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랙티브 콘텐츠에 대해 다뤄봅니다
오리진 "나이 들었나 봅니다. 옛날 드라마만 계속 다시 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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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오리진입니다.
요즈음 공감하는 말 중 하나는 '어렸을 때는 내 맘대로 하게 놔두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커서는 어떻게 하라고 다 지정해 주기를 바란다'라는 말입니다. 커서 보니 모든 건 다 선택이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렇기에 선택이 자유보다는 큰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많고, 누군가가 나 대신 결정해 줬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아요.
하지만 가상 세계에서의 선택은 다릅니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부담 대비 훨씬 적은 부담 때문에 우리는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죠. 오늘은 선택지를 우리 앞에 들이미는 콘텐츠인 '인터랙티브 콘텐츠', 그중에서도 인터랙티브 필름에 대해 들여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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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랙티브 필름 🎞️ 2. 가벼운 선택의 힘, '성세 천하' 3. 앞으로 인터랙티브 필름은 이런 방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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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인터랙티브 콘텐츠(Interactive Contents)란 무엇일까요? 콘텐츠가 일방향으로 흘러가는 대신,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경험과 결말이 달라지는 쌍방향 구조의 콘텐츠를 말합니다. 소설, 만화, 영화, 드라마와 같은 기존의 스토리 콘텐츠에서 우리는 그저 인물들의 선택을 관찰할 뿐이었습니다. 반면 인터랙티브 콘텐츠에서는 '나의 선택으로 이야기를 바꾼다'라는 통제감이 주어집니다. '이렇게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가정을 실제 이야기로 볼 수 있는 것이죠.
사실 이런 구조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1991년 첫 발매된 '프린세스 메이커' 게임 시리즈를 기억하시나요? 유저가 아버지가 되어 딸을 키운다는 내용으로, 유저가 내린 선택의 조합에 따라 딸의 미래가 결정되는 게임이었죠. 어떤 아르바이트를 시켰는지, 혹은 어떤 분야를 교육했는지와 같은 요소로 엔딩이 결정되는데 이 엔딩의 수가 무궁무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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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 공주를 만드는 데에 성공해 본 적이 없어요.... ⓒ '프린세스 메이커 2'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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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이전에는 게임 북이 있었습니다. 고른 선택지에 따라 페이지를 넘겨 그다음 결과를 보는 형식이었죠.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 '상호작용성'에 대한 시도는 계속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언더테일'이나 '다크소울' 같은 게임부터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계의 게임까지, 멀티 엔딩 구조를 활용한 다양한 게임으로 선택에 따라 다양한 엔딩이 있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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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호작용성이 영상 스토리 콘텐츠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흐름'이 중요한 매체에 선택지를 넣는 시도는 게임만큼 자연스럽게 자리 잡지 못했어요. 이른바 인터랙티브 필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일요 예능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인생극장'에서 비슷한 시도를 한 바가 있기도 합니다. 다양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에게 A/B 선택지를 주고, 그 선택지에 관한 결과를 모두 보여주며 이야기의 갈림을 체험하는 방식이었죠.
*인터랙티브 무비, 시네마틱 인터랙티브 등 다양한 용어가 있지만, 여기서는 인터랙티브 필름으로 지칭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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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원을 가지고 복권을 샀다 vs 할머니를 도와줬다 ⓒ M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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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인터랙티브 필름은 기술적 난이도, 제작 과정의 복잡성(한 편의 영상을 만드는 데에 여러 편의 영상을 만드는 것과 같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이슈), 작품의 낮은 퀄리티 등으로 뚜렷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 넷플릭스가 2018년 말 어른들을 위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표방하며 ⟨블랙 미러 : 밴더스내치⟩(이하 밴더스내치)를 공개하면서 이 형식에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밴더스내치⟩는 기존 시도 대비 선택의 복잡성이 훨씬 높았고, 이전 선택을 기억해 미묘하게 다른 장면을 보여주는 등(똑같은 부분을 여러 번 반복하면 캐릭터가 플레이어를 의식하기도 합니다) 정교한 설계를 통해 시청자에게 '내 선택이 실제로 반영된다'라는 몰입을 제공했어요. 선택의 조합에 따라 히든 엔딩도 볼 수 있어 일부 시청자들은 커뮤니티를 통해 각자 발견한 엔딩을 공유하기도 했죠.
그 결과, ⟨밴더스내치⟩는 퀄리티와 실험성 모두 인정받아 에미상을 수상하며 '넷플릭스가 제시한 TV의 미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넷플릭스는 이후 ⟨베어 그릴스 : 당신과 자연의 대결⟩,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 : 키미 vs 교주⟩ 등 다양한 인터랙티브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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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미러 : 밴더스내치⟩ (2018) ⓒ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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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가 추리한 ⟨밴더스내치⟩ 시나리오 ⓒ 레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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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5년 5월, 넷플릭스는 인터랙티브 필름 실험의 종료를 발표했습니다. 24년부터 넷플릭스는 인터랙티브 필름 콘텐츠를 조금씩 플랫폼에서 내리고 있었는데, ⟨밴더스내치⟩와 ⟨베어그릴스 : 당신과 자연의 대결⟩(이 콘텐츠는 일반 영상으로 재편집되어 제공 중입니다)이 내려가면서 실질적으로 인터랙티브 필름 콘텐츠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유는 명확히 밝힌 바 없지만, 넷플릭스 관계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인터랙티브 콘텐츠 기술은 당초 목적을 달성했고, 이제는 다른 영역에 역량을 집중하게 되면서 제약이 생겼다"는 것이 사유였다고 합니다.
넷플릭스가 인터랙티브 '콘텐츠'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넷플릭스는 21년 모바일 게임 시장 진출에 이어 올해 11월 13일에는 TV 게임으로의 진출을 발표했으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넷플릭스는 26년에는 생중계 콘텐츠에 '인터랙티브 투표'를 제공하겠다는 계획도 있죠. 인터랙티브 필름 제작 및 지원 중단은 '인터랙티브 콘텐츠'에 대한 전략 방향을 변경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 기반의 영상에서 게임/실시간 상호작용으로 방향만 옮긴 셈이죠.
다만, 저는 이 선택에서 한 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랙티브 필름은 결국 대중화의 길에서 멀어지는건가?'라는 생각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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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플레이 하실 분들은 보지 마세요 ⓒ 침착맨 유튜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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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와중에 예상 밖의 지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중국의 텐센트가 서비스하는 '성세 천하 : 여제의 탄생'인데요. 올해 9월 9일에 출시되어 출시 열흘 만에 약 80억 원의 매출을 발표했고, 중국, 태국, 홍콩에서 유료 게임 1위를 차지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유명 유튜버의 게임 플레이 영상이 공개되면서 유튜브 및 커뮤니티를 휩쓸었죠.
측천무후가 궁에 입궐하는 시점에서 시작되는 '궁에서 살아남기' 게임입니다. 이 게임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인터랙티브 필름을 표방한다는 점입니다. 실사 배우가 연기한 영상을 기반으로, 중간중간 선택지를 제시해 스토리가 달라지는, ⟨밴더스내치⟩와 유사한 구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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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전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궁에서 못 살아남겠어요.... ⓒ '성세 천하'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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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게임은 접근법이 달랐습니다. 넷플릭스식 인터랙티브 필름이 모든 선택을 각자의 서사 갈래로 성실하게 설계하는 방식이었다면, '성세 천하'는 좀 더 게임적인 선택 구조를 띄고 있거든요. 잘못된 선택을 하면 바로 사망하거나 배드엔딩으로 이어지고, 즉시 이전 장면으로 되돌아가 다시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옳은 선택 중에서는 서브 엔딩도 제공하여 재미를 더하기도 하고요. 선택을 책임지고 계속 시청해야 하는 서사가 아니라, 선택을 시도해 보는 플레이에 가까운 형식이기 때문에 선택의 부담은 보다 낮아지고, 가볍게 반복하며 공략하는 재미가 강조되는 면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단순히 'A vs B'와 같은 선택지 제공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게임 요소를 촘촘히 넣었습니다. 유료 재화를 활용한 캐릭터 투표(꽃을 주거나 계란을 던질 수 있습니다)와 그에 따른 랭킹을 보여주기도 하고, 특정 장면에서는 퍼즐을 맞추거나 뺨을 때리는 등 액션을 통해 업적을 모을 수 있게 하기도 했어요. 이러한 요소는 기존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참여성'을 극대화한 요소들입니다. 메인 스토리는 드라마처럼 흘러가되, 중간중간 선택지와 액션, 게임 요소를 수행하게 하면서 시청자를 플레이어로 변환하는 것입니다. 영상 콘텐츠로서는 몰입을, 게임 콘텐츠로서는 즉각적인 성취감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 인기의 비결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상으로서만 존재하는 인터랙티브 필름은 '참여'에 대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랬기에 '성세 천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워킹데드'와 같은 '게임'으로서의 인터랙티브 필름이 좀 더 대중화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인터랙티브 필름 게임에서는 영상으로서의 '퀄리티'도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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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을 모을 수 있습니다 ⓒ '성세 천하' 캡처, 인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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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이러한 인터랙티브 필름 게임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계속 이야기해온 '성세 천하'가 있기 전에는 19년에 히트를 친 '인비저블 가디언'이 있었고, '신도불량탐정'(22년), '젠장! 미녀들에게 포위되었다'(23년) 등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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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재밌더라고요. '신도불량탐정' ⓒ 옥냥이 유튜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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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트렌드는 3D로 개발하는 것보다 실사 영상을 찍는 것이 더 저렴하다는 비용적 요인도 있지만, 중국의 인터랙티브 필름이 '숏폼' 드라마의 형식을 따라가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로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중국 숏폼 드라마 시장이 약 10조 원 규모의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한 시점이니까요. 틱톡에서 마이크로 드라마, 숏폼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같은 포맷을 공유하는 게임에 대한 진입 장벽도 낮아진 면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기존 숏폼과 달리 인터랙티브 필름은 대본 작업을 포함한 제작 과정이 복잡하다는 필연적 한계가 있어, 숏폼만큼의 폭발적인 성장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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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하나하나가 다른 세계를 만드는 멀티버스 ⓒ ⟨로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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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랙티브 필름은 우리의 인생을 닮았고, 선택에 대한 욕망을 투영한 콘텐츠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택에 따라 다른 서사와 결말을 맞이한다는 점에서요. 그러한 관점에서 ⟨밴더스내치⟩는 유저로 하여금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고, 각 선택을 기억하여 갈래별로 서사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잘 만든 콘텐츠였습니다. 지금 시점에 영상이라는 매체 안에서 가능한 상호작용의 정점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다만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을 확인해 보고 싶은 욕망도 있습니다. 내가 내린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혹은 더 나은 방식은 없었는지 말이죠. 어쩌면 무수한 갈림길보다 부담 없이 선택을 시도해 보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형태가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릅니다. '성세 천하'를 주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요. 이 게임은 선택을 서사의 책임이 아니라 가벼운 플레이로 바꿔놓았습니다. 잘못 선택하면 즉시 돌아갈 수 있고, 작은 액션과 업적 등을 통해 참여의 재미를 주죠. 그 점에서 인터랙티브 필름이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은 흐름을 유지하고, 선택은 게임의 호흡을 따르는 구조라는 점에서요.
결국 그간 인터랙티브 필름이 다른 매체 대비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는 영상이라는 긴 호흡의 매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호작용의 양과 서사의 무게감에 따른 부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레터를 쓰면서 어쩌면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인터랙티브 필름이란, 복잡한 갈래의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를 보듯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게임처럼 가벼운 선택을 시도해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닐지 생각해 봤습니다.
앞서 이렇게 대중화에서 멀어지는 건가? 라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그래서 여러 인터랙티브 필름 게임의 출현이 반갑게 느껴집니다. (일단... 너무 즐겁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인터랙티브 필름에 익숙해지는 과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구조가 익숙해지면, 또 다른 형태를 원하게 될 수도 있겠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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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오리진>의 코멘트
요즘 듣는 플레이리스트인데요. 들으면서, 제가 살아본 적 없는 시공간의 감정과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음악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정보를 봤는데, 글쎄 웬걸, AI 작곡이더라고요. 순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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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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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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