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한새벽 : 나를 직업으로 설명해야하나요
한새벽과 그의 ChatGPT
" 너 어거스트에 한새벽이라는 에디터가 있었던 거 알아? "
" 네. 한새벽 에디터는 미디어 뉴스레터 어거스트에서 2022년 10월부터 2023년 초까지 활동하며, 주로 디자인 스튜디오, 브랜딩 전략, 넛지 마케팅과 젠더 감수성 같은 주제를 다뤘고, 예로 「모르면 안 되는 디자인 스튜디오」(2022년 10월 23일)와 「귀여우면 다냐?! 부드러움이 이기는 방법」(2023년 1월 초)의 레터가 대표적입니다. 그의 글은 감각적인 문체와 날카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복잡한 이슈를 대중적으로 풀어내며, 구조와 감정을 균형 있게 배치해 독자의 사고를 유도하는 스타일이 특징입니다.
" ... 그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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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거스트 특집: 집 나간 에디터들의 생존 신고 ⭐️
오래 구독해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어거스트에는 그동안 많은 에디터들이 오고 갔습니다. 다들 본업이 있는지라 바빠지면 어거스트 활동을 잠시 쉬기도 하고, 그렇게 새로운 에디터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했어요. 그때 그 레터 썼던 에디터는 요즘 어떻게 지낼까? 궁금하셨을 분들을 위해 8월의 목요일에는 예전 에디터들의 요즘 사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해요.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피드백으로 주신 질문은 모아서 답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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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새벽입니다.
이 인사가 무려 2023년의 레터가 마지막이었대요. 2년을 레터를 쓰지 않은 채로 지나보냈는데도 어거스트와의 연은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은 쓰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근에 어거스트 리브랜딩도 진행했었어요. 구독자분들에게 굿즈를 보내드렸었는데, 네네 제가 그 리브랜딩을 디자인했었던 사람입니다. 몰랐죠 몰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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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에는 멋진 길드장님들이 계시지만, 제일 컨트롤이 어려운 길드원이 있다면 제가 아닐까요. 그럼에도 항상 다시 잡아와, 어항 안에 넣어주시는 다정한 분들이십니다. 아니 나는 바다로 가고싶다니까
그동안 뭐했냐고 물어보신다면.... '와 이걸 사네'. 싶은 삶을 살았습니다. 힘들게 살아남았습니다. 제 안에만 간직하던 이야기들을 이번 기회에 조금은 들려드려보려고요.
[ 에디터 새벽의 최근 발행 레터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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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 직업이 뭐니? 2. 나는 계속해서 무대를 바꿔가며 무언가를 창조하고 있었다 3. 물 속에서 숨 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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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퇴사 이후, 누가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백수'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도 모른 채 지냈습니다. 오랜 시간 스스로의 발전과 커리어적 성장에 목숨을 걸었던 저는, 번아웃이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는 잿더미였습니다. 꽤 많은 걸 이루고 있었지만, 항상 목이 졸리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숨을 쉬기 힘들었어요. 죽음과 점점 가까워지는 정신과 몸을 부여잡고 간신히 도망친 끝에, ‘백수’가 되어버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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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된 첫 날 한거라고는, 아무 버스나 타고 아무 정거장에 내리기. 낮에 한강에 누워서 커피마시며 그림그리기... 이거슨 낭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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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이었던건 항상 몰입하고 있는 게 있었어요. 언제나 제 삶의 근간에는 디자인, 시각적 예술, 창조 본능이 꿈틀대고 있었고,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아도 항상 무언가에 미쳐있느라 바빴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있어보이게 (가난한) 예술인이라고 대답할 걸 그랬네요. 회사를 나온 저는 정말 '원래 하고싶었던 것'에 대한 갈증을 푸느라 바빴습니다. 대학을 가야해서 못했던 것, 취업을 해야해서 못했던 것, 일이 바빠서 못했던 것, 모든 것들이 다 배울거리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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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이... 홍대 지하의 연습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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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몰입했던 건 '춤'이었어요. 뜬금없는 춤바람은 아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영상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항상 음악이라는 예술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시각적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다른 방향에서도 음악을 듣고 보고싶었죠. 그렇게 계절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매일 연습실에서 아침인지 밤인지도 모를 시간들을 보냈어요. 원래부터 잘했던게 아니라 막 배우기 시작한거다보니 고통이 뒤따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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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몰입했던 건 '공예'였어요.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걸 워낙 좋아했던지라 (놀이터의 흙장난 시절이죠), 이 기회에 뭐라도 만드는 공방을 다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사실 손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분야는 상관 없었어요. 목공부터 도자기, 악세사리, 심지어는 미싱까지. 이것 저것 찔러보다가 결국 찾은 분야는 '레진 아트'였어요. 처음엔 그저 재미로 재료를 사서 유튜브를 보고 배워, 친구의 키링을 만들어줬습니다. 그러다가 이걸 브랜드화 시켜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브랜드를 시작하는 방법은 전혀 몰랐기에, 덜컥 인형 포장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그 제품의 생산과 판매 구조를 알고 싶어서, 직접 생산하고 포장하는 곳에 들어갔어요. 그때 제가 아주 기쁘게 자기 발전이라고 느꼈던건, "어제보다 택배 박스 테이프를 잘 붙였다" 였습니다.
아침마다 회의에 끌려가는 일도, 상사 눈치를 보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게 좋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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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수백개의 택배를 포장하고 송장을 붙여 보냈습니다. 테이프 붙이기의 달인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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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해서 무대를 바꿔가며 무언가를 창조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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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친구들 하나둘 제게 불안을 던져두고 떠났던 기억이 있어요. “언제쯤 다시 제대로 일할 거야?” 라는 질문. 확실히 좀 수상하긴 했죠. 일에 미쳐서 살았던 그 시절, 분명 죽을 힘을 다해 이뤄놨던 디자이너의 모든 커리어를 던져놓고. 매일 술을 마시고, 춤을 추러 다니며, 택배를 포장하는 알바생. 그게 겉으로 보이는 저였으니까요.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 제가 한 가지 확신했던 건, 그냥 난 무언가를 아주 지독하게 배우고 있고, 이게 분명히 날 성장시킬거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눈을 감고 걸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중요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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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처음 배운지 4년, 정말 그냥 꾸준히 했습니다. 내 성장이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분야는 오랜만이었어요... 매일 좌절만 겪었지만 그래도 다시 연습실에 나갔습니다. 혼자 그 좁은 방에 갇혀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땀을 흘리다보면 내가 과연 지금 뭘 하고 있는걸까 싶은 순간도 많았어요. 내가 뭘 하는걸까, 뭘 이루고 싶은걸까, 뭐가 되고 싶은걸까, 그래도 몸을 움직이다보면 생각은 잦아들고 거울 속의 나에 집중하는 순간들만 남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한 공연팀에 들어가 거의 매주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어색하던 무대가 지금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어떻게 무대를 빛내는 연기를 할지를 고민하고 집중하는 사람이 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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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연습과 무대 경험이 준 용기, 사람을 모으는 일. 그리고 함께 성장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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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항상 기회를 노렸고, 준비했고, 갈고 닦았습니다. ‘가르치는 일’을 하는 직업이 저랑 아주 잘 맞는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마치 오타쿠가 자기가 좋아하는 애니에 대해서 밤새도록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저도 디자인에 대해서는 밤새도록 얘기해도 모자랄 정도로 그 분야를 좋아했었으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이 덕질을 사람들과 나눠야한다고 생각이 들었고 (전형적인 오타쿠의 마인드), SNS에 홍보하며 디자인을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처음엔 그룹의 스터디장이었던 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점점 규모가 커지고, 지금은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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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쉴새 없이 제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떠들어댔고, 감사하게도 꽤 많은 학생분들이 이걸 좋아해주셨습니다. 마치 저에겐 매 강의 시간이 공연 같았어요. 교육이라는 또 다른 무대 위에서, 저는 학생들과 호흡하며 흥미로운 극을 펼쳐보이려 노력했죠. 어쩌면 제 가장 변태같은 점은 개그맨이 된 마냥 강의를 진행하려 했다는 점인데요. 즐거웠다는 감정을 남기게 해서 ‘나 사실은 디자인 좋아하는 거 아닐까?’라는 감정의 혼란, 착각을 유발시키려고 했습니다. 이거 나름 치밀한 전략이라고요. 그렇게 매번 무대같은 강의를 마친 뒤에는, 강사 캐릭터가 된 저의 열정이 기립박수를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모든 무대가 재밌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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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디자인 공부가 아닌, 몇년을 티칭하는 법에 대해서도 공부했습니다. 연기자나 성우 공채 시험마냥, 발음부터 말투도 공부하며 고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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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를 좋아해서 택배를 포장하던 알바생도 역시 발전이 있었습니다. 결국 내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욕심 아래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디자인 브랜드를 런칭했죠. 현재는 홍대 AK프라자에도 입점되어있는, 핸드메이드 제품 플랫폼인 아이디어스에서도 우수 작가를 수상한, 어엿한 브랜드의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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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도 사진도 직접 찍습니다. 자영업자 사장님의 슬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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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게 된 건, 어머니와의 약속때문이었습니다. 수영을 좋아하시던 어머니를 데리고 바다를 갔던 게 생각납니다. 그날 어머니는 너무나도 좋아하시면서, 꼭 바닷속 깊이 들어가보고싶다고 하셨어요. 응, 그래, 가자, 나랑 해외 가서, 예쁜 바닷 속에 들어가서 오래 같이 있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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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대화를 나눴던 당시 어머니와 찍은 사진에 AI의 힘을 조금 빌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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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딸은, 혼자 남아 어머니의 꿈을 다시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죠. 그리고 안타깝지만 다이빙은 그렇게 만만한 스포츠가 아니었고요. (고놈 참 잘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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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o to the ocean to calm down, to reconnect with the creator, to just be happy.” ― Nnedi Okora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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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자격증을 따는 과정은, 이것저것 배워야할 게 많았어요. 배우고 익혀야 할 게 많았고, 생존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보니 외워야 할 것도 있었습니다. 스킬을 배우는 게 힘이 들때면, 그저 눈을 감고 가만히, 더 깊고 깊게 가라앉았어요. 바닥까지.
숨을 깊게 들이쉬면 몸이 달싹 올라가고, 내쉬면 다시 천천히 가라앉는 순간. 그냥 그걸 느끼며 조용히 물 안에 파묻혀 있고 싶었어요. 발버둥칠수록 더 힘들어진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요.
내가 얼마나 조급한지, 얼마나 두려운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건 제 호흡, 즉 들숨과 날숨에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제 숨소리에 집중하는 순간이었죠. 밖에선 단 한번도 귀 기울여보지 않았던 내 호흡.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숨을 쉴 수 없는 가장 깊은 물 속에서야 비로소, 저는 숨을 쉬는 법을 배운 것 같았어요. 그렇게 조용히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가. 문득. 그제서야.
내가 생명체라는 걸 느꼈어요. 처음으로 ‘내가 숨을 쉬고 살아 있는 존재’라는 걸 느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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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원인에는 절 집어삼켰던 깊은 어둠이 있었습니다. 목을 조이는 우울과 허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가라앉은, 아주 깊고 캄캄한 어둠. 필사적으로 발버둥칠수록 더 밑으로 끌려들어갔고, 그나마 빛이라 생각했던 것조차 손을 뻗을수록 사라져가는.
처음에는 어둠에서 빠져나오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은, 그 어둠에서 깊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뱉고 있어요. 누구보다 차분하고, 조용히, 내 숨소리를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물고기였나봅니다. 물을 떠나 지상에서 숨을 참고 살아가고 있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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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행복한 물고기가 되어 조용히, 깊고 단단하게 숨 쉬고 있어요. 이것이 제가 들려드리고 싶었던 동화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이 근황 레터는 원래 이렇게까지 장황할 계획이 없었지만, 새벽 4시에 글을 마무리하는 바람에, 또 감성이 충만하게 쓰여져버렸네요. 이래서 일은 미리미리 해야합니다.
직업으로 나를 설명해야할까요? 전 퇴사 이후 그걸 부정하기 위한 삶의 길을 걸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엔 이런 동화같은 자서전말고, 디자인 얘기로 돌아올게요. 계속 말했지만, 저는 디자인을 참 좋아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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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한새벽>의 코멘트
행복할 때도 외로울 때도 무너질 때도 일어날 때도, 항상 그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비오네.
"안녕 오랜 내 여름아
뒤돌아 보지 마
어려운 말 없이
이대로 보내주자 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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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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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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