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적인 키워드를 발견하긴 했지만, 사실 두 책이 각자 지향하는 지점은 좀 달라요. ⟪에디토리얼 씽킹⟫의 최혜진 작가는 잡지 에디터로서 커리어를 시작했기에 시각적 자료를 활용하여 설명한다거나 다양한 자료를 종합적으로 구성하는 측면을 많이 다루고 있고요. ⟪에디토리얼 라이팅⟫의 이연대 작가는 책과 피처기사를 주로 작성해 왔기에 논픽션 책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도움이 될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해요. 어휘나 동사, 부사 등을 활용하는 방법과 같이 구체적인 글쓰기를 이야기하고 있죠.
저는 두 책 모두 인상 깊게 읽었고, 동시에 제가 글을 쓰고 편집하는 방식에 대입해서 생각할 수 있었는데요. 어거스트에 에디터로서 레터를 발행해오기도 했지만, 최근 객원 에디터의 레터를 윤문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동시에 지난 몇 년간 계속 레터를 써왔기에 나름대로의 체크리스트를 만들게 되기도 했고요. 어거스트의 예시와 함께 제가 레터를 쓰며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들을 이야기해 볼게요.
- 콘셉트와 관점 잡기
먼저, 주제는 시의성과 차별성을 모두 고려해서 선정하는데요, 그래서 두 책에서 이야기했던 지점에 100% 공감했습니다. 제가 주제를 선정할 때 하는 질문은 두 가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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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를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시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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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글을 구독자가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차별성)
항상 강한 확신을 가지고 답변하진 못하더라도, 둘 중 하나라도 끄덕일 수 있는 주제라면 좋은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시의성은 평일 아침 7시 30분에 발행되는 뉴스레터라는 매체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꼭 필요한데요, 시의성만을 고려한다면 사실 소재적인 측면에서 아주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소재라도 딱 한 끗만 다르면 참신해질 수 있어요.
내가 다루려는 소재를 다른 소재와 연결해 새로운 조합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고, 일반적으로 다뤄지는 것보다 한 뼘 더 깊이 들어가서 상세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아예 한 발짝 물러서서 더 큰 흐름을 조망할 수도 있겠죠. 최근 오리진 에디터의 ‘바쁜 나날 속, 어떻게 마음을 돌보고 계신가요’의 레터는 사람들이 AI 챗봇과 고민 상담하는 경향이 늘었다는 것을 디지털 멘털 케어 서비스라는 씬으로 확장하여 살펴본 케이스입니다. 이런 식으로 같은 소재라도 무궁무진하게 다른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레터 아카이브가 쌓이다 보니 다뤄지는 주제가 이전 레터와 연관되는 경우도 많은데요. 이럴 때는 n년 전에 기존 레터에서 다룬 내용과의 차별점도 필요합니다. 단순히 과거와 달라진 점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아예 이전 레터에서 짚지 않았던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간다면 더 차별성이 있겠죠.
- 잘 읽히는 구조 만들기
어거스트는 기본적으로 에디터가 주장을 드러내는 글을 쓸 것을 권장합니다. 그리고 프레임의 측면에서 이 주장이 레터에 잘 드러나도록 구조화할 필요성이 있어요. 이 때, 앞서 두 책에서 논했듯 독자의 관점에서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흐름을 고려해야 합니다. 독자가 제목을 보고 클릭한 순간, 이 주제에 대해 가장 알고 싶어할만한 내용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버무려 전체 레터를 하나의 흐름으로 구성하는 것이죠. 인트로를 읽으며 주제에 대한 감을 잡고, 본문을 통해 에디터의 논리를 따라오다가 마지막에는 에디터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어거스트 레터는 보통 서너 개의 파트로 구성되는데요. 저는 하고 싶은 메시지를 가장 마지막에 두고 앞의 파트들은 그 논지를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을 쌓는 데에 활용하는 편이에요. 가장 최근 발행했던 데이터센터의 문제를 다룬 레터에서는 데이터센터 관련 현황 → 당면한 문제 → 이에 대한 빅테크의 대응과 그 한계에 대한 흐름으로, 제가 주장하는 바까지 독자가 함께할 수 있도록 배경을 차근차근 설명했어요.
또는 독자가 궁금해할 것 같은 순서로 구조를 짜기도 합니다. 팟캐스트를 다룬 레터에서는 현재의 인기 → 인기를 얻게 된 배경 → 국내 현황과 같은 흐름으로 구성했는데요, 첫 번째 파트를 읽으면 '왜 인기가 많지?' 하는 질문이 들고, 그 이후엔 '그럼 우리나라는?' 하고 궁금해질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물론 한번에 구조를 잘 짜는 것은 어렵습니다. 저도 처음엔 아주 미숙했는데, 이건 확실히 많이 하면 늘더라고요! 처음 짠 흐름대로 글을 일단 쭉 써본 후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잘 드러났나 점검해 보면서 고치면 됩니다. 비록 시간은 배로 들더라도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다음엔 시간을 덜 쓰고도 구조화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이 레터에서 책의 내용을 먼저 정리하고 그 뒤에 제 방식을 적는 것으로 구조화하였습니다. 제 머릿속에선 책의 내용과 제 방식을 번갈아 제시하는 것보다 더 이해하기 편한 방식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구독자분들의 생각은 다르실 수도 있지요… 그럴 경우 다음 번엔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며 고쳐보고요.
무엇보다도 에디터의 글은 설득하는 글이기 때문에 각 파트에서 나의 논지가 충분히 설득될 만한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주장만 던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적절한 근거와 함께 수치와 데이터를 제공해 주고, 내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이 지적할 부분을 찾아 보완해야 합니다. 만약 생소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용어나 개념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곁들여 보고요.
- 독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아무리 구조를 잘 짜고 논리를 탄탄히 해도, 결국 독자가 이해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겠죠. 내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제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A가 인기가 많던 시기와 인기가 없던 시기가 계속 번갈아 나타났을 수 있습니다. 이를 시계열적으로 언제는 인기가 많았고 언제는 인기가 적었고 다시 언제는 인기가 많아졌다는 식으로 적는다면 독자로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A가 인기가 많다고 해야 할지 없다고 해야 할지 헷갈릴 테니까요.
그렇다면 에디터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을 기준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A가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졌다는 부분이 중요한 것인지, 아닐 때도 있었지만 A가 인기가 많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혹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서 A의 인기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지를 먼저 고려하고, 그에 따라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글을 정리해야 합니다.
충분히 구체적으로 적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예시가 없으면 설득이 잘 안 될 수도 있고,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거든요. 레터의 메인 소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사례는 새로 알아가는 기회가 될 것이고, 이미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 주장에 공감하고 신뢰하는 근거가 될 거예요. 예시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면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높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이 부분에 대한 중요성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최근 Zoe 에디터의 ‘눈 떠보니 어느 날 내가 팀장? 😱’ 레터는 갑자기 팀장이 되어 퇴근하지 못하는 일상에 대한 묘사로 시작했습니다. 초반에 확 몰입해서 들어가다보니 Zoe 에디터와 함께 좋은 팀장이란 뭘까? 하고 자연스럽게 같이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자기 객관화를 다루었던 정아 에디터의 레터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요, 당장 시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예시는 독자가 에디터의 논지로 쉽게 넘어올 수 있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죠.
결국 에디터가 쓰는 글은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는 글입니다. 다 읽었을 때 독자가 어떤 생각을 하면 좋을지, 내가 결국 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잘 드러나는지 한 발짝 떨어져 조망하면서 필요 없는 부분을 덜어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내가 보는 세계를 독자들도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독자가 걸어올 수 있는 맥락을 잘 쌓아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