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PD의 세계
숭이 "연애 시작을 자랑했던 저… 다시 솔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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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숭이입니다.
예능PD로 일하고 있는 저는 얼마 전 제가 처음 참여한 프로그램의 방영이 끝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직업을 또래보다 늦게 시작한 터라 완결의 경험이 제겐 새로웠습니다. 다른 회사원에겐 큰 프로젝트의 끝을 의미하는 경험인데요. 첫 회차가 나갈 땐 엔딩크레딧에 올라간 제 이름을 보고 기분이 묘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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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공채 실패한 해를 보내며 들었던 곡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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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처음 PD로서 취업을 준비할 때가 떠오르더라고요. 예전엔 의사, 변호사처럼 PD도 ‘전문직’이라고 부를 정도로 명예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아니긴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PD라는 이름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긴 힘들었습니다.
‘언론고시’라는 말이 있죠. 서류 전형에, 상식과 작문을 평가하는 필기 시험에, 여러 차례 면접도 이어집니다. 어떤 채용 과정이나 쉽진 않겠으나 방송국은 수가 적은 만큼 문이 좁습니다. 또한 시사교양이든, 예능이든 각 분야에서 원하는 무형의 인재상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긴 것 같습니다. ‘나는 예능PD 깔(재능)은 아닌가봐’ 하면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 나이 28살 때부터 PD를 준비했는데요, 그땐 이미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습니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언론계 취업 준비생들은 ‘신입이 이렇게 나이가 많아도 되나’ 하는 걱정부터 하더라고요. 그럴 만도 한 게, 저는 꽤 많은 면접장에서 ‘당신보다 어린 선배들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할 거냐’란 질문을 들었어요.
그렇게 처음 지원했던 한여름의 공채는 오래 이어졌지만 가장 고차로 간 게 1차 면접이었고, 그 해 겨울은 패배린 쓴맛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 알게 된 세상이 있습니다. 바로 아주 쌀쌀한, 프리랜서 PD의 세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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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리랜서 PD는 KBS, MBC, SBS 어디에나 있다…
2. 계속 줄 돈은 없지만 만들긴 해야 된다 3. 이 험난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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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PD는 KBS, MBC, SBS 어디에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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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걸 쓰는 건 새벽 1시 34분… 아주 이른 시간이네요. 이른 시간이라는 게 잠들기에 말고, 일하기에요. 이번주의 저는 몇 시간을 잤을까요? 다른 사람들의 반도 못 자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PD가 되기 전 단계이기도 하자 PD이기도 한 조연출 동료들과 저의 루틴을 소개합니다. 우선 점심에 출근하면 ‘배달의 민족’의 ‘함께 주문’ 기능으로 메뉴를 골라 밥을 올려 단톡방에 올립니다. 보통 일반식과 샐러드 두 버전을 올리기 위해 두 명의 조연출이 필요합니다. 밥이 도착하면 주문한 사람들을 확인하고 각자 편집실에 넣어 드립니다.
이제 각자 할 일을 하면 저녁 밥 올릴 시간이 됩니다. 새벽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여기저기 조연출들을 찾아 자료를 구해달라고 한다거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시는 선배님들이 많기 때문에 엉덩이를 뗄 일이 많습니다. 밤 12시가 지나야 진짜 일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눈 깜빡하면 새벽 3시, 그리고 새벽 5시가 됩니다. 집에서 잘지 회사에서 잘지 고민하는데 대부분의 선택은 집에서 씻고 와 회사 편집실 라꾸라꾸에서 잠깐 눈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럼 하루 2-3시간을 자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PD를 떠올리면 촬영장에서 카메라 뒤에 앉아 출연자들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저도 어릴 땐 김태호, 나영석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유명한 사람들과 매일매일 PD로서 겪는 삶은 거리가 있습니다. 스타 PD들도 제가 서술한 조연출 시기와 유사한 시간을 보냈겠으나, 자신의 프로그램을 연출하게 되는 소위 ‘입봉’을 성공한 후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다는 점이 다릅니다. 또한, 이들의 대부분은 ‘공채 출신’ 혹은 ‘본사 PD’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 본 프로그램 맨끝에 붙는 엔딩크레딧 속 이름은 모두 다 이러한 PD들인 건 아닙니다. 저는 프리랜서 PD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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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인물들이 방송국 예능국 소속인 드라마 © KBS <프로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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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들의 수만으로는 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엔 인력이 빠듯합니다. 그래서 채용하는 것이 바로 비정규직인데요. 본사 PD는 방송사나 대형 제작사에 정규직 혹은 고정 계약 형태로 소속되어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하는 인력이라면, 프리랜서 PD는 계약 기반으로 프로그램 단위 혹은 프로젝트 단위로 참여하며 소속이 고정적이지 않고 여러 제작사·브랜드와 협업하는 형태입니다. 저도 지금은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의 프로그램이 들어갔을 때 정규직 PD가 아닌 슬롯을 채우기 위해서 그에 필요한 연차들을 중심으로 채용하는 PD들인 것입니다.
프리랜서PD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물론 이름은 조금 다를 수 있겠는데요,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외주 주는 정책을 도입한 이후 30년 넘는 시간 동안 방송국에 정규직으로 속해 있지 않고 일하는 독립 PD들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계약형태가 더더욱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정규직 고용보다 프로젝트 계약, 단기 계약, 외주 계약 등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흑백요리사⟩의 성공으로 더 이름을 날린 스튜디오슬램은 ‘프로젝트 계약PD’라는 새로운 형태의 자리에 대해 채용 공고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전 해까지만 해도 신입 공고를 내던 시기에 신입과 경력을 묶어 공고를 낸 것이죠. 설명을 보면 평가를 통해 계약 기간을 종료하고 정규직으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하니, 한 프로그램 단위로 계약하는 프리랜서 PD와 전환형 인턴을 합친 고용형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방송계는 10년마다 상전벽해급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최근 20년을 살펴보자면, 2010년대에는 종편 채널이라는 빅뱅이 있었습니다. 2011년 다수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해 지상파 중심에서 유료채널·종편·케이블로 외연이 확장된 것이죠. 당시는 이 변화에 대해 ‘지상파 독점이 깨졌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PD 일을 하고 있는 많은 선배님들을 만나 보았을 때 이 분들은 오히려 이 시기를 황금기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채널이 많아졌던 만큼 신입을 뽑는 곳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2020년대 가까이에서 가장 큼지막한 변화는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이 있겠습니다. ‘PD 생태계에서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직접 일을 해보면 느끼는 바가 큽니다. ⟨오징어게임⟩과 같은 드라마의 성공 뿐 아니라 ⟨피지컬100⟩, ⟨솔로지옥⟩ 시리즈 등의 예능까지도 승승장구 하면서 한동안 방송국에서도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나’ 흔들렸던 것이 느껴지거든요.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아낌없이 예산을 투자하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에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는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방송 직업인들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 돈을 끌어올 수 없더라도 넷플릭스발 콘텐츠 트렌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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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진출이 끌어낸 방송국 지형 변화 중 가장 큰 것은 제작사의 증가였습니다. 가장 유명한 제작사로는 나영석의 ‘에그이즈커밍’, 그리고 김태호의 ‘TEO’입니다. 이 스타 PD들이 더 이상 ⟨1박2일⟩의 나영석, ⟨무한도전⟩의 김태호가 아니라 각각 한 회사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된 것이죠.
이렇게 방송사에 소속되어 있던 인기 PD들이 제작사 혹은 OTT 기반 콘텐츠 회사로 이적하는 사례가 많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변화에 조금은 둔감해진 것 같기도 한데요, 한창 제작사가 우후죽순 생겨날 떄는 3사와 종편채널을 퇴사하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그러니 업계 내에서는 ‘누가 어디로 얼마 받고 갔대’라는 얘기가 한 달에 몇 번씩 들려오던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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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의 아들들과 나영석 딸들의 소개팅 © 채널 십오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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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OTT는 왜 제작사를 필요로 할까요?
첫째로, OTT는 방송국이 아닙니다. 지상파라면 편성 시간표가 있어서 1년에 제작 가능한 콘텐츠 수가 한정되어 있지만 OTT에는 편성 제한이 없습니다. 무한한 슬롯을 채울 수 외부 제작사 수요가 증가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한국 콘텐츠는 글로벌 성공률이 높습니다. 즉, OTT 차원에서도 ‘K-콘텐츠는 투자 대비 효율이 높다’고 판단해 K-콘텐츠를 공급하는 제작사를 확보하고자 하는 경쟁이 치열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청자 입장에서는 1년 내내 재밌는 콘텐츠를 자꾸 떠먹여주는 넷플릭스를, 디즈니플러스를, 쿠팡플레이를, 웨이브를, 왓챠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OTT는 직접 제작 인력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투자와 품질 관리, 마케팅에 집중합니다. 즉, 자체 인력을 최소화하고 제작사에 제작을 맡기는 구조인 것입니다. 그래서 OTT는 다양한 제작사를 필요로 하지만 이러한 방송 환경에서 고용된 사람들의 입장은 어떨까요? 피고용인들에게는 자신들을 뽑아주는 모든 곳의 입장이 중요합니다.
OTT 플랫폼이 흥행할수록 방송국은 사회 전체에서 영향력을 잃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영향력이 줄어드는 동시에 디지털 광고 매체가 힘을 얻다보니 점차 허리를 졸라 맬 수밖에 없습니다. 더이상 안정적으로 확보된 안방 시청자들이 없으니 방송국의 ‘돈줄’인 광고 수익은 디지털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허리를 졸라매니 인력과 IP에 투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각 방송국이 제작 자회사를 통해 PD를 외부에 두는 이유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유연하게 인력을 운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작 환경은 점차 양극화되고 비정규직 계약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방송 미디어 종사자 중 25%는 서면 계약 없이 고용되었으며, 79%는 예측 불가능한 계약 종료를 경험했다고 할 정도로요. 제작사나 방송국은 OTT에 콘텐츠를 납품하고 제작비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 매출이 영속적이지 않습니다. 다음 콘텐츠 계약을 수주하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사람을 오래 고용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건 저도 경험한 일입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팀에서 월급은 받았지만 아직 계약서는 쓰지 않았습니다. 구두로 임금을 협의하였고 통장에 찍힌 돈은 제가 생각했던 금액과는 달랐지만 일단은 다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방송 업계에 진입할 수 있는 문 자체가 좁아지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은 비정규직입니다. 오랜 기간 언론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활동해 온 다음 카페 ‘아랑’ 같은 곳엔 프리랜서나 계약직 공고가 많이 올라옵니다. 저도 그것을 보고 첫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습니다. 보통은 급여를 표기하지 않고 계약기간과 프로그램의 장르, 채용 일정이 게시됩니다. 이를 보고 이메일이나 사이트에 서류 접수를 하면 합격했을 때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오고, 거기서도 합격하면 빠른 시일 내에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처음엔 ‘이렇게 빨리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익숙한 방식입니다. 제작사의 프로젝트 수가 많아지면서 해당 프로젝트에 맞는 PD를 단기 계약 형태로 채용하는 방식이 보편화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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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공고 아무거나 퍼왔는데 대다수 이렇습니다 ©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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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팀 안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 있고 별 생각 없이 누군가가 한 말에 두 입장의 차이가 크게 다가올 때면 ‘나는 직원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의 제작비구나’ 생각한 적도 많았답니다.
제가 들었던 말 중 가장 놀라웠던 건 “정규직 PD 선배님들은 담배를 안 피는데 프리랜서 PD 선배님들은 많이 피시네요.” 였는데요, 이 발언의 발화자와 다른 일로 이때의 대화를 복기해봤을 때 이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채용구조의 구분은 정말 은은하게, 하지만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뚜렷한 구분은 물론 돈입니다. 한정적인 PD 자리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아직 자신의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일수록 더 저렴한 가격으로 자신을 어필하게 되는 것이지요.
내년에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올해 말이면 계약이 끝나는데, 아직 다음 프로그램을 찾아두진 않았습니다. 어차피 프리랜서 PD 채용공고도 사람이 아주 급할 때나 올라오니 한 두 달 전부터 구해두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느껴지는 건 첫 프로그램 때보다 느끼는 불안감이 적다는 것입니다. 첫 1년 때는 꼭 이 프리랜서의 삶을 끝내겠다고 온갖 계약직이나 신입 공고를 기웃대고 서류를 내면서 회사 다니는 것을 병행했습니다. 워낙 인력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환경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니 감정적으로 힘들었거든요. 또, 내가 후배로서 혹은 선배로서 배울 것이 있을텐데 계속 조직을 옮겨다녀야 한다면 제때 배울 걸 배우지 못하겠다는 불안도 있었습니다.
요즘도 일을 하다가 선배한테 혼날 때 면전에 대놓고 “다음 프로그램을 한다면 너와 할지는 잘 모르겠어” 하는 ‘내 목줄은 너한테 있다’와 통하는 직설적인 말을 듣기도 하지만, 전보다 이러한 협박조의 평가에 많이 무감해졌습니다. 이렇게 개인은 환경에 적응해 변해간다지만, 이놈의 방송 업계… 반드시 변해야 하긴 합니다.
사람들이 오요안나 사망사건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리랜서 채용구조가 만연할 때 문제는 ‘누가 책임을 지냐’ 입니다. 프리랜서로 채용되면 고용주·책임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그렇다면 노동자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채용 방식뿐 아니라 그 인력을 둘러싼 조직문화, 위계관계, 인권·복지 환경 등이 프리랜서 중심 구조에서는 더 취약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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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자가 없는 구조는 적폐입니다 © JTBC 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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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더럽고 치사한, 비정규직이 판치는 세계에서 적어도 제가 바라는 바는, 일하면서 생기는 부조리함들을 서로 공유하는 분위기입니다. 누군가가 말하는 면전에다 대고 ‘여긴 원래 그랬어, 나 땐 더 그랬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PD들은 일을 빡세게 배우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버’가 미덕인 직업이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말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합니다. 일하다 보면 누구나 부러질 수도 있는 건데 그걸 이 직업으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 같기도 하구요. 밤을 잘 못 새면, 체력이 안 좋으면, 멘탈이 약하면 ‘PD 하기 어렵겠다’고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원자의 나이를 더 신경 쓰는 것이겠고요. 바쁘게 돌아가는 제작 환경에서 구멍 없이 일이 이루어지려면 갈릴 수밖에 없는 구조긴 합니다. 또한 그걸 해낸,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고 업계에 남아 있으니 비슷한 문화가 쭉 이어질 수는 있겠으나, 그래도 저는 악습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당연히 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찾는다면, 프리랜서 PD로 일하는 데도 장점은 있을 겁니다. 명칭처럼 정말 ‘프리’하지는 않지만요. 밤새 촬영장이나 편집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은 여느 PD나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의 장점을 꼽자면 자신이 다음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해진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음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요, 이때 어떤 프로그램을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안 할 수 있습니다. 방송국이나 제작사의 정규직 PD라고 하면 회사에서 정해주는 프로그램에 반드시 배정되어 일해야 하지만 프리랜서는 누군가 자신을 어딘가에 배정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프리랜서 PD 선배님들은 여러 팀을 경험해 보고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 팀은 자신을 불러도 안 가는 방식으로 선택을 하십니다. 또, 한 집단에 쭉 소속되어 있거나 계속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꺼내기 어려운 말들을 하시기도 하고요(제 주변 사례로는 월급이 밀렸을 때 그에 대해 확실히 입금일과 지연 사유를 물어본 분이 있었습니다). 꼭 사람들이 맞지 않아서가 아니더라도, 각 방송국이나 제작사가 추구하는 콘텐츠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면 그러한 곳에서 다시 자신을 부르더라도 안 가고 다른 새로운 곳을 찾을 수도 있겠죠. 느끼셨겠으나… 억지로 쥐어짜낸 장점입니다. 정규직이라고 못할 일은 아니죠. 이직을 하면 되니까요.
프리랜서 PD의 다음 커리어 이동하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첫 프로그램을 하고 나서 경력을 갖게 된 프리랜서 PD가 주로 다음 회사를 찾는 방법은 주로 사회적 관계망, 즉 지인 소개입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검증된 경력 PD를 선호합니다. 따라서 채용 공고를 열어두는 경우도 있지만, 신뢰관계가 있는 인물을 추천하거나 인맥을 통해 채용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는 공개채용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내부 추천·추천 인력 우선 방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두 번째 프로그램을 찾게 된 것이, 함께 일했던 선배님께서 ‘같이 갈래?’ 하고 제안을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더 많은 선배님들을 알게 되니, 그만큼 갈 수 있는 길은 점차 넓어지는 셈입니다.
어떻게 이 판에서 살아남아야 할까요? 매일 밤을 새고 집에서 씻고 돌아오는 날만 점점 늘어나는데… 저는 계속 프리랜서 PD로 살고 싶을까요? 아니요. 저는 이번 주에도 면접이 있습니다. 저의 목표는 경력을 쌓아 경력 정규직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나 사람을 좋아해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 이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한 프로그램의 제작비로 쭉 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효율성이나 자율성을 이유로 노동 유연화를 두둔하는 ‘정규직만 있는 세상과 달리 고인물은 덜하잖아요’ 등의 주장들이 있겠으나 전 사람을 책임지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팀에서 일하면서 현타를 맞을 때마다 ‘만약 이 직업을 때려 친다면 뭐 먹고 사나? 이제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면 나이 때문에 어떡하지?’ 고민하면서 노무사 책을 펼쳐들곤 했었습니다. 노동에 대한 관심이 절로 많아지는 업계니까요.
계속 비정규직을 탈출할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사실 지난 레터였던 '토종 한국인의 AI 활용 외국계 기업 도전기' 또한, PD와는 조금 다른 일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기도 했습니다. 살다보면 인생엔 여러 일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꽤 자주 직업적 안정감이 아주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어딘가에 고용되어 돈을 버는 일은, 채용 형태를 불문하고 그 자체로 남에게 제 목줄을 내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나마 노동법이 강한 나라라 정규직은 목이 날아가는 데 절차가 있어 시간이 좀 더 걸리는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 누군가의 비위를 잘 맞추지 못 했을 때 정말 다음 달에 갈 곳이 없을 수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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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시에, 프리랜서의 자격으로 일하고 있는 한, 자긍심을 느끼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부정적인 면만 보면서 사는 것은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이란 걸 작년 한 해 동안 아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 읽었던 책이 ⟪프리랜서의 자부심⟫(김세희 저, 창비 출판)입니다. 신문사 공채 출신의 기자가 공황장애로 퇴사한 후 프리랜서로 다시 글을 쓰는 일을 하면서 왜 자신이 이 일을 좋아했는지 다시금 깨닫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담담하게 일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느끼는 바를 털어내는 서술을 보면서 비슷한 입장에서 공감되는 책이었습니다.
프리랜서의 자부심이란 뭘까요? 저는 적어도 하나를 찾자면 ‘내가 선택했다’는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안정한 고용형태는 선택 받지 못함에서 기인하였다고 해도, 그런 상황에서 계속 이 일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자신이니까요. 아무리 ‘네 나이가 어린 편이 아닌데’라는 말을 들어도, ‘네 연차엔 그 돈도 높은데’라는 말을 들어도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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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숭이>의 코멘트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하는 동안, 그 어떤 콘텐츠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본 것이라곤 유튜브 연애타로와 자장가로 듣는 침착맨의 왕날편밖에 없습니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잠을 자는 데 시간을 다 쏟아내도 시간이 없습니다. 이게 가능한가 했는데 진짜 가능한 삶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익명의 누군가들에게 추천을 하는데 그래도 생생하게 최근에 심장을 적셨던 무언가를 내 드리고 싶은 것이 바로 에디터의 마음입니다. 예전에 좋아했던 콘텐츠들도 물론 있지만 신선한 걸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저, 노래는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래와 아티스트를 추천합니다. 저는 새벽까지 편집실에서 편집과 종편(종합편집, 가편집과 마스터링을 포함한 최종본 제작 과정)을 하고 나서 집에서 씻고는 나오려고 노력하는데요. 이런 삶에서 택시 타기 싫어 갖게 된 저의 차를 타고 샤워만 하러 집을 오갈 때마다 꼭꼭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듣습니다. 시동 걸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블루투스를 연결해 우즈 군 노래를 트는 것입니다. ‘Drowning’으로 역주행 한 이후 찾아들은 그의 노래들 중엔 매력적인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직접 작사작곡을 하는 데다가 무대까지 잘하는 그는 아주 매력적입니다. 오늘 추천해 드리는 노래인 ‘Lullaby’는 새벽에 듣기 좋은 촉촉한 곡입니다. 이번 달 말에는 우즈 콘서트가 있는데 표는 어찌저찌 구해두었으니 제 일정이 저를 꼭 놔주길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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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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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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