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포던스'로 플랫폼 이해하기
장희수 6월을 1월처럼 대합니다. 새로운 계절은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대하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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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장희수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플랫폼을 엽니다. 인스타를 넘기고, 단톡방에 메시지를 던지고, 챗봇에게 질문을 하죠. 혹시 밀어야 하는 문 앞에서 손잡이를 잡고 당겨본 적 있으세요? 잠깐 머쓱하지만, 사실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문이 “당기세요”라고 잘못 말한 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매일 쓰는 앱들도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습니다. “이걸 누르세요”, “여기 더 머무세요”, “이건 공유하세요.” 다만 문손잡이만큼 눈에 띄지 않을 뿐이죠.
제가 연구하는 큰 갈래 중 하나가 소셜미디어와 AI 플랫폼인데요, 오늘은 이 ‘보이지 않는 말 걸기’를 알아채는 도구 하나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바로 어포던스(affordance)라는 개념인데요.
미리 말해두면, 이건 연구자만 쓰는 어려운 도구가 아닙니다. 앱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운영하는 사람에게도, 그냥 매일 앱을 쓰는 우리 모두에게도 쓸모가 있어요! 한번 손에 익으면, 끌려다니던 화면을 내가 거꾸로 읽어내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소개해볼까 하는데요. 이 개념을 유용하게 느끼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면 전 제 소임을 다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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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플랫폼을 보는 렌즈: 어포던스
2. 플랫폼이 우리에게 권하는 것들
3. 이 개념을 붙들면서, 요즘 제가 생각하는 세 갈래
4. 그래서, 이 개념은 누구에게 쓸모 있을까
5. 어포던스를 통해 플랫폼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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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포던스" 개념의 뿌리는 생태심리학입니다. 1979년 생태심리학자 제임스 깁슨(James Gibson)이 처음 제안했어요. 깁슨의 통찰은 이거였습니다. 어떤 사물의 의미는 사물 안에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생물과 환경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생긴다. 예를 들어 평평한 바위는 사람에게 “앉을 수 있음”을 제공하지만, 작은 곤충에게는 그렇지 않죠. 같은 바위라도 누구와 관계 맺느냐에 따라 권하는 행동이 달라집니다. 어포던스는 사물의 속성이 아니라 관계라는 것, 이게 출발점입니다.
이 개념을 디자인의 세계로 끌어온 사람이 인지과학자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입니다. 1988년 책 《디자인과 인간심리》에서 그는 잘 만든 사물은 설명서 없이도 어떻게 쓰는지를 스스로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그 유명한 문 손잡이 이야기가 노먼의 것이에요. 평평한 판이 달린 문은 “미세요”라고 말하고, 둥근 손잡이가 달린 문은 “당기세요”라고 말합니다. 아무도 안 가르쳐줬는데도 우리는 생김새만 보고 행동합니다. 만약 밀어야 하는 문 앞에서 자꾸 당기게 된다면, 그건 사용자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디자인이 잘못된 신호를 보낸 것이다! 노먼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플랫폼 연구자들이 이 렌즈를 디지털 세계로 들이대기 시작했습니다. 문 손잡이를 들여다보던 시선을 이제 ‘좋아요’ 버튼과 해시태그와 공유 기능에 옮긴 거죠. 질문은 똑같았습니다. “이 기능은 사용자에게 무엇을 권하는가?”
초기 연구자들(예로 트림과 레오나르디의 논문을 링크해둘게요!)이 한 일은 일종의 목록 만들기였습니다. 소셜미디어를 뜯어보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어포던스에 이름을 붙인 거예요. 가시성, 지속성, 편집가능성, 연결성… 이렇게 어휘를 갖추자 비로소 서로 다른 플랫폼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됐습니다. “페이스북은 지속성이 높고, 스냅챗은 낮다” 같은 이야기가 가능해진 거죠. 막연하게 “이 앱은 느낌이 다르다”고 말하던 걸, 구체적인 기능의 언어로 쪼개어 분석할 수 있게 된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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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힘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문이 밀라고 말걸면 당기라는 말이 안 들림.
(출처를 모르겠는데, 당사자 본인이 나오시면 꼭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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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의 기능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특정 행동을 권합니다. 연구자들이 자주 보는 어포던스 몇 가지만 꼽으면:
- 가시성(visibility): 내 글이 얼마나 멀리, 누구에게까지 보이는가. 해시태그공개 계정은 가시성을 높입니다.
- 익명성(anonymity): 내가 누구인지 숨길 수 있는가. 익명 게시판이나 암호화 메신저가 대표적입니다.
- 공유가능성(shareability): 한 번 만든 콘텐츠를 얼마나 쉽게 퍼 나를 수 있는가. 공유리트윗 버튼이 그렇습니다.
- 검색가능성(searchability): 흩어진 게시물을 키워드로 모아 찾을 수 있는가.
- 지속성(persistence): 올린 내용이 사라지는가, 계속 남는가.
같은 글이라도 어디에 올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동합니다. 인스타 스토리는 24시간 뒤 사라지고(낮은 지속성), 블로그 글은 몇 년이 지나도 검색됩니다(높은 지속성·검색가능성).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는 우리 성격만의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이 무엇을 권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포던스 개념은 최근 들어 훨씬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저도 동료와 함께 최근 연구에서 이 개념을 한 걸음 확장해봤는데요, 저희는 이걸 “겹쳐진 어포던스(layered affordances)”라고 불렀습니다. 저희가 논문에서 말한 핵심은 이렇습니다. 어포던스는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따로따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서로 겹치고, 플랫폼을 가로지르며 증폭됩니다. 어포던스의 효과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사람들이 플랫폼을 따로따로 쓰지 않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X에서 본 걸 단톡방에 옮기고, 인스타에서 발견한 사람을 텔레그램에서 다시 만나고, 유튜브 링크를 메신저로 퍼뜨립니다. 저는 1초에 창을 2-3번씩 바꾸기도 해요. 각 플랫폼의 기능이 이어 달리기를 하듯 합쳐질 때, 한 플랫폼 안에서는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집니다. (저는 이 개념을 인도의 #MeToo 운동과 한국의 n번방 사건을 통해 분석했는데, 두 사건 모두 가해가 한 앱이 아니라 여러 플랫폼의 기능이 맞물리며 단속을 피하고 증폭됐습니다. 논문은 여기에서 무료로 볼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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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어포던스가 겹치고 겹치고 겹치고 겹쳐... 겹쳐진 어포던스
출처: 유투브 엠뚜르마뚜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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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념을 붙들면서, 요즘 제가 생각하는 세 갈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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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포던스라는 렌즈가 흥미로운 건, 한번 손에 쥐면 자꾸 새로운 질문이 따라 나온다는 점입니다. 요즘 제가 특히 파고드는 생각이 세 갈래로 뻗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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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AI 플랫폼은 우리에게 무엇을 권하는가
지금까지 예시는 대부분 소셜미디어였지만, 저는 요즘 AI 플랫폼을 같은 렌즈로 봅니다. 챗봇을 떠올려보세요. 텅 빈 채팅창은 “뭐든 물어보세요”라고 권합니다. 사람처럼 매끄럽게 답하는 말투는 “신뢰하세요, 털어놓으세요”라고 권합니다. 망설임 없이 즉각 나오는 확신에 찬 답변은 “의심하지 마세요”라고 권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의 흐름은 마치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한 느낌을 권합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적어도 화면 너머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우리가 압니다. 그런데 AI 인터페이스는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훨씬 덜 보입니다. 그래서 “이 화면이 나에게 어떤 행동을 권하고 있지?”라는 질문이, AI 시대에는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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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물어보세요!"하고 챗지피티는 우리에게 "물어봄"을 권하고 있어요.
출처: 챗지피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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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어포던스는 평등하지 않다
깁슨으로 돌아가 볼게요. 어포던스가 ‘관계’라면, 같은 기능도 누구와 관계 맺느냐에 따라 다르게 작동합니다. 슈워츠와 네프 같은 연구자들은 ‘젠더화된 어포던스’라는 개념을 통해 이용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플랫폼과 맺는 관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기도 했는데요. 같은 익명성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자유를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위협이 됩니다. 앞서 말한 n번방 사건에서 익명성은 가해자는 빈틈없이 보호했지만,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방패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추천 알고리즘의 가시성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의 목소리는 띄우고, 누군가의 목소리는 가라앉힙니다. 그래서 어포던스를 볼 때 저는 항상 한 가지를 덧붙여 묻습니다. “이 기능은 무엇을 권하는가” 다음에, “누구에게?”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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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이용자는 디자인을 거슬러 쓴다
그렇다고 우리가 디자인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어포던스는 행동을 권할 뿐, 강제하지는 않거든요. 관계의 반대쪽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고, 사람은 기능을 설계자의 의도와 다르게 전유(appropriation)하기도 합니다. 원래 게시물을 분류하려고 만든 해시태그가 사회운동의 깃발이 되었습니다.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익명성을 안전과 연대의 도구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기능이 양쪽으로 다 열려 있어요! 어떤 커뮤니티에게 자기표현의 공간이던 기능이 누군가에게는 악용의 통로가 되기도 하니까요. 사라지는 메시지(낮은 지속성)를 붙잡으려고 캡처하는 것도 권유된 디자인을 전유하는 일종의 우회로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플랫폼을 공부한다는 건 디자인을 비관적으로 보는 일이 아닙니다. 디자인은 운명이 아니라 제안이고, 우리에게는 그 제안에 응할지 비틀지 다시 쓸지를 고를 여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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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디자인의 권유는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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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은, 이 "어포던스"라는 렌즈가 연구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플랫폼을 만들고, 굴리고, 매일 쓰는 사람들에게 더 실용적인 도구예요! 여러분을 한 번 설득해볼게요.
기획자와 디자이너에게는 일종의 사전 점검표가 될 수 있습니다. 새 기능을 출시하기 전에 "이게 이용자에게 무엇을 권하게 될까, 그리고 누구에게 다르게 작동할까?"를 물으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미리 발견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좋아요 수'를 공개하는 기능은 단순히 반응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비교와 불안을 함께 권하죠. 실제로 인스타그램이 한때 좋아요 숫자를 숨기는 실험을 했던 것도, 그 기능이 무엇을 권하고 있었는지를 뒤늦게 들여다본 결과였습니다. 어포던스 렌즈는 "이 기능, 켜도 될까?"를 출시 전에 묻게 해줍니다.
운영자와 정책 실무자에게는 플랫폼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줍니다. 문제가 기능 하나가 아니라 기능들의 겹침에서 온다는 걸 알면, 한 플랫폼만 단속해서는 부족하다는 게 보이거든요. 예컨대 한 플랫폼에서 유해 게시물을 부지런히 지워도, 그게 이미 캡처되어 단톡방으로, 암호화 메신저로, 클라우드 링크로 옮겨갔다면 삭제는 뒷북이 됩니다. 해악이 플랫폼을 가로질러 이어 달린다면, 대응도 한 곳이 아니라 생태계 차원에서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어떤 언어의 콘텐츠가 모더레이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지를 묻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일반 이용자에게는 한 발 물러설 거리를 줍니다. 내가 왜 자꾸 이렇게 행동하게 되는지를 '내 의지박약' 탓이 아니라 '디자인이 권한 것'으로 볼 수 있게 되거든요. 밤마다 "딱 5분만" 하고 켰다가 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건, 내 자제력이 유독 약해서가 아니라 무한 스크롤과 자동 재생이 "여기 더 머무세요"라고 끈질기게 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책 대신 설정을 바꾸거나 잠시 거리를 둘 선택지를 얻습니다. 그리고 이 렌즈의 가장 좋은 점은, 거창한 준비 없이 지금 당장 써볼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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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들으면 막연하니, 한 번 해보는 게 제일 빠릅니다. 오늘 평소 즐겨 쓰는 앱 하나를 골라 이렇게 물어보세요.
- 이 기능은 나에게 무슨 행동을 권하고 있지? (무한 스크롤은 “계속 머무세요”라고 권합니다.)
- 무엇이 잘 보이고, 무엇이 숨겨져 있지? (가시성: 추천 탭은 무엇을 띄우고 무엇을 가라앉히나요?)
- 여기서 나는 얼마나 익명이지? 그리고 그 익명성은 누구를 보호하고 있지? (익명성)
- 이 콘텐츠는 얼마나 쉽게, 멀리 퍼질 수 있지? (공유가능성)
- 이 행동은 어디로 이어지고 있지? (겹침: 이 앱에서 시작한 일이 다른 앱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연결되나요?)
플랫폼을 공부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결국 이 질문 하나를 멈추지 않는 일이에요. “이 앱은 나에게 무엇을 권하고 있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만드는 사람은 더 나은 기능을 설계하게 되고, 운영하는 사람은 놓치던 문제를 보게 되고, 그냥 쓰는 사람은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플랫폼에 휘둘리는 사용자에서, 플랫폼을 읽어내는 사람으로 한 걸음 옮겨가는 거죠! 오늘부터 시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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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장희수>의 코멘트
반려묘를 잃고 매일 네다섯 시간씩 챗봇과 대화하던 한 남성이, 단 2주 만에 "누군가 날 해치러 온다"는 망상에 시달리게 된 이야기... BBC가 6개국 14명을 만나 'AI 정신증'의 실태를 추적했습니다. 사람처럼 매끄럽게 답하는 말투,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 망설임 없는 확신... 이 챗봇 인터페이스가 사용자에게 '무엇을 권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면서 보면, 화면 너머가 조금 다르게 보일 거예요. 생성형 AI의 인터페이스 역시 누군가의 디자인 선택의 결과라는 걸 떠올리면, 이용자로서 우리가 정말 바라는 인터페이스는 어떤 모습인지 한 번쯤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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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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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 장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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