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전환과 그 이후 이직 스토리
요니 "참외 샐러드에 중독되었습니다. 참외를 좋아하신다면 꼬옥 드셔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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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객원 에디터 요니입니다.
이번 달은 첫 이직을 하고 딱 1년이 되는 달입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이직이 흔해진 시대라지만, 저는 첫 회사에서 7년을 보내며 한 번의 포지션 전환만 경험했고, 이직 역시 8년차에 처음 해봤어요. 한 줄로 요약하면 아주 평범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험했고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저만의 길을 만들어가며 겪은 개인적인 경험과, 그 안에서 얻은 나름의 인사이트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최근 커리어에 대한 레터를 자주 발행했는데요, 다들 공감하는 피드백을 많이 보내주셔서 어거스트가 다뤄볼 두 번째 테마로 고민 중에 있어요. 조만간 정규 코너로 찾아오려 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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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면, 한 걸음씩 옆으로
2. 나의 ‘반반 커리어’ 어떻게 팔았냐면요
3. 모든 전략은 나로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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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일의 의미에 대해 언제부터 진지하게 고민해 보셨나요? 저의 경우 직장인 3년 차 무렵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저의 커리어 시작점은 모 유통사 온라인 영업 관리자였습니다. 처음 취업하던 2017년 당시 아직은 유효하던 신입 공채 전형으로 입사해, 문과 졸업생이라면 으레 맡게 되는 영업·마케팅 직무에 배치되었죠. 인턴 경험도 없이 처음 시작한 회사 생활의 첫 2년은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좌충우돌 부딪히며 배우는 시기였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조차 모른 채, 나를 받아주는 곳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정신없는 나날들이었습니다. 매일 매출을 분석하고, 입점사와 소통하고, 수많은 엑셀 장표와 보고서를 만들다 보니 어느 순간 일에 대한 나름의 관점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연차가 쌓이면서 일에 대한 가치관은 점점 명확해졌습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자리 잡아 가며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 활동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성취를 얻는지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 직무를 계속해 나가는 게 맞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역량에 대한 점검, 영업 관리자라는 직무의 전문성에 대한 의문과 산업 전반에 대한 회의감까지 한 데 뒤섞여 굉장한 커리어 사춘기를 겪었었죠.
퇴사하고 중고 신입으로 도전해 봐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다다랐지만 무작정 퇴사할 용기가 없었던 저는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 보기로 했습니다. 단, 여기서 무턱대고 재미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저의 커리어 옆걸음질을 탐색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 고민의 시작점은 결국 저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성과를 냈고, 무엇에 흥미를 느껴왔는지를 찬찬히 돌아보며 대학 시절과 사회 초년생의 경험을 기반으로 네 개의 키워드를 도출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어떤 키워드를 중심축으로 삼을지 우선순위를 정했죠.
✅ 커리어 의사결정을 내릴 기준을 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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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첫 커리어였던 유통사 온라인 영업 관리자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유통’ 산업과 ‘온라인’ 채널에 흥미를 느끼고, 이를 기반 삼아 여러 방향으로 커리어를 확장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 또, 중국 어학연수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중국 시장 대상으로 인기 있던 화장품 브랜드와 협업하며 일했던 경험은 ‘글로벌’과 ‘화장품’이라는 키워드로도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총 네 가지 키워드 중에서도 확장 가능성, 흥미, 시장 경쟁력 등의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세웠습니다. 그 결과, 앞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는 시장 환경(글로벌)이나 취급 품목(화장품)보다는 산업(유통)과 채널(온라인)을 중심에 두기로 했습니다. 저만의 커리어 의사결정 프레임워크를 세운 것이죠.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저의 경험을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실제로 이 기준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도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후 여러 커리어 결정을 할 때도 이 기준이 흔들림 없는 방향타가 되어 주었고요.
이 프레임워크를 바탕으로 퇴근 후와 주말에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업계와 최신 기술을 주제로 한 독서 모임에서 참여하고, 그곳에서 만난 분들과 스터디 모임을 꾸려 1년 이상 운영하기도 했어요. 웹 개발 강의를 듣고 직접 간단한 서비스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파이썬과 SQL을 활용한 데이터 분석 강의도 수강했습니다. 이 모든 시도는 개발자나 데이터 분석가라는 새로운 직군을 탐색해 보기 위한 과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어느 방향으로 옮겨가야 하는지 더 분명히 알게 된 경험이었죠.
당시 사업부에서 새롭게 시작하던 대형 프로젝트에 영업과 운영을 잘 아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필요했습니다. IT 업무에 관심을 두고 꾸준히 배우고 있던 저를 눈여겨보던 상사가 저를 그 자리에 추천해 주었고, 그렇게 만 4년을 기점으로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저는 제자리에서 헤매고 있는 게 아니라 옆으로 천천히 방향을 틀고 있었던 거였어요. 그리고 그 옆걸음은 결국 커리어 중심축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어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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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기획자로서의 시작은 제법 부드러웠습니다. 이전의 업무 경험을 살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후, 사업부 내 IT팀으로 발령을 받아 본격적으로 서비스 기획을 하게 되었죠. 기획 업무 자체는 처음이었지만 운영 경험이 많고 시스템 이해도가 높았던 터라 기술적으로 복잡하거나 큰 규모의 프로젝트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글로벌 대상 프로젝트, 조직 간 협업이 많은 과제 등 넓은 스펙트럼의 업무를 하며 서비스 기획자와 IT 세계에 대해 하나씩 배워갔고, 그 과정속에서 또 다른 갈증이 자라나기 시작했어요. ‘내가 이 일을 앞으로 더 잘하려면, 어떤 경험들이 더 필요할까? 그리고 두 가지 경험이 섞여 있는 나의 반반 커리어를 앞으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 장기 방향성을 고려한 우선순위를 설정한다.
이직 프로세스에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어떤 회사에 지원할지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했습니다. 원하는 여러 조건을 기준으로 세우고, 그 기준에 얼마나 충족했을 때 정말 옮겨갈 것인지 미리 정해두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언제 이직을 포기하고 현 회사에 머물지도 기준이 필요했고요. 그래야 지난한 이직 과정에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원한 회사에 합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그곳으로 갈 것인지, 옮겨간 후의 커리어가 내가 처음에 의도한 방향과 맞는지도 명확히 해야 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첫 회사는 전형적인 워터폴* 방식의 프로젝트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 워터폴(Waterfall) 방법론: 폭포수 방법론이라고도 불리며 각 작업이 폭포처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순차적인 개발 방법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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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 안에서도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기획자로서의 시장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조직 문화와 프로덕트 개발 방식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기획자로서의 경험이 많지 않으니 당장에 직급을 높인다든가 연봉을 점프할 수 있는, 물질적인 성과가 있는 이직보다는 직군 전문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조직을 찾아가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래와 같이 두 단계의 티어를 나눠 기준을 세웠습니다.
- Tier 1: 태생부터 IT인 회사의 프로덕트 조직
- Tier 2: 전통적인 기업이지만 IT 조직 구조를 도입하거나 전환 중인 기획 조직
이 기준에 따라 회사들을 리스트업하고, Tier 1 기업부터 하나씩 지원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어요. 제 전략에, 중요한 기준 하나가 빠져있었다는 것을요.
✅ 이전 직무 경험이 강점으로 작용할 조직을 찾는다.
Tier 1 기업에서 반복되는 서류 탈락을 겪은 뒤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태생부터 IT를 했던 회사들은 내가 이전에 쌓아 온 영업 관리자 경험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나름 다양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저의 이력은 IT라는 명확한 정체성을 가진 기업들 앞에서는 오히려 애매하게 얕아 보일 수 있는 커리어 패스였던 거예요.
아픈 탈락의 연속 이후 얻은 인사이트로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내가 쌓아온 영업 경험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회사에 집중해 보기로요. 특히 영업이나 운영 현장에 대한 맥락 이해가 중요한 조직, 그리고 기획자와 현장이 긴밀히 연결되는 조직을 다시 타겟으로 삼았습니다. 이후 저는 전통적인 유통 기업의 서비스 기획 포지션에 지원했고, 갑자기 면접 제의를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내가 시장에서 팔리는 지점에 가깝게 조준할 수 있게 된 거죠.
사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당연한 일이긴 합니다. 7년 경력이 있는데 그중 4년은 영업 관리자였고, 3년만 기획을 한 사람의 이력서는 그 깊이가 얕아 보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원래 그토록 원하던 1티어의 IT기업에 미련을 버리고 나와 시장의 니즈가 교차하는 지점을 찾게 되었다는 점에서 꼭 필요했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전 직무 경험을 오히려 장점으로 내세워 본다.
전략을 바꾼 뒤, 저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그리고 면접 안에서 저 자신을 조금 다르게 구성해 보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서비스 기획자로서 해본 일’만 강조하는 대신, 운영과 시스템, 비즈니스를 동시에 이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획을 어떻게 해석하고 실행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어요. 프로젝트를 단순히 나열하는 대신, 프로젝트마다 ‘왜 이 일이 필요했는가’, ‘그 안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맥락을 담았습니다. 내 커리어는 비선형적이더라도, 그 흐름 안에서 스스로 방향을 찾아온 사람이란 점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면접에서도 나의 관점과 판단이 나의 백그라운드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면,
- 나의 경험을 통해 어떤 관찰을 할 수 있었고
- 유관 부서와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었던 과정
- 그리고 그 결과로 무엇이 변했으며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가
와 같이 나라는 사람의 배경과 캐릭터가 더 드러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했었어요.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그 배경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지금과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가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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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원해 최종 합격하게 된 2티어의 조직에서 꼬박 1년을 보낸 지금, 사실 처음에 제가 생각하고 있던 일들을 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즐겁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조직에서 짜릿한 성취감도, 파고드는 자괴감도 느껴보며 지금 단계에 필요한 커리어 고민을 해 나가고 있어요.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기획을 잘하는 사람을 넘어서 질문을 잘 던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어떻게 성장할까 하는 거예요. 연차가 쌓이고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단순히 답을 찾는 것보다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하고 실행에까지 옮기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오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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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을 준비하면서 수도 없이 인터넷 검색을 해봤어요. 나 같은 루트를 걸은 다른 사람은 없나? 절반 정도는 다른 직무로 일했던 사람 혹시 있지 않을까? 나 같은 사람들은 어느 회사로 가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이직 케이스일까? 불안한 마음에 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고, 링크드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프로필을 검색해 보았어요. 링크드인에서 ‘유사 경력자’를 검색해 프로필을 캡처해 두고, 몇 년 차에 어떤 커리어 전환을 했는지 벤치마킹해 보기도 했어요. 5년 차 영업에서 프로덕트 오너로 직무를 전환한 분, 10년 차에 플랫폼 운영에서 데이터 전략 기획으로 넘어간 분… 그렇게 수없이 사람들의 경로를 비교해 가며 희망도 얻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겪고 뒤돌아보니 알겠더라고요. 그들의 루트는 그들의 조건과 타이밍, 선택의 총합이라는 것. 결국 중요한 건, 나라는 사람의 경험을 어떻게 연결하느냐는 점이더라고요.
지금까지 가장 크게 워킹했던 전략은 ‘나만의 기준을 만든 것’이었어요. 유통, 온라인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커리어의 방향 축을 세운 것,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어떤 회사에 지원할지를 명확하게 정의했던 것. 선택의 기준이 될 뿐 아니라, 저의 이력서, 포트폴리오, 면접에서 말하는 방식도 이러한 기준들을 은연중에 반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처음에 Tier 1 기업만 바라보고 ‘내가 원하는 것’만 생각하고, ‘기업이 원하는 것’에 대한 전략 없이 지원을 시작했던 건 아쉬운 점이긴 해요. 내 이력이 어떻게 보일지, 이 조직에선 무엇이 중요할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었습니다. 내가 취업 시장의 제품이라는 관점으로, 내가 가진 것 중 무엇이 ‘팔릴 수 있는 지점’인지 찾는 것이 중요했고, 그걸 제대로 인식한 후부터야 방향이 맞춰졌거든요.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혹시 지금 커리어의 방향을 두고 고민하고 계신 분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작정 퇴사하지 말자’, ‘이직이 곧 정답은 아니다’ 같은 이야기 말고, 저는 내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먼저 찾아보라는 말씀을 해드리고 싶어요.
그게 키워드든, 타임라인이든, 프로젝트 하나든 상관없어요. 그 조각을 하나하나 연결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정리되지 않았던 길들이 흐름이 되고, 비선형적이었던 여정에도 나만의 맥락이 생깁니다. 그렇게 생긴 맥락이 결국은, 다음 기회를 만나게 해줄 가장 강력한 내 포트폴리오가 되어줄 거예요. 저의 이야기가 그런 조각을 발견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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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요니>의 코멘트
페스티벌 무대를 보고 나서 그녀의 노래가 새롭게 좋아졌습니다. 사브리나 카펜터의 팬들이 핑크색 패션 아이템과 키스마크 타투 스티커를 붙이고 일제히 모이는 모습을 보고, 나도 미리 알았더라면 동참했을텐데! 하는 뒤늦은 후회를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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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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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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