큼, 어떤 면에서는 PR이 광고보다 더 넓은 개념이기도 합니다.
물론 광고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제일기획, 이노션, 대홍기획 등 기업도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일하시면 광고 제작이 그분의 직무일 수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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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 업무'가 회의실이나 시설을 빌리는 업무는 아닙니다... © 부산문화회관의 대관 신청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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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이라는 말은 생소한 분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대관(對官)은 정부 등 공공부문(관)을 상대(대)한다는 의미입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정부 관련 업무를 한다고 해서 GA(Governmental Affairs)라고 부르는 곳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통상 영어로는 CR(Corporate Relation)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럼 '기업 관계'는 무슨 직무인가? 사실 CR은 어떤 일을 하는지 감추기 위해 만든 말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을 하는지, 드러내놓고 알리기 조심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이죠.
CR은 크게 두 종류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정부와 국회입니다. 앞서 PR에 관해 소개해 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하는 일의 성격은 비슷합니다. 제가 PR과 CR을 함께 맡은 이유이기도 하죠. 회사에 관해 상세히 파악하고, 대내외 환경을 고려하여 최적의 의사소통을 하는 측면에서는 PR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나쁜 일은 막고 좋은 일은 알리는 거죠. 차이는 누구를 만나느냐입니다.
마찬가지로 조선 분야 기업에 다닌다고 가정해 볼까요. 정부 주요 부처는 대관 담당자가 만나야 하는 핵심 이해관계자입니다. 일단 조선 분야 산업정책을 관장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조선해양플랜트과가 주요 이해관계자입니다. 정부는 별걸 다 물어봅니다. 지금 업황은 어떤지, 최근 해외 해운사와 공급계약 맺었던데 제대로 된 계약은 맞는지. 앞으로 업황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이요. 조선해양플랜트과를 통할하는 제조산업정책관(국장)과 산업정책실장(1급)은 물론이고, 그 위의 산업 1차관까지도 크게 보면 만나야 하는 카운터파트입니다. 물~론 차관 이상 고위공무원은 거의 회사 대표님 정도 돼야 만날 수 있습니다.
정부 관계자를 만나는 이유는 회사가 추진하는 사업을 위해 필요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회사를 지원할 정책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꼭 '007' 가방에 수억 원의 현찰을 넣어 다니며 공무원에 뒷돈을 먹이는....것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그려지는 것 같은데요. 현실에서는 당연히 그런 짓은 못합니다. 특히 대기업이면 더더욱 그렇죠. 이보다는 기업이 우리 경제, 산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할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ex. 매출, 고용, 외화벌이 등) 이를 위해 다른 나라에서 벌이고 있는 지원책과 국내 환경을 비교하여, 혹시 부족한 면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입법을 추진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하고 제안하는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한 일만 하지는 않고, 수많은 규제와 제도 신설 및 수정에 대해 셀 수 없이 검토하고 의견을 제출해야 합니다. 업종에 따라 규제 한 줄, 숫자 몇 자가 수십억 원씩 이익을 늘리거나 줄이기도 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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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음험해보이는 측면이 있어 고민했습니다만, 특별히 틀린 내용은 또 아닌 것 같아 공유드립니다. 007 가방에 현찰은 못넣어다녀도,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밥 정도는 삽니다. 마찬가지로 이미지 또는 우측 출처를 클릭하시면 이동됩니다. ©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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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만나야 할 곳은 많습니다.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이나 파업과 관련해서는 고용노동부를 만나야 하고, 조선산업이 처한 위기와 관련해 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도 만나야 하는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반독점 규제의 대상이 될 일이 생긴다면 공정거래위원회도 만나야 하고요, 외국인 노동자 규제는 법무부 소관이고, 그 외에 환경규제를 주관하는 환경부, 사업장이 속한 지자체, 기업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단체나 시민단체까지도 만나야 하는 상대가 됩니다. 협·단체(조선해양플랜트협회 등)나 교수진(대한조선학회 등)도 만나야 하죠. 기업 활동을 위해 필요한 모든 정책 환경 조성과 관련된 사람들이 업무 카운터파트이니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국회도 빠트리면 안 되는 핵심 대관 이해관계자입니다. 국회의원과 그 밑의 보좌진(보좌관 비서관 비서 등등)이 모두 만나야 할 대상입니다. 국회의원이 부처나 기업에 질의를 하는 경우 기업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고, 기업에 도움이 되는 법, 가령 조선산업 진흥을 위한 특별법! 같은 걸 만들고자 할 때 입법부의 공감대가 필수적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기업 CR 인력은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모두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제 누가 우리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지 모르고, 언제 누가 공격의 칼날을 들이댈지 모르니까요. 물론 국회의원은 평범한 CR 담당자가 만나기 어렵습니다. 최고위 임원은 되어야 겨우 만날랑 말랑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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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그룹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 해체를 선언하면서 대관 조직의 해체도 발표합니다. 대관 조직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최서원(aka 최순실) 등과 논의가 됐기 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사도 대관 업무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링크를 남깁니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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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와 대관의 공통점 : 팝니다, 이름이 주는 신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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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인지 광고인지 로비 머시깽이인지, 그래서 뭐 하는 사람이냐고요? 저를 팝니다. 움큼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팔아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삽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두 직무는 공통적으로 관계(Relation)가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거예요. 업무로 처음 만난 다른 회사 사람이 하는 말이 처음에는 '엥 그게 말이 되나' 싶었다가도, 이 사람과 여러 차례 미팅을 거듭하며 서로 믿음이 생긴 덕에 그 사람이 말하는 정보와 해석에 대한 신뢰가 생긴 일이요.
그러다 보니 하는 일도 사람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밑 작업이 많습니다. 시시콜콜하게 회사 굴러가는 얘기로 시작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까지 도달하려면 준비할 게 많거든요. 저의 일과를 소개해 드리면 대략 감이 오실 것 같습니다.
- 08:00 출근
- 09:00 (있으면) 보도 자료 배포 후 문의 대응 (PR) - 10:00 회의 (PR/CR)
- 11:30 외부 점심 미팅 (PR/CR)
- 14:00 회의 (PR/CR) - 15:00 외부 미팅 (PR/CR)
- 17:00 (있으면) 보도 자료 배포 반응 보고 (PR) - 18:00 외부 이해관계자 동향 보고 (PR/CR)
- 18:30 외부 저녁 미팅 (PR/CR)
물론 매일이 이렇지는 않지만 대략 참고용으로 표현해 봤습니다. 매일 보도 자료를 배포하는 것은 아니고, 매일 '단독' 기사가 나오는 것도 아니기에 그날그날 얼마나 외부 문의를 받느냐는 정말 매일 다릅니다. 다만 점심 미팅은 한 달 실근무일 22일 기준 18~19회는 잡아두는 것 같아요. 점심은 네트워크 형성의 기본이니까요!
외부 이해관계자 미팅을 준비하기 위한 내부 회의도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하는 것 같아요. 자료 작성은 다른 보고서 작성과 비슷합니다. 제가 작성하면, 팀장님이 검토해 주시고, 임원 보고 후 외부 제공되는 식입니다. 짧으면 15분 길면 두 시간씩 회의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내보내는 메시지는 회사의 공식 입장인 만큼, 이를 회사 내부 다른 부서 이를테면 재무나 전략, 인사, 각 사업 부문에 문의해 이 내용을 이렇게 제공해도 되는지 의견 검토를 구해야 합니다. 정리된 자료는 이메일이나 카카오톡으로 제공하기도 하지만 직접 만나 뵙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 밖으로 나가는 일도 잦은 편입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을 보면 '아 우리 회사에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던 것 같네? 근데 그 사람이 하는 일, 인기 없지 않나?'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이직에 전직까지 해가며 힘들게 따낸 자리이지만, 사실 신입사원들에게 이 PR/CR 업무는 굉~~장히 인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업들도 사내에서 이 업무를 할 사람을 구해다 쓰기보다는 그냥 외부 경력직을 뽑아다 쓰는 경우가 많아요. 저처럼요.
PR이든 CR이든, 어디 가서 목 빳빳하게 힘주고 돌아다닐 일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PR과 CR 인력이 상대해야 하는 이해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우리 회사를 힘들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언론사는, 우리 기업에 관해 부정적인 기사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같은 사실을 두고도 이를 비판할지 아니면 긍정적으로 볼지는 전적으로 언론사의 결정입니다. 정부 관계자(공무원)나 국회는 더합니다. 이 사람들은 기업에 꼭 필요한 조치를 해줄지 말지를 법, 시행령, 규칙 등을 통해 결정할 수 있고, 이와 반대로 기업에 막대한 부담이 되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기업들이 두손 두발 다 들고 반대하는 노란봉투법 같은 것들이 사례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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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기자 같지도 않은 걸 넘어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더피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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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이 PR/CR 직무를 싫어하는 이유는 워라밸인 것 같아요. 일이 생기면(ex. CEO 국감 소환) 급하게 전화 통화에 시달리거나, 설명 자료를 작성하거나 국감 소환하려는 이유와 관련해 사실관계를 잘 정리한 문서를 급하게 작성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많이 줄었다고들 하지만, 저녁 술자리에 불려 나가는 일이 잦다는 이미지도 있고요.
이보다도 더 큰 이유는 '을'의 입장이 되기 싫어서, 라고 생각합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스펙 열~심히 쌓아서 대기업 직원이 된 나! 그런데 현실은 상대방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이해관계자에 '굽신굽신'해야 하는 는 을?! 영업이나 마케팅, 기획, 재무, HR 등 다른 직무도 다 '을'이 되는 순간은 있기 마련이지만 상대적으로 PR/CR은 '을질'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인상이 강한 모양입니다.
직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직무인 것도 영향을 끼칩니다. PR은 그나마 '홍보팀' 정도로 통칭되기라도 하지, CR은 '대관'이라는 말이 있음에도 조직에는 이 이름을 대놓고 붙이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사업 지원' 정도의, 정체를 알기 어려운 말을 조직명에 붙이곤 합니다.
왜냐하면, 좀 그렇잖아요. 기업이 정부나 국회 사람들을 만나서 자기들 얘기를 하고 돌아다닌다는 게. 그 자체가 지저분하거나 하면 안 되는 일 같은 게 절대 아닌데, 오히려 잘하는 게 매우 중요하고 잘 해야 하는 일인데도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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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황인공지능님께서 '스팸체'는 쉽게 간파하실지라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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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구독자님들께 보내드린 레터 제목은 <인공ヌㅣ능✒ 도입ㅇㅔ✿도 사✿ㄹr♛ヌㅣヌㅣ♝ 않을 직업?❦ >이었습니다. 이 제목은 스팸체 생성기라는 사이트에 "인공지능 도입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을 입력한 결과물입니다. 요즘은 인공지능이 워낙 발달해서, 이런 텍스트가 어떤 의미인지 바로 파악하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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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갓 GPT님께서는 이 정도는 1초컷 내십니다.
보도자료 같은 글도 굉장히 잘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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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일하다 이 일을 하며 제 장점은 글을 빠르고 정갈하게 작성하는 능력과, 복잡한 일을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해 왔는데요. 이런 제 특장점은 인공지능 앞에서는 사라지기 딱 좋은 수준에 불과하더라고요.
빠르게 자료 초안 뽑아내는 건 3~4년 일한 직원보다 AI가 정말 훨씬 나은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가 원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담고 대내외 위험 요인을 고려해 글을 쓰는 능력은 당연히 제가 더 우위에 있지만요. 그럼 글쓰는 능력과 자료 파악 외에도 제게 강점이 남아있나 고민해봤더니, 있더라고요. 바로 사람을 만나서 신뢰를 얻는 능력입니다.
구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인공지능이 당신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는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하셨거나 그러기 어렵다고 생각하셨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이 홍보/대관 업무는 인공지능이 절대 대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신입사원들이 회피하는 이유로 꼽은 것들은 대부분 사실입니다. 필요하면 찾아가서 빌고, 술상무도 뛰어야 하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내가 다니는 직장에 막대한 손해를 입힐 수도 있는 피곤한 업무입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언제나 피곤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 피곤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사람뿐입니다. 카톡 친구 5,000명을 돌파할 정도로 많은 사람을 만나며 만들어온 저만의 톤 & 매너는, 5,000회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더욱 잘 갈고닦아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유하자면, 인간 빅데이터를 쌓아서 사람 상대를 잘하는 거죠, 마치 인공지능처럼이요.
인간 빅데이터로 단련된 저는, 저라는 사람을 잘 팝니다. 아주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요. PR과 CR 모두 내가 어떤 정보를 주고받는가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믿을 수 있느냐'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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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선생님께서는 명언을 남기고...(후략)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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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를 통해 제가 달성할 수 있는 가치는 제가 다니는 회사를 더 사랑받는 회사로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회사가 사랑받으려면 사업도 잘하고, 나쁜 짓도 안 하고, 사회 공헌도 열심히 하고 다 중요하지만 이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니까요.
이해관계자들이 회사에 대해 오해하거나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발로 뛰고. 회사에 돌아와서는 회사가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이해관계자의 경고나 시선을 전하는 일. 그렇게 회사의 이미지를 안과 밖과 협력해 만들어 나가는 일. 그게 제가 생각하는 PR, CR 업무입니다. 그 과정이 곧 회사의 다양한 리스크를 관리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회사가 잘 된다면 저를 기억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뼈 빠지게 일해서 리스크를 잘 관리하고 사랑받는 회사로 키워낸 덕택일 테니까요. 회사가 망했다면 아마 저는 욕을 먹을 겁니다. 발에 땀이 나도록 뛰었지만 이해관계자 또는 회사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탓일 가능성이 상당할 테니까요.
뉴스레터를 보내지 못하는 사이, 이런 언성 히어로(Unsung Hero)로 일하고 있는 움큼이었습니다. 어때요, 인공지능이 널리 보급돼도 망하지 않을 만하지 않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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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복 있는 자들' 소설 당선자 길란(필명, 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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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움큼>의 코멘트
예전부터 이상문학상이나 젊은작가상 수상집은 챙겨보던 편이었는데, 요즘은 일에 치이느라 통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은 우연히 링크를 공유받아 읽었는데, 진행이나 문장이 매끄럽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석적으로 잘 장치화한 인상이었습니다.
불쾌한 소설, 몰입감 있게 읽었습니다.
이렇게 긴 제 레터를 다 읽은 분이라면 아마 재밌게 금방 읽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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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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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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