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의 시대, 로컬 브랜딩의 필요성
나나 "목련, 개나리, 벚꽃이 한꺼번에 핀 모습이 묘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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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어서야 따뜻해진 날씨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요즘입니다. 여러분은 국내 여행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간이 생기면 어떻게든 해외로 떠나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요. 최근 들어서는 왠지 국내 여행지에 관심이 조금씩 들더라고요. 곧 있을 전주국제영화제를 맞아 전주에 식도락 여행을 떠날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이런 생각이 저만의 것은 아니었던지, 최근 몇 년 사이 여행 트렌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국내 소도시로의 여행과 로컬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어요.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지방 소멸은 하루가 다르게 앞당겨지고 있다고 하는데, 오히려 로컬 브랜드에 대한 수요는 늘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과연 로컬 콘텐츠는 지방 소멸의 위기를 해소할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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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컬’은 돈이 된다 2. 중요한 것은 서사 3. 지속성을 고민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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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방식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국내 여행이 주로 맛집 투어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그 폭이 훨씬 넓어졌어요. 한국관광공사는 2023년과 2024년, 주요 여행 키워드로 ‘로컬 관광’과 ‘원포인트 여행’을 제시했는데요. 요즘의 국내 여행객들은 누구나 아는 유명한 관광 명소를 가기보다, 본인의 관심사나 취향 기반의 장소를 선택하고 해당 지역의 특색 있는 공간들을 탐색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분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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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기반의 로컬 여행은 2023년 이후로 여행 트렌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 한국관광데이터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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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중심에는 콘텐츠가 있습니다. 그 콘텐츠는 로컬 브랜드일 수도 있고, 각 지역의 특색 있는 축제나 이벤트, 혹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공간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특정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한정성’이 최근 들어 눈에 띕니다. 지역별 한정 굿즈나 브랜드 팝업 스토어가 각 지역에 사람을 끌어모으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소셜 미디어상에서 알고리즘 기반의 확산이 늘면서, 지역 한정성과 연관된 여러 사례들이 성과를 보여 왔습니다.
지난 겨울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대전으로 이끌었던 ‘딸기시루’를 기억하시나요? 대전의 향토 베이커리인 성심당은 1956년 개점점 이후로 대전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아 왔는데요. 2023년 2월 출시된 성심당의 ‘과일시루’ 시리즈의 인기와 함께 성심당의 매출은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심지어 지난 2년간 연속으로 영업이익이 50% 이상 증가하며, 지난 2024년 성심당 매출은 1천937억 원을 달성했다고 해요. 이는 비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브랜드 중에서 유일하게 1천억원을 넘었을뿐만 아니라,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를 넘은 성적이라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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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성장은 단순히 성심당의 매출로만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가성비 좋은 딸기 케이크를 사러 대전에 가는 것이 아니라, 성심당이 위치한 대전 중앙로 주변의 관광지나 소품샵을 둘러보는 ‘대전 여행 코스’가 함께 주목받기 시작했거든요. 딸기시루 웨이팅 후에 주변 빈티지샵이나 소품샵에서 대전의 마스코트 ‘꿈돌이’ 굿즈를 쇼핑하고 근처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정으로요.
여기에 대전시의 노력이 더해져 지난해부터는 꿈돌이를 활용한 ‘꿈돌이 택시’ 등 도시 브랜드 강화 사업이 이목을 끌었습니다. 전방위적인 노력 덕분인지, 컨슈머인사이트가 매년 진행하는 여름휴가 만족도 조사에서 매년 최하위권을 차지했던 대전의 순위는 2024년에 최초로 10위권 이내로 진입하며 달라진 인식을 보여줬습니다. 지역의 로컬 브랜드가 지역 경제의 순환에까지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 사례라고 볼 수 있겠어요.
또 다른 케이스를 살펴볼까요. 여러분은 거제, 경주, 부산, 제주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네덜란드 캐릭터 미피(miffy)입니다. 2023년 8월 거제도 미피 카페를 시작으로, 부산, 경주에 미피 스토어를 연이어 오픈하며 캐릭터 라이선스를 활용한 굿즈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거제 몽돌, 부산 자갈치 시장, 경주 석굴암, 제주 해녀 등 지역별 컨셉을 활용한 미피 인형들은 오픈 초반 품절, 매장 오픈런을 불러오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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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만의 특색을 담은 콘텐츠는 확실히 수요가 있습니다. 특히 지금 시대의 소비자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서울 중심으로 운영되던 팝업 스토어와 콜라보레이션이 최근 들어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시도되는 케이스가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전통적인 지역 축제와 맛집 소비에서 벗어나, 로컬 컨셉 기반의 브랜딩이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이제 로컬 콘텐츠와 브랜드는 ‘간 김에 소비하는 것’이 아닌, ‘여행 자체를 선택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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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트렌드의 배경에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오랜 기간 쌓아온 빌드업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로컬 콘텐츠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고,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성심당의 성장에는 ‘빵의 도시’로 브랜딩을 시도한 대전시와의 시너지가 있었습니다. 지역별 미피의 인기에는 각 도시가 보존해온 고유한 특색이 셀링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각 지역에는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자생적으로 성장해 온 로컬 브랜드들이 존재합니다. 대중적으로는 주로 F&B와 캐릭터 IP가 많은 관심을 받는 편이긴 하지만 지역별로 문화 예술, 공예, 서비스 분야 등을 기반으로 폭넓은 시도가 있었어요. 제주 기반의 콘텐츠 기업 ‘재주상회’나 편집샵 ‘디앤디파트먼트’와 같이 로컬 푸드와 공예품 등을 큐레이션 하는 공간이나 로컬 매거진도 많이 늘어났고요.
최근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기획은 ‘군산북페어’인데요. 2024년에 처음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군산의 첫 북페어이기도 하지만, 군산 지역의 동네책방들이 연합한 ‘군산책문화발전소’에 의해 기획되었다고 합니다. 봄이 되면 벚꽃 축제를 하고, 가을이 되면 단풍 축제를 하는 지자체 주도의 정형화된 컨셉이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에서 자생적으로 기획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매력적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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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열린 군산북페어는 100개 부스 규모로, 지금 시대의 문학과 동네 서점에 대한 주제별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기획이 함께했는데요. 예상보다 많은 참관객을 끌어모으며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고 해요. 가볍게 말하면 ‘텍스트힙’ 트렌드가 군산이라는 지역의 참신함과 맞물렸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동네 서점을 중심으로 한 로컬 커뮤니티의 진지한 고민이 있었기에 나온 성과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동안 지역 활성화라는 의제는 주로 지자체 차원의 단기적인 프로모션 형태로 대응해 왔습니다. 지역 마스코트 개발, 계절별 축제 기획, 기념품 판매는 사실상 판촉 이벤트에 가까운 형태였죠. 하지만 이는 단기적인 관심을 끄는 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유사한 마스코트가 난립하면서 지역의 고유성의 희석되고 퀄리티에 비해 비싼 축제 음식과 관광지에 무의미하게 있는 포토존들은 오히려 국내 관광에 대한 매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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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얼마나 많은 캐릭터를 알고 계신가요? © 더피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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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한 수요에는 그에 걸맞은 공급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마스코트를 개발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대전의 꿈돌이가 호응을 받은 이유는 대전이라는 도시와 30년간 쌓아온 관계성에 있습니다. 어느 날 지자체 차원에서 갑자기 만들어 제시된 것이 아니고요. 답은 결국 각 지역만이 가진 고유의 개성에 있습니다. 초개인화된 알고리즘의 시대에, 성공한 누군가와 똑같은 방식을 취하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각 지역에도 똑같이 주어진 미션일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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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불황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결국 콘텐츠에 이끌립니다. 그리고 콘텐츠에 이끌린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인프라가 필수적입니다. 지난 3월에 발생한 경남 지역의 대형 산불은 비수도권 인프라의 취약함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안전과 편의시설은 여전히 부족한 현실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 분석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전체 228개 시군구 중 소멸위험지역은 130곳(57%)에 달합니다. 지역 내에서 소비할 여력이 되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에요. 어쩌면 지금까지 겨우 생존해 온 로컬 브랜드들조차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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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기후변화로 인해 전통적인 방식의 지역 활성화 전략에도 어려움이 생기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각 지역의 특산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70년대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가 재배될 것으로 예측될 정도인데요. 이는 단순히 농작물 생산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특산물 기반으로 꾸려온 지역의 정체성과 관광 산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어요.
이어지는 기상 이변으로 지역 축제조차 타격이 큽니다. 올해 전남 광양시의 ‘광양 매화축제’는 3월 폭설의 여파로 축제 초기 개화율이 10% 수준에 그치며 방문객 수가 지난해 대비 11만 명 가량 줄어들었다고 해요. 팬데믹 이후로 어렵게 회복해오던 지역 축제는 그 경제적 파급효과로 인해 지자체의 주요 수입원이었지만 이제 그 지속성조차 담보하기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여러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콘텐츠는 지역의 새로운 생존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 자체에 생기는 내러티브가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의 감성과 이야기가 담긴 콘텐츠는 단발성 방문이 아닌 반복적인 방문과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또한 기후 변화에 취약한 지금까지의 지역 활성화 전략 대신 안정적인 지역 브랜드 구축을 추구해볼 수 있고요.
더불어, 콘텐츠를 통한 꾸준한 관광 수입은 인프라 투자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2022년 ‘인구 감소 지역 지원 특별법’ 및 시행령이 제정되며 정부 차원에서 소멸 위험이 높은 지역에 재정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 규모와 효과는 아직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관광객 유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지역에는 민간 투자와 공공 인프라가 함께 확대되는 선순환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확산된 워케이션과 디지털 노마드 트렌드를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로컬 브랜딩입니다. 모든 도시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로컬 콘텐츠만으로 지방 소멸의 위기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지자체의 행정적 지원과 인프라 구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자체, 주민, 민간 기업이 함께 만드는 지속가능성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로컬 콘텐츠의 가치는 외부의 시선이 아닌,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에서부터 나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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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나나>의 코멘트
‘미디어 사투리’로 유명세를 타며 68만이 넘는 구독자를 모은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의 지역 협업 콘텐츠를 소개해요. 경상도 사투리로 유명해진 채널이라, 전라도 지역과의 협업이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해당 지역 출신인 제가 다 뿌듯합니다). 최근 정읍 여행을 다녀온 지인들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요즘 소도시 여행에는 크리에이터의 파급력이 크다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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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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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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