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를 다니며 잘못한 것들
FRIDAY "오늘 저의 일기장을 읽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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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거스트 특집: 집 나간 에디터들의 생존 신고 ⭐️
오래 구독해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어거스트에는 그동안 많은 에디터들이 오고 갔습니다. 다들 본업이 있는지라 바빠지면 어거스트 활동을 잠시 쉬기도 하고, 그렇게 새로운 에디터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했어요. 그때 그 레터 썼던 에디터는 요즘 어떻게 지낼까? 궁금하셨을 분들을 위해 8월의 목요일에는 예전 에디터들의 요즘 사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해요.
오늘은 그 마지막 레터입니다. 8월 동안 재미있게 읽어주셨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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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FRIDAY입니다.
저의 마지막 레터는 24년 7월 30일이었고, 그때도 잠깐 방문했었어요. 정식으로 떠난 지는 2년, 안부를 전한 지는 1년 여가 흘렀네요. 저는 익명으로 활동했는데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할지, 나를 감추되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할지 고민하다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미디어 업계에서 일하고 있고 현재 주 업무는 일종의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일입니다. 별거 아닌데 왜 숨기나 싶으시겠지만, 직장 내에 어거스트를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거 참 민망하던데요?
특집 레터 제안이 왔을 때, 예전에 하던 것처럼 주제를 잡고 책들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다 내려놓았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쓰기로 했어요. 대신 저는 제가 직장에서 잘못한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저는 일한 지 10년이 채 안 되었고 멋진 직업을 가졌지만, 지금은 퇴사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세상에 아주 많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처럼 너무 열심히 살다가 살짝 망가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일하며 배운 것들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 에디터 FRIDAY의 최근 발행 레터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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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
2. 용기내어 바꾸지 않은 것 3. 다 참아서 꼰대가 된 것 4. 나를 너무 크게 생각한 것
5. 떠나지 못하게 많이 가진 것
6. 그리고 어거스트가 준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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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화가 많아요. 저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은 권리만 주장하며 안일하게 일하는 사람, 상부 보고만 중요하게 생각해서 합리적이지 않은 지시를 내리는 사람, 팀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팀을 희생시키는 사람 등등. 그래서 회의할 때 화를 많이 냈어요. 특히 상사인 팀장님에게요. 무능력한 리더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때는 그렇게 쏘아붙이는 것이 당당하게 비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틀린 말도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따로 불러 한 마디 하더군요. “너, 무슨 파블로프의 개냐? 자잘한 일에 열내면서 화내면 너는 그냥 ‘화내는 사람’이 되는거야. 중요한 순간에 화를 내야 너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겠니.”
절 아껴서 조언해준 그 말을 듣고 저를 돌아봤습니다. 실제로 제 평판과 이미지가 그렇게 좋지 않더군요. 제 분노가 저만을 위한 것이라거나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효율적이지 않았어요. 나는 진심으로 조직을 위한다고 생각해 한 쓴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작은 치와와가 깡깡대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았던거에요. 분노도 적재적소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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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화를 안 내는 대신 뭘 했을까요? 저는 입을 닫고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했고 하게 되면 내 일이 아니다, 생각하면서 그냥 쳐냈어요. 점차 원래 화를 냈던 이유는 흐려졌고 피곤하니까 회사 욕만 늘었습니다. 분명 처음엔 부조리를 바꾸고 싶었어요.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고 비겁한 사기는 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제가 어떠한 '행동'을 했냐고요? 불평 불만만 일삼고 용기를 내서 동료나 상사에게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말해서 뭐해, 내 입만 아프지”하면서 변화를 믿지 않았습니다. 회사 일이 다 그런 건 줄 알았습니다. 내 뜻과는 달라도 상부의 지시는 따른다, 그게 맞고 내게도 편한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저는 정치 유튜브 콘텐츠를 만듭니다. 매일 썸네일과 쇼츠에 들어갈 문구를 정합니다. 어떻게 하면 조회수가 많이 나올까, 쇼츠가 터질까 고민합니다. 솔직하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열받게 만들어서 클릭하게 만들지를 궁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각종 혐오와 자극에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죠. 정치 뉴스는 하루가 다르게 싸우는 얘기밖에는 없고, 댓글창에 정치 과몰입러들은 욕설로 도배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세상에 그런 똥을 투척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웬만한 어그로 아니면 사람들은 클릭하지도 않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독두꺼비마냥 안에 독을 쌓아두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선을 넘은 문구를 요구했습니다. 반대하려다 거두었습니다. 절대적 지위를 가진 선배가 말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그게 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극적일수록 잘 팔리는 걸 눈으로 봤으니 할 말도 없었죠. 무엇보다, 제가 그런 말을 할 위치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감 없다고 혼나겠지? 너만 잘났냐고 비웃겠지? 아 진짜 하기 싫은데, 저 선배는 정말 사이코패스야.’ 하지만 도저히 견디지 못한 저는 점심 시간 내내 끙끙대다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선배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조롱의 수준까지는 안 갔으면 좋겠어요.”
선배는 한 번 쳐다보더니,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습니다.
“너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 앞으로도 너의 생각을 말해줘.”
너무도 간단하게 말이에요. 왜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갈등이 불편해서 용기 내지 않았더라면 남 탓, 환경 탓, 시장 탓만 하면서 스트레스만 받았겠죠. 누구보다 변하고 싶지 않았던 건 저였습니다.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한 번만 하면, 사람은 용기낼 수 있습니다. 불평하기 전에, 난 뭘 할 수 있지? 생각해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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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열심히 할수록 거슬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후배였죠. 후배는 조직에서 요구하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두에게 친절하지도 않았고 가기 싫은 회식에 억지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거나 잘 하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얄미웠습니다. 어느 새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이 나왔죠. “인사도 안 하고, 딱 자기 할 일만 한다니까?” “글쎄, 뭘 물어봤는데 ‘거기 다 써있어요’라고 하더라. 없으니까 물어봤지. 그거 답 해주는 게 힘드나?” “누군 하고 싶어서 하나. 그거 다 무임승차 하는 거야” 그 후배에 대한 인상은 비슷비슷했고 너나 할 것 없이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냈죠. 그런데 한 사람이 그랬습니다.
“참으면서 다 하지 말지 그랬어?”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참은 게 얼만데, 하면서 남들한테도 엄격해지는 거야. 나는 했는데 왜 너는 못 하냐고.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아야 꼰대가 안 돼.”
그러게요. 저는 윗사람이 시키면 다 해야 하는 줄 알았고, 내가 희생한 만큼 다른 사람도 희생하길 바랬습니다. 사실은 저도 한때 상사에게 화내고, 솔직하게 의견을 얘기하고 그런 모습이 있었는데 그걸 잊어버렸죠. 나는 세월이 흘러 깎였으니까, 너도 깎이길 바라면서.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타인의 모습은 곧 나의 모습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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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빌론> (2022)의 한 장면.
무성 영화의 슈퍼 스타였던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는 유성 영화의 등장으로 몰락한다.
자신에게 혹평을 쓴 비평가 엘리노어(진 스마트)를 찾아가 따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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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대가 끝난 거야. 이유는 없으니 묻지 마요.”
“슬럼프라 그래요.”
“아니, 끝났어요. 그것도 한참 전에. 유감이에요.”
“당신은 가십 기자야. 직접 만드는 게 없지. 자신을 내던지는 게 어떤 건지 몰라. 바퀴벌레라고.”
“집에 불이 나면 왜 사람은 다 죽고 바퀴벌레만 살아남을까? 당신이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겠지. 그게 틀렸어. 당신도 바퀴벌레처럼 필요 없어졌지.”
“…”
“바퀴벌레는 그걸 아니까 어둠 속에 조용히 숨어 살아남는 거고. 당신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살아남는 건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우리들이지. 이런 일은 수없이 많을 거에요. 지진이 이 도시를 쓸어버린다 해도 달라지지 않아요.”
“…”
“살아남는 건 스타라는 개념이에요. 앞으로도 수많은 잭 콘래드가 있을거고. 수많은 내가 있겠지. 이런 대화도 계속해서 반복되겠지. 이건 당신 ‘그 이상의 일’이니까.”
“…”
“고통스럽죠, 알아요. 누가 낙오되고 싶겠어. 하지만 백 년 후 당신도 나도 죽은 후 언제라도 당신 영화를 다시 트는 순간, 당신은 다시 살아날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50년 후 태어나는 아이는 화면에서 반짝이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익숙한 친구처럼 느낄 거에요. 당신이 죽은 후에 태어난 아이인데도. 재능을 타고난 걸 감사히 여겨요. 당신의 시대는 끝났지만 천사나 영혼들처럼 영원할테니.”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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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일에 사명감을 가지시나요? 좀 부끄러운데, 저는 그랬습니다. 대학 때는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미디어 업계에서 쭉 일하면서 저널리스트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진지했고, 화가 많았고, 옳고 그름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내가 만든 콘텐츠가 조회수가 잘 나올수록, 바이럴이 많이 될수록 나쁜 효능감일지언정 짜릿함을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죄책감도 느꼈습니다. 맥락보다 하나의 단어, 발언을 문제 삼았고 혐오를 발판 삼아 분노를 이끌어냈습니다. 진영 정치, 팬덤 정치에 한 몫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사실 전 그 기분에 스스로 취했습니다.
‘내가 세상을 망치고 있다’
이 생각보다 어떻게 더 스스로를 크게 부풀리면서 자학할 수 있을까요.
‘나는 비련의 저널리스트.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어쩔 수 없이 나쁜 일을 하지.’
정말 못 들어주겠죠? 창피하군요…
그리고 당연히 그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세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큰 존재가 아니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업계보다 세상이 크고, 내가 하는 일의 개념만 남을 뿐, 나라는 존재는 금방 사라지고 말거라고. 그러니 어떤 것도 큰 일이 아니다. 그렇게 믿기로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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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떠나지 못하게 너무 많이 가진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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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고궁박물관에서 봤던 보물. 옥으로 만들어졌다. 이름은 까먹었다.
생전 옥으로 된 물건에 관심 없었는데 견물생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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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선배에게 털어놓으니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그럼 넌 뭘 하고 싶은데?” 쉬운 질문인데 대답을 못 하겠더라고요.
“선배, 죽고 싶다는 말은 진짜 죽겠다는 말이 아니고, 이렇게 살기 싫다는 거야. 그냥 퇴사하고 싶다고.”
다른 말로 둘러댔지만 사실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었습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부터 생각해봐.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건 자유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자유.”
이어 덧붙였습니다.
“내 자유를 침범 당하는 순간 나는 회사를 언제든 그만둘거야. 그래서 주변을 정리하고 있어. 물건도 버리고. 뭘 많이 필요로 하는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요새 난 옷도 안 사.”
누구보다 럭셔리하던 선배였기에 그 단정한 결심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습니다. 선배는 멋진 옷이나 물건, 대단한 취향, 기분 내는 음식 같은 것들을 얼마나 포기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돈과 명예가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대접 같은 것들도 어느 정도 포기할 수 있나. 다 버리고 훌훌 떠날 자신이 있나.
답을 찾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을 찾았습니다. 직장에 다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지인이었습니다. 당신은 퇴사할 때 무엇이 두려웠고, 무엇이 자신 있었나요?
“지금도 두렵긴 한데, 사실 망해도 괜찮아요.”
“망하면 어떻게 살아요?”
“전 책만 읽을 수 있으면 돼요.”
책을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그런 삶만 있으면 된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그가 부러웠습니다. 그는 자기로 사는 데 큰 돈이 안 든다고, 책 읽는 건 돈이 별로 없어도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하지만,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영화만 볼 수 있으면 돼요.’ 이렇게요. 집은 없어도 위스키만 있으면 된다던 영화 ⟨소공녀⟩도 떠올랐습니다. 누군가는 철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남들이 하는거 다 하고 싶어하니까 돈이 그렇게 많이 드나, 싶고요.
나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나?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한 달에 반드시 써야 하는 돈은 얼마일까?
제일 먼저 포기할 수 있고,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건 뭘까?
난 정말 퇴사하고 싶은 걸까?
혼란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습니다. 저는 가진 게 너무 많습니다. 자산가라는 뜻이 아니라, 해야 하는 취미, 까다로운 취향, 갖고 싶은 물건, 인간관계, 의무, 경험... 그걸 다 책임져야 하는 줄도 모르고요. 가진 게 많기에 놓을 수 없는 것도 많았고, 그래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뭘 놓치면 죽을 것 같은지 도무지 쉽게 찾아지지 않는 거에요. 수 많은 껍질 속에 작은 알갱이 하나가 뭔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사하기 전에 이 답은 반드시 찾아야겠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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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창 일과 어거스트를 병행했을때, 누군가 그 모습이 멋있긴 한데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했습니다. 그땐 잘 보이고 싶어서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저는 그것밖에는 내세울 게 없었어요. 일이라도 잘하지 않으면, 아니 일로 시간을 채우지 않으면 나로 존재하는게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죠. 그래서 종종 아득한 불안이 솟구쳐오르곤 합니다. 자신 없을 때, 바닥이 들통나려고 할 때, 쓸모를 증명하고 싶을 때… 순간의 미칠듯한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노동을 하고 생산을 합니다. 안타깝게 생산에 도움을 줄 지식에 박식하지는 않아서, 가진 건 투지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엔 진짜 망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입술을 뜯고 다리를 떨고 그 일을 준비합니다. 여차저차 터진 곳을 봉합합니다. 해내고 난 뒤 얻은 안도는 다음 차례 직전까지입니다. 별로 멋있지 않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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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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