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보내서 피드백에는 관세가 붙어요
장희수 "인공지능 산업을 연구하는 사회과학 연구자 장희수 전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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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어거스트 뉴스레터에 잠깐 등장했던 장희수입니다.
에디터 시절에 본명으로 활동하는 패기는… 도대체 왜 부렸을까요? 역시 젊은이의 패기란…😂 개인적인 내용의 뉴스레터를 무려 본명(!)으로 내보낸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어거스트는 사랑이고 💖 구독자는 사랑이고 💖 저는 어거스트 에디터들을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거든요! 그래서 두서없이 주저리대볼 테니, 출퇴근 시간에 멍때리면서 슥슥 스크롤하다가 읽어주시면 그저 감사하겠습니다 🙏
어거스트 레터 쓸 당시에는 박사과정생으로 등장했는데, 시간이 흘러 지금은 매사추세츠대학교(UMass Amherst) 언론학과에서 미디어법과 미디어 윤리를 가르치고 있는 2년 차 교수로 살고 있어요.
제가 주력으로 연구하는 분야는 인공지능 윤리와 거버넌스인데요, 단순히 AI를 기술 그 자체로 연구한다기보다는, 그것이 사회와 권력, 민주주의를 어떻게 재편하는지에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 선거와 여론 형성 과정에서 AI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민주주의 🗳), 기업과 정부가 ‘AI 윤리’와 규제 담론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거버넌스 ⚖️), 미국·유럽·한국·중국 같은 국가들이 AI를 통해 힘의 균형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지(글로벌 권력 🌍), 그리고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새로운 문화적·윤리적 문제가 어떻게 등장하는지(문화 권력 🎬) 등을 연구해요.
말하자면, 저는 AI라는 거대한 기술 변화가 사회 속에서 누구의 목소리를 더 크게 하고, 누구를 배제하는지를 추적하는 사람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업계와 정책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민주적이고 책임 있는 기술 활용이 가능하도록 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
오늘은 그런데 연구 얘기보다는… 8월 특집 테마인 “그때 그 레터 썼던 에디터는 요즘 어떻게 지낼까?”에 맞게 작은 회고를 나눠볼까 해요! “신입 교수의 생존 일기” 같은 마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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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수의 일상
2. 교수라는 직업에 관한 회고 3. 30대 초반, 커리어를 넘어 인생을 고민하는 나이 4. 지난 5년간 조금은 잘하게 된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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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개강을 2주 앞두고 있네요… (아니 내 여름방학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죠? 🫠) 교수라는 직업의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또 개인마다 정말 달라요. 직급마다 맡는 역할이 다르고(예를 들어 학과장이나 프로그램 책임자처럼), 또 한국과 미국처럼 나라에 따라 제도도 다르거든요. 미국의 경우 보통 교수는 처음 4-6년 동안 성과를 쌓고, 그 후 심사를 통해 정년 보장을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9개월 단위 계약을 맺습니다. 그래서 여름방학 동안은 사실상 학교와 계약이 없는 상태예요.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이 지내는 건 아니랍니다. 어떤 분은 여름방학을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자기 개인 프로젝트에 몰두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연구과제를 받아 여름 동안에도 학생들과 연구실을 꾸려가며 월급을 받기도 해요. 여름 계절학기를 개설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추가 수업료를 받는 경우도 있죠. 같은 “교수”라고 해도 1년의 풍경이 다 제각각이고, 또 소속된 기관이 교수들에게 무엇을 우선순위로 요구하느냐에 따라 삶의 리듬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실 “교수의 일상은 이렇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 삶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요. 학기 중에는 정기적으로 학교에 출근해서 수업을 하고 학생들을 만나고, 방학에는 조금 더 숨을 고르면서 연구와 다른 일들을 하죠. 겨울방학은 연말 연초의 행사와 명절이 끼어 있어서 “쉬는 듯하면서도 바쁜” 시간이 되고, 여름방학은 조금 다릅니다. 학회도 다니고, 논문도 쓰고, 좀 놀기도 해요. 여름은 학자로서 숨을 돌리기도 하고 다시 달리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계절 같아요.
교수의 일은 크게 나눠보면 네 가지 정도가 있어요.
(1) 연구 – 논문을 쓰고, 발표하고, 출판하는 일련의 과정.
(2) 수업 –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배우는 것.
(3) 학생 멘토링 – 연구실에서 지도학생과 함께 연구를 하거나, 진로 상담을 해주는 것.
(4) 기타 행정 및 학회 활동 – 학과와 학교, 그리고 학문 공동체가 돌아가도록 돕는 여러 일들이죠.
결국 이 네 가지가 매일매일의 균형을 이루면서 교수의 삶을 만들어갑니다.
특히 학회 활동이라는 게, 참 묘하고도 신기한 일이에요. 아예 안 하는 교수님들도 있고, 거의 직업처럼 바쁘게 학회만 쫓아다니는 교수님들도 있죠. 천차만별이라서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학생들이 종종 물어봅니다. “교수님, 학회는 왜 꼭 가야 해요? 그냥 온라인으로 논문만 읽고 출판하면 안 되나요?” 솔직히 맞는 말이에요. 논문 쓰고, 저널에 게재하고, 온라인으로 다른 연구를 따라잡는 것만으로도 학자로서 살아가는 데 큰 무리는 없어요. 굳이 비행기 타고 멀리 날아가서 시차에 찌들고,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다니며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왜 필요할까 싶기도 하죠. 교수가 학회 활동은 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아마 이런 이유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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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가는 또 다른 재미는 남의 직장 탐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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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우고 나누는 자리 📚
무엇보다 기본은 내 연구를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에요. 논문은 늘 혼자 씨름하면서 쓰지만, 학회에서는 질문과 토론을 통해 제 연구가 살아 움직입니다. 어떤 질문 하나가 연구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하고요. 동시에 이건 내 연구를 알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위에 쌓을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내는 일이기도 해요. 학문은 혼자만 잘한다고 의미가 생기지 않거든요. 결국 다른 이들과 연결되어야 제 연구가 더 단단히 자리를 잡습니다.
2. 배우고 성장하는 자리 🌱 학회에 가면 전 세계 연구자들이 자기 연구를 쏟아내는데, 저는 그때마다 제 분야의 다른 랩들이 뭘 하고 있는지, 어떤 방법론이나 시각이 새롭게 나오고 있는지 배우게 돼요. 논문으로만 읽는 것과는 또 다른 감각이에요. 특히 현장 분위기 속에서 “지금 어떤 주제가 가장 뜨겁게 토론되고 있는지”, “어떤 흐름이 힘을 잃어가는지”를 직접 느낄 수 있어요. 이게 연구자로서 제 나침반 역할을 해줍니다.
3. 연결되고 확장되는 자리 🤝 또 학회는 협업 기회를 만드는 자리이기도 해요. 사실 “이 주제 같이 해볼까요?”라는 대화는 이메일보다 학회장 복도에서, 혹은 커피 한 잔을 들고 나누는 수다 속에서 훨씬 더 자연스럽게 시작돼요. 저도 학회에서 우연히 나눈 대화가 몇 년짜리 프로젝트로 이어진 경험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리고 더 현실적인 이유지만 중요한 것, 바로 학생 모집이에요. 학회는 전 세계 대학원생과 젊은 연구자들이 모이는 자리니까, 제 연구를 소개하고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우리 랩에 와도 좋아요”라고 전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됩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연구 주제가 인공지능과 사회과학의 접점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세계를 모두 오가게 돼요. 한쪽에서는 인공지능 연구자들과 만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사회과학자들과 마주 앉는 거죠.
예를 들어, 인공지능 유관 연구자들이 많이 모이는 학회로는 NeurIPS(머신러닝 분야의 가장 큰 학회), CHI(사람과 컴퓨터 상호작용), CSCW(컴퓨터 지원 협업 연구), AIES(AI 윤리와 사회) 같은 곳이 있어요. 여기서는 주로 기술적인 논의가 중심이 되지만, 동시에 “이 기술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윤리적으로는 어떤 문제를 만들까?” 같은 질문들도 점점 더 활발히 다뤄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연구가 이런 자리에 가면 작은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늘 보람을 느껴요.
반대로, 사회과학자들이 중심인 학회들도 꾸준히 갑니다. ICA(국제 커뮤니케이션 학회), APSA(미국 정치학회), AoIR(인터넷 연구자 협회) 같은 곳인데요. 여기서는 기술 자체보다는 정치, 사회, 권력, 문화 같은 맥락에서 인공지능을 바라봐요. “AI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업과 정부가 AI를 통해 어떻게 권력을 강화할까?”, “새로운 기술이 문화적 생산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같은 질문들이 오가죠.
저는 이 두 세계를 오가며, 기술과 사회를 따로 떼어놓지 않고 함께 바라보려는 시야를 조금씩 키워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학회가 제 연구 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이런 활동을 얼마나 응원해주고 뒷받침해주는지가, 이제 막 연구자의 길을 시작한 저 같은 신임 교수에게는 직장을 고를 때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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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교수 생활을 시작한 지 고작 1년 남짓, 말하자면 완전한 새내기 단계지만 😅 그래도 이 기회를 빌어 저의 교수 생활에 대한 작은 회고도 남겨보려 해요. 지난 1년을 돌아보니, 교수라는 직업이 주는 보람과 어려움, 또 의외의 즐거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더라고요.
1.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 ✨ 교수라는 직업을 해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학생들을 대면하면서 느끼는 직접적인 보람이에요. 저는 학부생일 때 교수님들이 참 무서웠거든요. 늘 바빠 보이시고, 다가가면 괜히 방해가 될 것 같고, 사회적으로 엄청 중요한 사람들처럼 느껴졌어요. 솔직히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질문이 있어도 “내가 괜한 질문을 해서 괴짜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차마 입을 열지 못했죠. 그런데 사실 우리는 다 배우면서 알게 되는 거잖아요?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스스로는 절대 깨닫기 어려운 것들이 많아요.
막상 제가 교수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건, 교수님은 학생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학교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더 많이 알려주고 싶고, 학생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고 싶고, 새로운 무대에서는 여전히 긴장도 하는 사람들이니까 대학교에 온 거죠! 그런데 학생의 눈에는 그게 보이지 않으니까 괜히 괴리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교수가 되면서 다짐한 것 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교수도 그냥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자”였습니다.
그래서 매 학기 초반에는 꼭 이런 이벤트를 해요. “2주 안에 제 오피스를 방문해서 초콜릿을 받아가면 가산점 +1점!” 얼핏 보면 소소한 장난처럼 보이지만, 사실 숨은 의도가 있습니다. 교수실 문을 두드리는 일이 결코 무섭지 않고, 오히려 즐겁고 유익한 경험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교실 밖에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일상 얘기도 나누다 보면 좀 더 친근해지는 것 같아요.
게다가 교수실에는 사실 학생들이 알면 좋을 정보들이 정말 많이 흘러들어옵니다. 각종 공모전 소식, 인턴십 기회, 대학원 연구실 정보, 학과와 학교에서 제공하는 장학금 소식까지. 하지만 학생들은 그게 자기에게 유용한 정보인지조차 판단하기 어렵고, 어디서부터 질문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곤 해요. 혼자 해결해야 할 것 같아 괜히 주저하는 경우도 많죠. 그런데 사실 이런 건 교수들이 제일 잘 아는 부분이에요. 저는 제 학생들이 제 오피스를 방문하면서 자연스럽게 “아, 교수실은 무서운 곳이 아니라 유익한 곳이구나”라는 걸 몸으로 체감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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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학원생들과 매뉴얼 없는 공간을 함께 살아내기 대학원생들과의 관계에서는 또 다른 보람을 깊게 느껴요. 대학원이라는 곳은 참 묘합니다. 교과서도, 정답지도 없는 공간이거든요. 학부처럼 시험과 학점으로만 평가되지도 않고, 사회처럼 명확한 직급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학생이면서 동시에 연구자이고, 연구실 안에서는 후배이자 동료이고, 또 지도교수와는 미묘하게 의존적이면서도 독립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죠. 그래서 늘 어딘가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저도 대학원 시절 내내 이 복잡한 위치 때문에 헤매던 기억이 아직 생생해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불안이 늘 따라다니고,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도 몰라 혼자 끙끙대던 시간이 참 많았거든요. 그때마다 “이 길을 먼저 걸어본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이제 제가 교수가 되고 보니, 그때 갈망하던 그 ‘누군가’가 되어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었더라고요. 제게 주어진 자원과 위치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나눌 수 있고, 더 넓은 범위에서 학생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게 된 거예요. “이럴 땐 이렇게 해도 괜찮다”, “그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연구는 가까이서 보면 엉망진창으로 엉킨 실타래같지만 멀리서 봤을 때는 상향선이다” 같은 말들을 건네는 순간, 학생들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그 순간이야말로 이 직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누군가의 짐을 완전히 대신 져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옆에서 “너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지더라고요! 학생들의 어깨가 조금 내려가고, 눈빛이 조금 덜 흔들리는 걸 볼 때마다, 제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지고 가벼워집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깨달아요. 아, 나도 이 길에서 혼자가 아니구나. 서로 기대고 배우면서 같이 살아내는 거구나.
그리고 사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멘토들 덕분이었어요. 지도교수님을 비롯해 여러 선배 연구자분들, 그리고 학문 밖에서 저를 응원해주고 따뜻한 조언을 건네주신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마음속에 이런 다짐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받은 그 따뜻함과 지지를, 나도 다음 세대에게 반드시 돌려주자. 지금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 하나, 건네는 말 한마디가 언젠가 그들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제가 교수가 된 이유 중 하나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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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당신의 지도교수는?’ 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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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수라는 직업의 의외의 매력은 유연함 🌈 교수라는 직업의 또 다른 매력은 의외로 ‘유연함’이라고 생각해요! 흔히 교수라고 하면 연구실에 틀어박혀 논문만 쓰거나, 강의실에서만 살아가는 사람을 떠올리잖아요. 저도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이 직업은 훨씬 더 다양한 무대를 오가는 일이더라고요.
논문을 쓰고 학회를 다니는 건 기본이고, 기업과 협업을 하기도 하고, 정책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대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쓰기도 합니다. 연구실 문을 나서는 순간, 교수의 무대는 학계에만 한정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교수'라는 직업명보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농담처럼 말해요. '학교는 기획사고 교수는 아이돌 같다'고요. 연구비를 따오면 학교와 나눠 쓰고, 외부 프로젝트를 맡으면 광고 계약처럼 느껴지고, 정책 자문에 참여하면 마치 외부 무대 활동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정규 앨범 활동 같고, 학회 발표는 해외 투어 같기도 해요. 실제로 해외 학회를 다니며 시차 적응에 허덕일 때면, 정말 아이돌 투어와 다를 게 없구나 싶습니다.
물론 자유롭다는 건 동시에 더 큰 책임도 요구해요. 연구자로서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 앞에서는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내야 하고, 정책 현장에서는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하죠. 상황과 무대에 따라 제가 맡는 역할이 달라지다 보니, '하나의 얼굴'만으로는 이 직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실감합니다. 교수라는 직업은 끊임없이 여러 얼굴을 바꾸며, 다양한 목소리와 태도를 요구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요즘 저는 '내가 교수라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기보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무대에서, 어떤 언어로, 어떻게 설 수 있는가'를 더 자주 묻습니다. 그 질문이야말로 이 직업이 주는 가장 큰 자유이자, 가장 값진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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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흔한… 정신승리인가보네요??? 미쳐가는 건가 우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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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고의 장점 – 항상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수라는 직업이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항상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에요. 사실 이건 제가 매일같이 감사하게 여기는 특권이에요.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늘 새로운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가득한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고, 회의실에 앉아 있으면 각자의 분야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해나가는 동료 학자들이 제 옆자리를 채우고 있거든요.
학생들이 던지는 질문 하나는 때로 제 머리를 며칠이고 붙잡아두며 생각하게 만들어요. “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제 시각의 빈틈을 가감 없이 드러내주기도 합니다. 또 동료 연구자들의 논문을 읽다가, 제 연구의 방향이 완전히 새로워지는 순간도 많아요. 그런 경험은 늘 제 안의 한계를 일깨워주면서 동시에 한 발짝 더 나아갈 힘을 주더라고요.
처음에는 솔직히 두렵기도 했습니다. 늘 나보다 더 똑똑하고 더 잘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내가 과연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따라다녔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어요. 그것은 위축될 이유가 아니라, 제가 더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라는 걸요. 혼자 잘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고, 오히려 서로의 빛을 반사하면서 함께 더 밝아지는 관계라는 걸요.
저는 지금도 제 학생들과 동료들에게서 매일 배우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정, 성실함, 창의적인 시도, 그리고 끈질긴 질문들이 저를 끊임없이 흔들고, 또 세워줍니다. 그런 순간마다 제 마음은 자연스레 존경으로 차오르고, “아, 내가 이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를 새삼 느껴요.
그래서 교수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간다는 건 단순히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지도를 하는 일이 아니라, 동시에 매일같이 배우고 성장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뜻인 것 같아요! 제 자리의 가장 큰 기쁨은, 바로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동체 안에 있다는 거예요. 결국 제가 학생들에게 주는 것보다, 학생들과 동료들에게서 배우고 얻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이 고마운 배움의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은 동료이자, 조금은 든든한 길잡이로 남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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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 커리어를 넘어 인생을 고민하는 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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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저는 늘 직업을 제 정체성의 중요한 한 조각으로 생각하지만, 동시에 직업이 제 전부는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저는 교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누나이고, 조카이고, 이모이고, 친구이고, 선후배이고, 또 누군가의 연인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교수로서의 삶은 물론 소중하지만, 교수가 아닌 삶 또한 똑같이 소중하고 귀합니다. 그런데 서른을 넘기고 나니, 그 “교수가 아닌 삶”에서 짊어져야 하는 책임도 훨씬 커지더라고요. 아, 이런 게 어른이라는 걸까요?
돌아보면 제 20대는 정말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이었어요. 20대 초반에는 인턴을 전전하면서 휴학도 몇 번이나 하고, 서른 번쯤은 커리어를 갈아엎은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았죠. 20대 중반에는 석사를 하면서 연구소 경험도 쌓고, 나름대로 “전문가의 삶”이라는 걸 조금씩 맛봤습니다.
그리고 박사 과정을 지나, 어느새 교수가 되었을 때… 뒤돌아보니 저는 이미 만으로 서른이더라고요. 모순적이게도 공부를 다 끝내고 학위까지 마쳤는데, 오히려 지금부터가 진짜 인생의 시작인 느낌이에요! 이전까지는 늘 눈앞의 시험, 논문, 졸업, 취업 같은 뚜렷한 목표지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 목표지를 제가 직접 세워야 하는 시기가 된 거예요. 어떤 교수가 되고 싶은지, 어떤 30대를 보내고 싶은지, 결혼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부모님과는 앞으로 어떻게 더 돈독하게 지낼 수 있을지… 어른으로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를 찾아옵니다.
요즘은 현실적인 단어들이 하나둘 제 일기장에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세금 정산, 은퇴 계획, 집 마련 같은 단어들이요. 예전에는 뉴스 속에서만 보던 단어였는데, 이제는 제 노트 한 귀퉁이에 적혀 있는 걸 발견할 때마다, “아, 나도 이제 진짜 어른이구나” 싶은 순간이 와요. 그런데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근데… 이게 어른….? 내가… 어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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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선택권은 이미 없다… 이미 왕어른의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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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를 마무리하면서, 왕어른(?)이 되어가는 저 자신을 잠깐 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5년 동안 제가 조금씩 배워온 것들을 나눠보려 해요. 대단한 성취나 드라마틱한 전환은 아니에요. 그냥 매일 부딪히고 흔들리면서, 아주 조금씩 덜 서툴게 살아가게 해준 깨달음들입니다. 마치 제 인생 곳곳에 작은 북마크를 하나씩 꽂아둔 순간들이랄까요. 독자님들도 읽으시면서 “아, 나도 이런 적 있었지” 하고 고개 끄덕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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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잘하게 된 것들과 더 잘하고 싶은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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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조금은 잘하게 된 것들은 아래와 같아요.
1. 행복은 미루지 말자 💫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경험하면서, 제 삶에 아주 큰 변화가 생겼어요. 예전에는 “언젠가 보겠지”, “언젠가 해보겠지” 하면서 자꾸 미뤘는데, 이제는 그 “언젠가”가 정말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바로 보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먹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때 바로 해요. 사랑한다는 말도 더 이상 아끼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자’는 다짐이 습관처럼 몸에 배었어요.
2.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 저는 늘 “다정한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다정함은 그냥 마음씨 착하게만 살아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에너지가 바닥나 있으면 다정함은커녕 말 한마디 건네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꾸준히 운동하고, 정신적으로도 체력을 관리하는 습관을 들였어요. 덕분에 학생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한 태도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요즘은 스스로에게 자주 말해요. “다정함은 체력이다.” 이건 제가 교수로서 배운, 조금 웃기지만 꽤 진지한 진리입니다.
3. 바운더리 세우기 🚧 교수의 장점이자 단점은 똑같아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덕분에 일정에 유연함이 있지만, 반대로 언제든 일에 끌려 들어가 버릴 수도 있죠. 그래서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제 삶에 분명한 경계선을 긋는 법을 배웠어요. 어떤 요일과 시간에는 반드시 일하고, 어떤 시간에는 무조건 쉬는 거예요. 그걸 저 스스로 지켜내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더라고요. “그때는 안 돼요, 그건 못 해요”라고 말하는 용기를 가지는 것, 그게 오히려 제 삶을 더 건강하게 만들었습니다.
4. 완벽주의 내려놓기 🎈 예전에는 뭐든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완벽하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오늘 쓴 논문은 분명히 하자가 있을 거고, 발표한 연구는 누군가에게 비판받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있어야 다음 논문이 나오고, 다음 아이디어가 생기죠.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완벽한 논문도, 완벽한 작품도, 완벽한 인생도 없어요. 대신 불완전함 속에서 성실하게 나아가는 내가 있고, 그게 더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앞으로 이런 것들을 더 잘하고 싶어요!
1. 인생 설계 배우기 📑 학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이제 좀 알 것 같은데, 인생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정말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건강보험, 실비보험, 은퇴 계획, 노후 자산관리 같은 단어들이 요즘 제 일상 대화에 자꾸 끼어드는 걸 보면, 저도 나이를 먹고 있구나 싶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은 너무 낯설고, 가끔은 무섭기도 해요. 게다가 결혼, 육아, 부모님과 가족 생각 같은 것까지 더하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아니 다들 이걸 어떻게 해내시는 거예요 진짜?” (입틀막)
2.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 모든 걸 다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나에게 중요한 게 뭔지 정확히 알고 그것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생은 이미 충분히 하드코어하니까요. 우리가 여기까지 버텨온 것만 해도 사실 대단하잖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완벽하게 다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걸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3. 한국과 미국을 잇는 다리 놓기 🌉 지금 제가 미국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책임지는 건 학생들, 동료 학자들, 그리고 제가 속한 공동체예요. 당연히 그분들에게 돌려드리는 건 제 의무이자 기쁨이에요. 그런데 마음 한 켠에는 늘 한국이 있어요. 저를 키워낸 모국이고, 제가 연구하는 주제와도 깊이 맞닿아 있거든요. 그래서 한국의 미디어 산업 현직자, 연구자들과 더 자주 소통하고 싶고, 더 많이 나누고 싶고, 더 많이 돌려주고 싶습니다. 언젠가 제가 그 다리를 단단하게 놓을 수 있기를, 그래서 두 세계를 오가며 더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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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맺으며 💕 어쨌든 이렇게 두서없는 저의 회고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저도 아직 답을 다 찾은 건 아니고, 그냥 매일 하루하루를 업데이트 중인 30대 초반의 인간일 뿐이에요. 어른 흉내를 내다가도 집 마련 얘기 나오면 순식간에 응애 모드가 되고, 강단에 서면 괜히 왕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젖는 저를 보며… 아, 이것도 나름 균형 잡힌 인생인가 싶습니다.
피드백으로는 대학생 시절 만난 교수 썰, 대학원 썰, 왕어른 꿀팁 같은 걸 공유해주시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제발)! 다음에 또 만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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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장희수>의 코멘트
지드래곤의 웃으면 안되는 생일파티! 지드래곤 고문 현장 함께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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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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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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