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제 주식에 따사로운 빨간 불이 들어오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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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구현모입니다.
글을 쓸 때 가장 두려운 일은 무엇일까요? 맞춤법? 띄어쓰기? 악플? 매서운 피드백? 제가 글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무서운 일은 '시간이 흘렀을 때 다시 봤는데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한 것'입니다. 글쓰는 당시에는 내적 논리는 기본이고, 이를 지지할 외부 근거도 있으니 당당하게 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게 틀린 예측 혹은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판명났을 경우 그만큼 부끄러운 게 없습니다. 마치 위대한 교수님들이 석사 논문을 다시 안 보는 이유와 비슷하겠죠.
오늘은 어거스트를 하면서 틀렸던 제 전망을 다시 한 번 복기해보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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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린 말
2. 절반 정도는 맞는 말
3. 지금 봐도 맞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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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도에 저는 '2021년도 국내외 미디어 예측'이라는 레터로 트릴러와 스냅챗 그리고 디즈니플러스를 주목할 만한 사업자로 꼽았습니다. 이젠 기억에서 잊혀진 트릴러는 '북미판 틱톡' 내지 '틱톡의 대항마'로 손꼽혔습니다. 실제로 틱톡 인플루언서들을 많이 빼오고자 했죠. 하지만 트릴러는 존재감을 뽐내지 못하고 망했습니다. 저는 당시 미국 내 반중심리 내지 행정부에 의한 틱톡 서비스 중지를 예상했습니다. 허나, 정치인과 별개로 미국인들의 반중심리는 크지 않았고 미국 내 서비스 철수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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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레터에서 스냅챗의 재도약도 예상했습니다. AR과 VR 그리고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한 여러 필터가 나올 때, 이를 성공적으로 사업화한 플레이어가 스냅챗이었으며, 소셜 미디어인 동시에 메신저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때문에 한 방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네트워크 효과는 너무나 강력했으며, 인스타그램(릴스) 과 틱톡의 과두정치 시대로 넘어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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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디즈니플러스에 대한 예측도 실패했습니다. 당시 저는 1) MCU가 망해도 3대는 간다 2) 로컬 프로덕션과의 협업이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내적 근거와 디즈니의 투자액이라는 외적 근거로 나름의 가설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MCU 본진은 무너졌고, 이에 기반한 드라마들도 흥행 및 완성도 모두 최악으로 치닫았습니다. 저는 MCU 드라마를 모두 보았는데, ⟨로키⟩와 ⟨완다&비전⟩ 그리고 ⟨애거사 올 얼롱⟩을 제외하면 시간이 아까운 수준이었습니다. 디즈니가 진출한 나라의 현지 제작사와 진행한 협업들도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현재 전세계에서 미국과 함께 투탑으로 꼽히는 드라마 제작 강국 한국에서 성적을 봐도 그렇습니다. ⟨무빙⟩을 제외하면 기억에 남는 작품이 없으며 야심차게 내세운 ⟨넉오프⟩도 좌초 위기입니다. 디즈니의 제작 퀄리티가 유지될 것이라는 제 전제가 틀렸습니다. 구독자 수 역시 정체와 하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22년 4분기 1.64억에 달하던 구독자는 현재 1.25억 명으로 떨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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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프로 생산을 멈춘다는 루머도 퍼졌습니다 © The Inform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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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에 보내드렸던 '리얼리티, 게임과 만날 수 있을까?' 레터에서 저는 리얼리티 시장이 개화되면 웹툰이 수혜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애플 비전 프로로 대표되는 리얼리티 기기가 시장에 침투한다면, 가장 쉽게 소비할 수 있는 형태가 웹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보는 데에 큰 시간이 들지 않고, 그렇기에 배터리를 많이 잡아먹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글로벌 시장이 조금씩 개화되고 있었기 때문이죠 (한, 미, 일).
하지만 리얼리티 시장은 개화하지 못했습니다. 하이엔드 기기인 PSVR 및 애플 비전 프로부터 보급형 기기인 메타의 퀘스트까지 성공적으로 안착하지 못했습니다. 24년 기준 VR 헤드셋의 출하량은 전년 대비 12% 감소하며,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습니다. 당장 주변만 돌아보더라도 VR헤드셋을 즐기는 사람을 쉬이 찾기 어렵습니다. 메타가 오라이온 등 최첨단 글래스를 내놓고 있지만, 아직까지 양산하진 못했습니다. 즉, 대중화된 기기도 없으며 평론가의 찬사를 받는 제품은 아직까지 대량 생산이 가능한 수준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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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전제부터 틀린 예측이 있다면, 절반 정도는 맞는 예측도 있습니다. 저는 과거 '뜨거웠던 감자 MCN 다시 알려드립니다' 레터에서 무조건 커머스와 연결된 MCN 경영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각광 받는 스튜디오 에피소드는 여타 MCN과 달리 커머스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뷰티 MCN들이 명맥 유지 가능한 데에는 커머스와 연계 가능성 덕분입니다. 유튜브 쇼핑과 카페24의 연계 덕분에 모든 크리에이터들이 각자의 브랜드를 만들거나 혹은 공동구매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결국, 광고 때문입니다. 브랜드들은 광고를 더욱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비용을 줄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더욱 탑크리에이터에게만 광고가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해 작은 크리에이터부터 거대한 MCN 회사까지 모두 커머스에 목을 매다는 수밖에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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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크리에이터도 커머스 사업에 진출합니다 © 카페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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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도에 '아프리카는 어떻게 강한 서비스가 되었는가' 레터로 숲(아프리카)에 대한 예측도 절반은 맞았습니다. 전 아프리카가 계속 잘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습니다. 트위치, 치지직, 유튜브 라이브 등 다양한 경쟁자가 있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숲이었습니다.
사실 이전까지 숲의 가장 큰 단점은 '로컬 사업자'라는 점이었습니다. 트위치와 유튜브는 글로벌 송출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었고, 숲에게는 이게 치명적 단점이었죠. 그러나 이제 숲도 글로벌 송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실제로 유명 BJ들은 글로벌 매출을 벌어오는 신산업역군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와 팬덤 비즈니스의 교집합으로서 입지전적인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네, 저는 이렇게나 잘 될 줄 몰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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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에 대한 예측도 절반은 맞았습니다('뉴진스는 ???의 승리다', 23년 발행). 당시 저는 뉴진스의 성공이 1) 하이브라는 하부구조가 2)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한 상태에서 3) 크리에이티브가 빛난 거대한 기획의 승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구조가 계속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실제로 뉴진스의 작업물은 꾸준히 평론가와 대중을 동시에 사로잡았습니다. 다른 그룹에 비해 눈에 띄는 차별점이 확실히 있었고, 분명히 리딩 그룹이었습니다.
다만, 그 구조는 멈춤을 넘어서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의아함을 사는 리스크 매니지먼트도 모두에게 아쉬움을 사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뉴진스라는 기획 자체가 너무 비대해졌고, 계약보다 위대한 기획을 추구한 나머지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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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뉴비가 사라진 한국 드라마 & 영화 업계' 레터에서 앞으로 '뉴비', 즉 신입 사원들과 주니어 레벨의 크리에이터들이 설 자리가 너무나 없어졌고, 앞으로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전망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콘텐츠 제작에 들어가는 자본은 점점 줄어가는데, 개별 콘텐츠에 들어가는 제작비는 점점 올라갑니다. 더더욱 믿을 만한 크리에이터들에게 일감을 줄 수밖에 없고, 신규 크리에이터들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이 기능을 방송국 공채가 수행하고 있었는데, 이젠 방송국들이 제작 자회사로 제작 기능을 외주화하며 공채를 줄이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빈 상태가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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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노동시장의 문제는 한두 가지로 결론내리기 어렵습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이 맞이한 경기 침체, 넷플릭스를 제외한 OTT 사업자의 부진과 너무나 비대해진 연예인 몸값까지 여러 요인이 결부되어 있습니다. 방송이라는 글자를 떼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턴을 쓸 바에 인공지능을 쓴다'는 사업장이 많아졌고, 에이전트 AI까지 발전하면 '신입사원 대신에 인공지능 쓴다'라는 말이 대기업에서도 통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동시장의 관문인 식당 아르바이트 자리도 기계로 대체되고, 낯설었던 키오스크 결제가 익숙해지며 더욱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 같습니다. 결국, 한국의 노동 시장에 대한 새로운 타협안 혹은 규칙을 논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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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가 예능 제작에 눈독들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이제 무한~도전! 은 없다, 위기의 TV 예능' 레터에서 다뤘습니다. 드라마에 비해 제작비도 덜 들어가고, 커뮤니티에서 바이럴 되는 난이도도 용이하기 때문이죠. 쿠팡플레이에서 본편을 본 사람은 없어도 SNL의 수많은 캐릭터를 우리가 알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더불어 드라마와 달리 시의성 있는 캐스팅으로 빠르게 콘텐츠 제작이 가능합니다. 가성비와 화제성 모두 잡을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넷플릭스는 매일 오후 5시에 예능 회차를 공개하는 '전통 방송국'스러운 편성 전략을 펼칩니다. 사실 이 전략은 그만큼 넷플릭스가 많은 구독자를 확보했기에 가능한 전략입니다. 그동안 OTT들이 오리지널 '드라마'에 집중한 이유는 드라마가 예능보다 충성 구독자를 확보하는 데에 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돈을 쏟아부은 때깔'을 무기로 새로운 사용자를 확보하고, 락인시키는 것이 OTT의 전략이었죠. 압도적인 블록버스터로 구독자를 확보했으니, 가성비 콘텐츠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방어합니다. 승리에 점을 찍고, 더 확실하게 하는 전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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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 동안 쓴 글을 보며, 참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논리는 맞지만 결과적으로 틀린 주장도 있었고, 예상 그대로 흘러간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끔씩은 남들과 같은 이야기를 하기 싫어서 새로운 근거를 가져오거나, 아예 역발상을 하곤 하죠. 지금 와서 보면, 예상을 하는 것보다 시간이 흘러서 그것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더 좋은 인사이트를 만들기 위한 노력보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더불어 환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걸 모두에게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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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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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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