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밴드의 내한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나나 “햇볕은 여전히 뜨겁지만, 바람은 시원한 요즘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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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7일,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가 15년 만의 재결합을 하면서 전 세계 팬들이 흥분에 빠졌습니다. 연이어 함께 나온 월드 투어 소식으로 많은 팬들이 설레는 요즘일 텐데요. 이번 레터는 오아시스의 영국 투어 티켓팅 이후에 발송이 될 테니, 지금쯤은 각자의 해외 여행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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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런던에서 온 지인에게 8월 27일자 신문을 선물 받았습니다. 현지에서도 구하기 어려웠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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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내한 공연 소식이겠죠. 현재까지는 영국 내 투어 일정만 확정되었고, 2025년 하반기에 타 대륙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는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요. 오아시스의 리더인 노엘 갤러거의 솔로 활동 밴드인 ‘하이 플라잉 버즈’가 작년 11월과 올해 7월, 짧은 주기로 내한 공연을 하면서 오아시스의 한국 일정에 대한 기대감도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이들의 데뷔 30주년이기도 합니다. 저도 학창 시절부터 영국 밴드의 노래를 많이 들었기에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런데 최근 오아시스 재결합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팬덤을 넘어선 하나의 현상에 가깝게 느껴졌어요. 내 주변에 이렇게 오아시스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오늘 레터는 브릿팝 전성시대의 여러 면면에 대해 짚어보고, 젠지의 오아시스를 향한 관심에 대해서도 살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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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재 자체가 문화
2. 90년대 : 그땐 그랬지
3. Gen-Z의 사랑까지 흡수한 록 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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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팝(Britpop)은 브리티시 모던록에서 따온 표현으로 일반적으로 영국 밴드 음악을 주로 지칭하지만, 원래는 기존 영국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90년대 초반의 영국 록의 한 장르를 뜻합니다. 1960년대 전 세계 음악시장을 뒤흔든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대표격인 비틀즈의 영향 아래, 70년대의 글램 록과 펑크 록을 각 밴드만의 형태로 계승했어요.
특히 오아시스는 비틀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예스터데이》에서는 비틀즈의 존재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세계관을 다루며, 비틀즈가 사라졌기에 오아시스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깨알 유머를 선보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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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스터데이》의 공식 예고편 © Universal Pictur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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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석이 많지만, 브릿팝은 너바나의 그런지 팝으로 대표되는 미국 문화에 대한 대항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영국의 정치, 사회 현상과도 깊이 얽혀있고요. 보수의 수장 마거릿 대처가 이끌던 80년대에 대한 반발로 기세를 얻은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브릿팝과 더불어 새로운 영국다움(Cool Britannia)을 본인의 정치 전략으로 활용했습니다. (영국 록 음악의 흐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음악 평론가 권범준 님의 책 《브릿팝》을 살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브릿팝은 음악 장르를 넘어 하나의 문화 흐름이었기에 당시 영국 밴드들은 모두 이 단어의 지배력 아래 있었습니다. 같은 밴드의 여러 앨범 중에서도 어떤 것은 브릿팝에 해당하고, 어떤 것은 아니라고 보기도 하고요. 라디오헤드처럼 아예 브릿팝의 영역에서 벗어났다고 평가받는 밴드도 있습니다. 오아시스와 함께 ‘브릿팝 양대 산맥’으로 불리던 블러조차 브릿팝이라는 단어를 반기지 않았다고 해요.
당사자들이 어떻게 느끼던, 미디어에서 브릿팝은 항상 좋은 소재였습니다. 처음에는 미국과 영국의 대항 구도로 시작됐지만, 블러와 오아시스가 각자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면서 이들의 라이벌 구도가 이목을 끌게 되었습니다. 가장 재밌는 구경은 싸움 구경이라고 하던가요. 정작 ‘브릿팝 시대’는 90년대 중후반으로 그다지 길지 않지만, 두 밴드에 대한 끊임없는 비교와 서로 간의 디스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는 결국 브릿팝이라는 흐름을 전 세계 음악 시장에 각인시켰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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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최전성기를 달리던 90년대, 한국에서도 브릿팝을 사랑하는 리스너들은 계속 존재해 왔습니다. 하지만 한국 팬들의 열렬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내한 공연은 거의 15년~20년이 지난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쯤에야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는 사실상 ‘브릿팝’ 밴드들의 쇠퇴기나 다름없어요. 소위 4대 브릿팝 밴드로 불리던 펄프, 블러, 오아시스, 스웨이드는 이때 거의 해체 상태였죠.
굳이 ‘4대 브릿팝 밴드’에 한정 짓지 않더라도, 해외 밴드들이 최전성기에 한국을 찾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말마따나 ‘한창 잘 나갈 때’ 한국에 온 영국 밴드는 1997년 블러의 내한 공연(영상)이 거의 유일했습니다. 당시 한국-영국 만남 200주년 기념으로 에릭 클랩튼, 부쉬 등 영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아티스트들의 내한이 이루어졌는데요, 한국 팬들을 의식했다기보다는 외교적 이벤트로 방문한 감이 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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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에 한국에서 첫 단독 공연을 펼친 스웨이드 또한, 2010년의 재결합 이후 2016년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그들의 첫 내한 공연이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대체로 그들이 중년이 된 후에나 만나볼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팬들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해외 인기 밴드들의 내한 소식이 발표되면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석연치 않은 감정이 들 때도 있잖아요. 전성기에는 오지 않다가 왜 이제서야 왔느냐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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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을 위해 약간의 변명을 해보자면, 그동안 내한 공연이 쉽사리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이유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우선 지리적 위치가 그렇습니다.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2015년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굉장히 먼 곳’으로 표현합니다. 지구 반대편까지 오기 위해서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죠. 스텝들과 음향 장비의 이동 비용도 엄청날 거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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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주로 비교되는 것이 옆 나라인 일본입니다. 락 팬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멀다면서 일본은 가고 왜 한국은 오지 않느냐'는 아쉬움이 종종 보이는데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은 오래전부터 세계 음반 시장 2위의 규모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한국도 상위권에 있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미국과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과는 격차가 큽니다.
현재는 K-POP의 영향으로 한국 음반 시장이 많이 성장했고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한국의 입지가 많이 바뀌었죠. 하지만 30년 전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어려운 시장이었습니다. 시장 규모뿐만 아니라 전성기의 락스타를 부르기 위해서 드는 엄청난 로열티도 큰 장벽이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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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한국 음반 시장은 4,000억원대로
조 단위의 일본 시장에 비하면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 아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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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매출’ 문제 외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산재했습니다. ‘Step by Step’으로 잘 알려진 보이밴드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1992년 내한 당시 발생한 압사 사고의 여파로 한국에서의 대형 해외 아티스트 공연이 암묵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영향이 있었어요. 게다가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침체되면서 내한 공연의 인프라가 정비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2000년대 이후 국내 락 페스티벌이 활성화되기 전까지 해외 가수의 내한은 대부분 단독 공연의 형태였는데요. 락 페스티벌이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한국에 정착하게 되고, 이후 해외 아티스트들을 접할 기회 자체가 늘어났습니다. 아무래도 페스티벌은 단독 공연보다 비용 면에서 부담이 덜하니까요.
이렇게 90년대 중반에서 락 페스티벌의 성장까지 짚어보니 벌써 20년의 시간이 흘렀어요. ‘브릿팝’ 밴드들의 전성기와는 당연히 시차가 생기기 마련이고요. 이 외에도 많은 영국 밴드들이 대체로 2000년대 중후반 이후에야 한국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 중요한 것은 인프라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레터의 주인공인 오아시스 또한 2006년의 내한 공연이 데뷔 12년 만의 첫 내한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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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밴드라고 해도, 오아시스의 재결합은 꽤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 관심의 주체는 바로 Z세대인데요. 브릿팝의 전성기에 갓 태어났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그들은 기존 X세대, 밀레니얼 세대 팬들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오아시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심의 배경에는 먼저 최근의 ‘레트로’ 물결이 있습니다. 90년대 음악, 영화 등의 콘텐츠들에 대한 디깅이 유행하고 있죠. LP에 대한 인기도 그렇고요. (마침 에디터 제이가 LP와 아날로그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죠.) 90년대의 상징과도 같은 오아시스가 인기를 얻는 상황 또한 이런 트렌드의 일부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노엘 갤러거가 ‘하이 플라잉 버즈’로 왕성한 음악 활동을 하는 동안, 동생 리암 갤러거는 솔로 활동과 더불어 꾸준한 SNS 활동을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 노출되며 콘텐츠를 생성해 낸 것도 한몫 했습니다. 그는 X(구 Twitter)에서 팬들과 소통을 많이 하기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전쟁 같았던 형제간의 불화는 뒤로 한 채 리암 갤러거가 노엘 갤러거에 대한 일방적인 애정(과 서운함)을 표하고, 매년 데뷔일 무렵마다 재결합 ‘떡밥’을 던져오며 팬들에게 긴장감을 선사한 것도 지금의 폭풍적인 반응에 좋은 밑밥이 되었습니다. 지금 상황을 생각하니, 마치 서동요 기법과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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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암 갤러거의 ‘노엘 갤러거 언급’ 트윗이 하나하나 이슈가 될 정도였으니까요.
© 리암 갤러거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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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결합 발표 이후, 투어의 티켓팅이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열기가 강해지자, 온라인에서는 젊은 팬들에 대한 ‘게이트키핑’도 이슈가 되었습니다. 일부 영국 매체에 따르면 SNS상에서 X세대 팬들이 Z세대에게 콘서트 자리를 뺏길 거라며, 전성기 때 태어나지도 않은 젊은이들이 아닌 기존 팬들에게 우선권이 있어야 한다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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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노엘 갤러거의 딸 아나이스가 반대 의견을 표하기도 했어요. (관련 기사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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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음악이 유행하던 시절에 태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음악을 즐길 권리가 남보다 부족하지는 않죠. 더불어 Z세대가 오아시스의 노래를 ‘덜’ 들었다고 할 이유도 없어요. 디지털 스트리밍 시대에 90년대 음반을 듣는 것에 대한 장벽이 낮아지기도 했고, Z세대는 X세대 부모님이 집에서 듣던 밴드 뮤직을 들으며 자란 세대기도 하거든요. 이들에게 지금도 ‘먹히는’ 음악이기에 그 생명력이 유지되고, 재결합까지 가능했던 게 아닐까요.
브릿팝의 본진이 아닌 국내에서도 ‘록’은 그 자체로 트렌드입니다. 최근 트렌드에 대해 이리저리 알아보신 분들이라면, 요즘 Z세대의 추구미는 ‘락스타’라는 것쯤은 많이들 알고 계실 것 같아요. 힙합이 주류이던 분위기도 요즘은 밴드 뮤직이 뒤집은 기세고요. 한 락페스티벌에서의 깃발 문구는 ‘OOO도 락이다’라는 밈을 끊임없이 재생산해 내고 있을 정도입니다. 한동안 ‘락은 죽었다’고 자조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 그런 시기는 확실히 지나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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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왜 굳이 브릿팝이고, 그중에서도 오아시스냐고 묻는다면 역시 오아시스라는 밴드 자체의 매력이 그 이유일 거예요. 공감할 수 있는 가사와 따라 부르기 좋은 멜로디, 거기에 독특한 감성을 얹으니 거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찌 보면 요즘의 90년대 레트로 트렌드에 오아시스가 흐름을 제대로 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락스타들의 행보가 어떻게 되건 내한 공연이 성사된다면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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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나나>의 코멘트
오아시스의 수많은 명곡 중 딱 하나를 골라서 들을 수 있다면 저는 이 노래를 고르고 싶어요. (달리 이유가 필요할까요) 마침 내년의 런던 공연도 영상 속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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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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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하은 • 움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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