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우리를 돕는 법
오리진 "⟨미션 임파서블⟩을 보고 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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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오리진입니다.
곤 사토시 감독의 영화 ⟨파프리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억압된 의식을 표출한다는 의미에서는 인터넷과 꿈이 비슷한 것 같지 않나요?" 주인공이 radioclub.jp라는 주소를 치고 들어간 가상의 술집. 전 그 장면 이후로 '나여도 괜찮은 공간'을 상상해오곤 했습니다. 누구에게 말 못 할 비밀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말이죠. 그건 한때 블로그였고, 트위터였으며, 요즘은 챗GPT이기도 합니다.
이 레터를 보시는 분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삶을 살고 계시겠죠. 여러 고민으로 마음이 복잡하거나 막연한 우울감을 느끼신 적도 있으실 거고요. 오늘은 그런 마음의 무게를 기술이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디지털 멘탈 케어 서비스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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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술집입니다. © 영화 ⟨파프리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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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챗GPT와 상담하시는 분 있나요 2. 게임, 전문가, AI...다양해지는 디지털 멘탈 케어 3. 생각해 볼 지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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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변을 보면 챗GPT로 고민 상담을 하는 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직장 문제, 연애 문제, 삶에 대한 막막함 같은 이야기들을 챗GPT에 털어놓고 위로나 조언을 구한다는 겁니다. 저도 써보면서 놀랐어요. '이렇게 다정하게 말을 들어주는 존재가 있었던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요.
처음엔 단지 '검색보다 똑똑한 도구'로 여겨졌던 AI가 이제는 사람의 감정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고 있습니다. Open AI의 CEO 샘 올트먼은 "고연령층은 챗GPT를 검색의 대용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2030은 인생의 조언자처럼 사용한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요. 실제로 젊은 사용자들은 AI를 통해 자신을 더 이해하고, 심지어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AI의 조언을 반영한다고 합니다. TikTok에는 챗GPT에게 상담받은 후기 영상이 수백만 건씩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굳이 AI에 고민을 털어놓고 있는 걸까요?
우선 AI가 실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975년 소개된 심리학 개념,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을 아시나요? 사람들은 평소 친밀하던 사람보다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과 같이 나와 아무 관계 없는 타인에게 오히려 비밀을 더 잘 털어놓는다는 이론인데요.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짐이 될까 봐, 혹은 관계가 변할까 봐서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아무 연결 없는 존재에게는 쉽게 나온다는 거죠.
챗GPT에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같은 이유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인 심리상담가는 나를 알고, 계속 볼 것이며, 사람인 만큼 판단하고 비밀이 새어 나갈 걱정도 있지만 AI는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이유로 2014년에 진행된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에게보다 가상 인간에게 더 비밀을 털어놓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낮고, 더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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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윌슨이 그 어떤 친구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겁니다 © 영화 ⟨캐스트 어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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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접근성이 좋다는 것입니다. 심리 상담은 돈이 들고 예약이 필요하고, 하물며 친구와의 대화도 시간과 에너지를 맞춰야 한다는 현실적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반면 AI는 내가 원할 때 언제나, 새벽이든 휴일이든 상관없이, 바로 응답해 줍니다. 무료이거나 저렴한 경우도 많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기술이 꽤 '괜찮아졌기' 때문입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이 아무리 윌슨에게 얘기해봤자 답을 얻지 못했던 것과 달리 AI는 놀라보게 발전했고, 사람과 유사한 답변을 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어요. PLOS Mental Health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진짜 심리 상담가와 챗GPT의 답변을 거의 구별하지 못했고(5%만 구별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일부 답변에 대해서는 챗GPT의 답변을 더 선호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실제 사용하는 맥락에서는 더 깊이 있는 답변을 줄 수 있다고도 생각했는데, 앞서 첫 번째로 말씀드렸던, '기차의 이방인 효과'로 인해 진짜 심리 상담가에게는 말하지 않았을 내밀한 비밀을 말하거나 더 자주 대화하기 때문이죠. 어떻게 생각해보면 참 모순적입니다. 사람이 아니라서 이야기하지만, 또 사람같은 답변을 주기 때문에 대화하는 것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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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전문가, AI...다양해지는 디지털 멘탈 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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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급된 앱은 광고가 아닙니다.
디지털 서비스를 통해 일상 속에서 마음을 돌보는 법은 다양합니다. KB 금융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서비스는 '웰니스' 서비스 (웰빙을 전반적으로 증진하고 건강한 삶을 장려하는 서비스)로 정의되며, 일상에서의 마음을 챙기거나, 실제 치료를 목표로 하는 앱들로 나뉜다고 해요. 그리고 이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접근성입니다. 심리적 장벽이 낮고, 누구나 쉽게,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죠. 그리고 기존 팬데믹 시기에 떠오르기 시작한 이러한 서비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더 나에게 맞는 맞춤형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진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2020년 팬데믹과 함께 정신 돌봄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치유보다는 예방에 대해 집중하게 되면서 '명상', '감정 기록'이 떠올랐습니다. '마보', '캄'와 같은 명상 앱이나 '하루콩'과 같은 감정 일기 앱이 인기를 얻었죠. 하루콩은 글로벌 1,00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기도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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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중에서도 '게임화'된 마음 돌봄 서비스에 주목하고 싶어요. 'Finch'라는 앱을 써봤는데요. 침대에서 일어나기, 물 마시기와 같은 소소한 목표를 실천하면 나만의 귀여운 가상 펫을 키울 수 있는 앱이에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난 후 체크 하나 하나 하고 나면 귀여운 펫을 꾸미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게 꽤 위로가 되더라고요.
이러한 게임 요소와의 결합은 기존 정신 건강 관련 서비스 사용의 '지속성'과 '적극적 참여'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접근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한 논문에서는 게이미피케이션이 정신 건강을 증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밝히기도 했죠. 반면, 게임 요소가 '보상'에만 지나치게 기댈 경우, 중독과 같은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경고도 있어 균형 잡힌 사용이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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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하면 격려도 받을 수 있어요 © Finch 앱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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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정부 기관이나 전문가도 디지털 멘탈 케어에 참여하고 있어요. 보건복지부·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만든 '블루터치'(서울시), '정신건강 정보 포털'과 같은 서비스는 자가 테스트, 병원 정보, 위기 상담 연결 등을 제공합니다. 정신 건강 보조금을 두고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비용을 지원해 주기도 하고요. 다만, 접근성이 아직 아쉽습니다. 웹 기반이기 때문에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마인드 카페', '트로스트'와 같은 민간 서비스는 실제 상담사와의 연결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앞서 말씀드린 앱들이 일상에서의 마음 챙김, 관리의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실제 전문가의 진입은 실제 중증 우울 질환, 혹은 위기 상황에 대해서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반가운 흐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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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주고 있기도 해요 © 트로스트 유튜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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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활용하는 서비스가 많아지고 있기도 합니다. 챗GPT와 같은 대화형 서비스를 넘어, 대화를 통해 우울증/자살의 위험도를 예측하여 도움을 주거나, 음성과 행동 패턴을 분석하여 정신 건강 관리법을 제안하는 기술도 연구되고, 일부는 상용화되고 있죠. 영국의 림빅 액세스처럼 정부로부터 의료 기기 인증을 받은 AI 서비스, FDA가 처음으로 승인한 우울증 감지 AI도 등장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기존의 멘탈 케어 앱에서도 감정 기록을 남기면 AI가 짧은 피드백을 주거나, 기존의 기록에 대해 분석하여 감정의 흐름이나 스트레스 보고서를 주는 등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어요. 검증된 방식으로 AI가 '보조 도구'로 활용된다면, 멘탈 케어의 접근성을 높이는 좋은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AI를 정신 상담, 정신 치료의 완전한 대안으로 여길 때의 위험도 분명합니다. AI가 무조건적인 긍정으로 사용자의 그릇된 생각을 강화하거나, 잘못된 조언을 할 위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미국에서는 14살 아이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설정된 챗봇과 이야기하다가 자살하게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이러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AI 프롬프트에 "객관적으로 조언해 줘"라거나, "지나치게 위로하지 말아줘"를 붙이는 방식이 공유되기도 합니다. 또한 위기 상황에서는 AI가 전문가나 기관에 연결하는 시스템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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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 보면 디지털 세상에는 우리가 마음을 돌볼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서비스들이 있고, AI 기술의 발전에 따라 나에게 똑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욱 더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를 우리의 정신 건강에 관한 관심이 코로나 시기 반짝, 하고 끝나는 트렌드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심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고 해석해 보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의 발전과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활용해나갈 것인가, 가 아닌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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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명이 우울한 시대라고도 합니다. 한국인 10명 중 4명은 우울한 상태라는 OECD 통계가 나오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항우울제 처방률은 낮고, 실제 치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해요. 정신 건강 실태 조사에 따르면 '누구나 정신 질환을 겪을 수 있다'라는 인식은 늘었지만, '정신 질환을 받아들일 수 있다'라는 태도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하죠.
이러한 현실에서 디지털 멘탈 케어가 보조 장치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 없이 혼자 감정을 들여다보고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는 디지털 친구, 심리 상담 비용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첫 발자국,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전문가로의 연결 창구가 되어줄 수 있죠.
다만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몇 가지 필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런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실질적 치료,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기관이나 전문가에게 연결해 줄 수 있도록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부분을 위해서는 적절한 제도 혹은 정부 주도적인 가이드라인 등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디지털 멘탈 케어 서비스는 주로 민간의 영역이었는데요. 더 이상 정신 건강이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공공의 문제가 되어감에 따라, 정부의 예산 증액이나 디지털 정신 건강 서비스에 대한 육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례로 호주의 경우, 디지털 멘탈 케어를 공공 의제로 삼아 예산을 증액하고, 민간, 공공 서비스를 통합한 디지털 허브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멘탈 케어 서비스가 대면, 비대면 치료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본 것이죠. 한국도 단발적인 프로그램을 넘어 장기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해 보입니다.
기술은 발전하여 우리에게 어느덧 ⟨파프리카⟩에서와 같은 '나만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나만의 공간을 오프라인, 즉 현실로, 실제 치료로 이어주는 것은 우리가 고민해 봐야 하는 지점이 아닌가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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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기 전에, 일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곁에 있어 드립니다'라는 개념이죠. 처음에는 특이하게 보였지만, 그가 쓴 책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회사에서 '당신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야.' 라는 말을 들은 뒤, '사람은 상품 가치가 없어도 한 명분의 가치가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해요.
혼자 카페에 가기 싫어서 같이 있어 달라는 사람, 공항에 마중을 나와달라는 사람, 그냥 하루에 한 번 자신에 대해 생각만 해달라는 사람 등, 여러 의뢰 사례를 보면서 분명하게 느낀 것은 하나였습니다.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의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공간은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네가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존재 말이죠. 한낱 알고리즘일 뿐이지만요.
다만 언젠가는 현실에서도, 우리 사람들끼리도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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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오리진>의 코멘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를 위해 바칩니다.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 한 번 작은 날갯짓에 꿈을 담아 날아올라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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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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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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