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하루에 8시간씩 일해야 할까요?
찬비 "뉴스만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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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찬비입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잠시 짬을 내어 여의도 집회에 들렀습니다. 다들 한 마음으로 탄핵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찡하면서도 이렇게 추운 날 모두를 밖으로 나오게 한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는 유튜브를 통해서 국회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는데요, 새삼 이렇게 의원들이 표결하는 장면을 보는 게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어 좀 부끄러웠습니다. 선거만 했지 사실 국회의원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는 기사 정도로만 봐왔던 것 같아서요.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인 우리는 우리를 대표해 정치활동을 하라고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과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대표를 뽑은 후에도 정치에 계속 관심을 가지는 게 맞지만, 그게 참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으니까요. 매일 8시간 일하고 퇴근해서 저녁만 먹어도 평일이 훌쩍 흐르는걸요. 주말은 또 아주 빠르게 지나간단 말이죠.
‘시간이 없다’는 말. 우리가 입에 달고 살고 자주 생각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왜 시간이 없을까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시간 문화에 대해 책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애프터 워크⟫를 기반으로 이야기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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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와 보낸 2024년은 어떠셨나요? 어떤 이야기든 어거스트에게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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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꼭 하루에 8시간씩 일해야 할까?
2. 노동-돌봄-여가-정치
3. 집안일을 덜 할 수 있는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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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보통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하루 또는 일주일을 어떤 범주로 나누어 인식하고 있으신가요? 독일 저널리스트 테레사 뷔커의 책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 북클럽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이 질문을 받고 저는 좀 멍해지더라고요. 1인 가구이고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인 제 답변을 기억해 본다면 이렇습니다.
“하루를 단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일주일 단위로 시간을 보내요. 평일에는 회사에 출근해 일해요. 때때로 야근을 하기도 하는데, 야근하지 않는 날에는 퇴근해 요가원에 갔다가 귀가합니다. 그래서 평일과 주말, 이렇게 시간을 나누어 인식하는 것 같아요. 평일에 다른 걸 해보려는 노력을 부단히 했었는데,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여러분의 답은 저와 다르겠지만, 대체로 소득 활동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거예요. 그다음은 수면 시간일 것이고, 집과 주변 가족을 돌보고 나서야 남은 시간을 쪼개 취미생활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시겠죠. 우리는 버릇처럼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반복합니다. 무엇을 할 시간이 부족한 걸까요? 시간이 더 있다면 무얼 더 하고 싶으신가요? 시간은 왜 없는 걸까요?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소득 활동이 인생의 중심에 있는 현재의 시간 문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요. 은퇴하기 전까지 소득을 벌기 위한 활동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사는 게 최선인가에 관해서요. 더 나아가 꼭 우리는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소득 활동으로 보내야 하는 것인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더 하면서 살 순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요. 처음 이 질문을 마주했을 땐 멍해졌던 것 같아요.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니까요. 작가는 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하나씩 쌓아갑니다.
일단, 하루에 8시간 일한다는 것이 정착한 것이 아직 10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기업가이자 사회 개혁가인 에른스트 아베가 ‘8시간의 업무, 8시간의 수면, 8시간의 인간다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고,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이를 정한 것이 1919년이니까요. 국내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주5일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 당연하다’고 하기엔 역사가 좀 짧고, 100년 전의 세상과 지금은 너무도 다릅니다. 그렇다면 지금에 맞는 노동 형태를 논의해 봐야 할 것입니다.
8시간의 인간다움이 현재의 모두에게 충분한가요? 만약 집에 가자마자 따뜻하게 차려진 식사를 하고 바로 쉴 수 있다면 충분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가사 노동을 하고, 돌봐야 할 가족이 있다면 돌봄 시간도 필요합니다. 이런 시간을 작가는 의무 시간이라 이야기하는데요, 8시간 안에서 의무 시간을 제외했을 때 충분한 자유 시간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일 것입니다. 애초에 통근 시간과 초과 근무 시간을 제외하면 8시간이 남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요. 8시간보다 의무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들은 결국 수면시간도 줄이게 됩니다. 수면 시간을 더 줄일 수 없게 되면 8시간의 노동이 어려워져 시간제 일자리를 찾게 되고요. 소수에게만 8시간이 충분하다면 현재의 제도는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직업 이외에 다른 시간을 유의미하게 쓸 수 없다는 점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소득 활동에 쓰는 시간이 가장 많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도 하는 일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빠르게 파악하는 방법도 직업을 물어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기치 못한 일로 경력이 중단될 수도 있고, 만성 질환이 있거나, 돌봐야 할 사람이 있다면 주 40시간의 노동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작가는 잠시 일을 쉬는 동안 자신을 설명할 말이 없어 두려웠던 경험을 공유합니다. 딸의 어린이집에서 다른 학부모를 만났을 때, 자신을 소개할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만약 자신을 딸아이의 엄마로만 소개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고요. 직업이 없는 사람을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유해하지만, 자신을 직업으로만 설명하는 것 역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갑작스럽게 직업을 잃거나 은퇴하게 되면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게 되니까요. 이는 분명 “직업 이외의 활동에서는 시간을 유의미하게 구성하고 다른 사람의 존중을 경험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물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조차 부족”*한 탓이 클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작가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해도 당장 노동시간을 몇 시간씩 줄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만 여겨왔던 것을 생각해보는 지점이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과로와 번아웃이 디폴트가 된 사회에서 장기적으로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하려면 몇 시간 일하는 게 적당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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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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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에서 소개한 사회학자 프리가 하우크의 ‘4-in-1 모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우크는 수면 시간을 제외한 하루 16시간을 4시간씩 유급 노동 시간, 돌봄 시간, 문화 활동 시간, 정치 활동으로 나누자고 제안해요. 돌봄이나 정치 참여 활동이 그만큼 중요한가? 싶을 수도 있는데, 하우크는 중요할 뿐 아니라 유급 노동과 동일 선상에 올라와야 한다고 본 거예요.
돌봄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다들 어느 정도의 돌봄은 아마 하고 계실 거예요. 집안을 돌보는 것과 나를 돌보는 것도 모두 여기에 포함되니까요. 그 외에 아이가 있거나 보살핌이 필요한 가족과 함께 사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현재의 주 40시간 근무 체계 아래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꽤 큰 결심입니다. 소득 활동 시간은 유지하면서도 아이를 돌봐야 할 시간을 내야 하기 때문에 내 자유 시간을 상당 부분 포기하게 됩니다. 부모님과 같이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면 꼼짝 없이 육아휴직을 쓴 한쪽 부모(대체로 여성)가 아이를 혼자 봐야 합니다. 만약 육아휴직이 끝난 후에도 아이를 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면 주 양육자는 시간제로 일하면서 일을 줄이거나 그만둬야만 하고요.
양쪽 부모가 모두 일하는 시간이 이전보다 줄어들어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더 보낼 수 있고, 각자 자유시간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모는 경제적인 부담이 없다면 최대한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더 확보하려 할 거예요. 하지만 현재는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개인이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우크의 모델은 돌봄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충실하게 고려한 모델입니다.
작가는 또한 가사 노동은 모두가 직접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돌봄을 외주화하는 것은 계급적이라고요. 만약 제가 청소 서비스를 통해 가사 노동을 대신할 인력을 고용한다면 저는 제가 버는 돈보다 더 낮은 비용을 지불할 거예요. 그렇게 해야 ‘수지가 맞으니까’요. 그 이야기는 돈을 많이 벌어야만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작가는 이렇게까지 이야기해요. “중산층의 안락한 삶은 하인 계급의 존재를 기반으로 한다”고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집안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없다면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맞는 것이라고 작가는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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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일상을 구성하기 위해 제3자의 시간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가? 제3자의 시간으로부터 누가 혜택을 받고 누가 혜택을 받지 못하는가? 제3자의 시간을 요구할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제3자의 시간은 직업 경력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직업적 성공을 위해 제3자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많은 직장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자신의 집안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직장 생활에 요구되는 과도한 시간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의문을 거의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러한 계급적 사고에 따르면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자유 시간에 대해 더 많은 권리를 가진다.
(같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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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돌봄 시간은 사회적인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작가는 이야기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집안일을 직접 해야 하고, 아이 양육 역시 단순히 생물학적인 부모와 가족에만 국한하지 않고 자녀가 없는 성인이나 이웃도 함께 맡아야 한다고요. 가족이 없더라도 친구들과 돌봄 네트워크를 구성해 서로를 돌볼 수도 있고요. 우리는 모두 사람의 돌봄이 필요하고, 이러한 돌봄은 돈으로 살 수 없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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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실 돌봄보다는 정치 활동이 여기에 들어가 있는 게 놀라웠어요. 많은 사람들이 대화할 때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꺼리잖아요. 정치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정치'를 위해서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며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사람들이 고립되지 않고 서로 대화를 나누어야 서로의 관심사나 필요, 이해관계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잠시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공고한 관계 속에서 지속될 때 효과적인 정치 행동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입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정치는 거창하지 않아요. 자신을 돌아보면서 어떤 것이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주변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뜻을 함께 하는 사람과 힘을 합쳐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고, 다른 사람들의 의지와 만나 커질 때 정치가 일어난다고 이야기해요. 이를 위해서는 유급 노동 시간을 줄이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의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뷔커가 이야기하고 있는 방식이 뉴웨이즈의 역공약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상에는 딸과 함께 외출했는데 남자화장실에 기저귀 갈이대가 없어서 곤란했던 한 아버지의 인터뷰를 볼 수 있어요. 우연히 알게 된 서대문구 구의원에게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내 실제로 내년에 설치된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니 효능감이 느껴졌다고 해요. 공동체가 이뤄낼 수 있는 정치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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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영상을 통해서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치가 소수만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모두가 ‘내가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것. 그래서 뷔커의 이야기에 설득되었어요. 우리 동네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일, 매일의 삶을 나아지게 할 일을 고민하고 추진할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세상이 되었겠다고 상상하게 되었고요.
물론, 아주 이상적인 이야기입니다. 당장 유급 노동 시간을 4시간으로 줄일 수 있을 리 없지요. 하지만 저는 하루 1시간씩이라도 노동 시간을 줄인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로와 번아웃이 적어지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충분히 자고 더 건강하게 식사할 것입니다.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세상에서는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지 않을 것이고요. 동네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다양한 의제로 토론하는 세상에서는 기후 위기를 포함한 문제들이 더 빠르게 해결을 향해 진척될 것이고요. 성장을 위해 달리는 사회가 아니라 번성(thrive)하기 위해 달리는 사회가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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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유급 노동 시간을 줄이는 등의 새로운 시간 문화를 제시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면 ⟪애프터 워크⟫는 돌봄 노동을 줄이고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테레사 뷔커는 ‘모두가 자기 몫의 돌봄 노동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면 ⟪애프터 워크⟫의 작가 헬렌 헤스터와 닉 스르니첵은 ‘돌봄 노동을 줄여 자유를 확장하자’고 이야기합니다. (⟪애프터 워크⟫에서는 재생산 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위에서 사용하던 돌봄 노동이라는 용어와 같은 의미이기에 돌봄 노동으로 통일하여 사용합니다.)
이 책에서 돌봄 노동에 집중하는 이유는 우리가 일하는 시간을 줄이자고 이야기할 때, 돌봄 노동을 줄이는 것은 이야기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의 책에서도 돌봄 노동이 우리에게 중요하다고는 이야기하지만, 돌봄 노동 자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보다는 돌봄 노동을 모두와 공유하여 인당 시간을 줄이자고 이야기했던 것처럼요. 돌봄 노동은 대체로 무보수이고, 난이도가 낮아 지루하고 단조로우며 '끝'이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OECD 통계에 따르면 가사 노동에 여성이 남성보다 하루 세 시간까지도 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모두의 자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사 노동을 포함한 돌봄 노동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시간을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작가들은 주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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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기술, 기준, 가족, 건축 등 네 가지 관점에서 과거에는 어땠는지 역사를 살펴보고, 돌봄 노동을 줄이려는 시도가 있었다면 결과는 어땠고 어떤 한계점이 있었는지를 살펴봐요. 저는 이 중에서도 기술과 건축을 다룬 챕터가 흥미로웠는데, 이런 측면에서 집안일을 포함한 돌봄 노동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해본 적이 없어서였던 것 같아요.
기술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사 노동이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청소·빨래·설거지 등등을 하기 위해 시간을 꽤나 많이 쓰지 않나요? 이는 우리가 주방에서 쓰는 가전들이 가사노동 자체를 줄이는 것보다는 가사 노동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데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세탁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세탁기는 빨래를 해주는 가전이지만, 세탁기가 돌아가기 전 빨래를 선별해 넣어야 하고, 세탁기가 다 돌아간 후에는 빨래를 건조기에 옮기거나 건조대에 너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빨래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기기이지 빨래를 알아서 해주는 기기는 아니라는 것이죠.
사실 세탁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미국에서는 공동으로 세탁하는 모델이 논의되기도 했다고 해요. 여러 집이 세탁기를 한 대 공유하면서 집단으로 세탁을 하는 거죠. 하지만 인종차별 등의 이유로 다른 집과 세탁물을 모으고 싶지 않아했던 사람들과 각 개인이 세탁기를 소유하면 이득이었던 기업의 니즈가 만나 결국 무산되었다고 해요. (이게 실현되었다면 빨래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까요…!)
결론적으로, 현재는 기술의 발달이 곧 가사 노동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기술을 적용한 상품을 출시하는 것은 가사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업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 노동을 하는 주체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가사 노동을 더 줄일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요구해야 한다고 작가들은 이야기해요.
건축 파트에서는 20세기 동안 있었던 공동 거주를 통해서 가사 노동과 육아를 공동으로 하고자 했던 시도를 주목해서 살펴봅니다. "'모든 구석이 둥글게 처리되고, 모든 욕조가 빌트인으로 들어가고, 모든 창문이 회전형으로 만들어지고, 모든 침대가 접어서 벽에 붙이는 형태로 만들어지고, 모든 자재는 무광으로 마감되어서' 먼지를 털고 걸레질을 하고 광을 내는 노동을 줄여"*준 페미니스트 아파트먼트 하우스라든지, 가정 주거지와 각종 편의 시설 및 지원 서비스를 가까이 위치시키고 거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서비스로 이동을 계획하는 수고와 이동 시간을 줄이는 건축 및 도시학자 돌로리스 헤이든의 대도시형 협동조합 같은 예시를 통해서 현재의 돌봄 노동을 줄일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술과 건축을 접목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사례는 프랜시스 게이브의 자가 청소 기능이 있는 주택인데요, 집 전체를 방수가 되는 재질로 만들고 천장의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켜 모든 청소, 빨래, 세탁을 1시간 이내에 자동으로 해낼 수 있는 어마어마한 발명품입니다. 작가들은 이 사례를 개선의 여지는 많지만 가사 노동을 줄이겠다는 목적 하에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성공적인 사례로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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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워크⟫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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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청소 기능이 있는 주택 © Daily 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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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바라보는 지향점 역시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유사하게 공동으로 하는 돌봄 노동입니다. 가사 노동을 집단화하고 공공 기반 시설을 확대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양을 줄이고,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을 넘어서 공동으로 돌볼 수 있는 대안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요. 어쩌면 ⟪애프터 워크⟫에서 제시하는 세상이 더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도했던 수많은 사례를 접하면서 '진짜 할만 한가?'하고 솔깃해지기도 했어요.
오늘의 레터는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있던 프리가 하우크의 문장을 재인용하며 끝내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모두가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요? 공정한 시간 정의를 만들어 내려면 어떤 곳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수많은 질문을 던졌는데요, 두 책의 내용을 너무 이상적이고 이뤄질 수 없다며 밀쳐내기보다 생각의 씨앗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지친 자신을 나태하다며 채찍질하기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상상하는 씨앗이요.
풀타임 근무. 누가 정말 이를 원할까?
이 단어는 이미 그 자체로 매우 비인간적이다. 풀타임이란 내가 가진 모든 시간을 말하니까.
내 모든 시간을 임금 노동에 쏟아야 할까?
- 프리가 하우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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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찬비>의 코멘트
세상은 어떻게 이렇게 절묘할까요. 한강 작가는 스웨덴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을 하였다고 합니다. 연설문은 링크로 달아두어요. 처음엔 연설문을 읽고 영상으로 작가님의 나직한 목소리로 연설문을 들으면서 레터를 썼습니다. 작가님의 기자회견 질의응답 역시도 좋았습니다(영상, 기사). 긴 싸움이 될 이 기간 동안 여러분도 부디 건강과 마음을 잘 챙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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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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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하은 • 움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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