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조작 당했습니다 (범인:AI)
Zoe "그래서 우리 앞으로 뭐해먹고 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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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Zoe입니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AI로 만들어진 수많은 영상들 보신 적 있죠? 제 취향인지 모르겠지만, 요새 제 알고리즘에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영상들이 뜨더라고요. 1980년대 어느 여름날 미국 교외, 학교가 끝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 오래된 캠코더로 찍은 것처럼 화면은 조금 뿌옇고, 길게 늘어진 저녁 햇빛은 이상할 정도로 따뜻하게 묘사되는 영상들이요. 릴스를 몇번 더 넘기다 보면 AI로 만들어진 좀비물이 뜨기도 하고요.
처음 보는 건데, 어딘가 익숙한 영상들. 꼭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영상들.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존재했던 적이 없는 영화같은 영상들이요. 요즘 알고리즘은 이런 영화같은 클립들이 점령 중입니다.
오늘은 생성형 AI가 우리의 콘텐츠 알고리즘을 어떻게 바꿔가고 있는지, 어떤 콘텐츠들이 떠오르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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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쇼츠에선 80~90년대 영화가 뜬다
2. 어쩌면 AI는 항상 무서웠을지도
3. 왜 어떤 AI는 힙하고, 어떤 AI는 '밤티'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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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인스타그램 넘기다 이 영상 보신 적 있나요? 눈 내리는 뉴욕 거리, 한 여자가 길에 책을 떨어트립니다. 지나가던 남자가 함께 책을 줍다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죠. 마치 오래된 90년대 로맨스 영화에서 잘라낸 한 장면처럼 보이는 이 영상. 딱 27초짜리 영상인데 이상하게 다음 장면이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영화 제목을 찾아보려 했는데, 그런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너무 억울하게도) AI가 만든 영상이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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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건, 이건 한 편으로 끝나는 영상은 아니에요. Part 1이 있고, 그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은지, 인스타그램에서 엄청나게 바이럴이 되고 있더라고요. 조회수가 무려 5,400만을 넘긴 영상도 있고, 일반 영상들도 600만 대를 기록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좋아요와 댓글 수도 엄청나고요. 말 그대로 사람들이 다들 이 영상에 열광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현상, 단순히 이 채널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80년대, 90년대의 향수를 담아내는 채널들이 인기를 끌고 있죠. 대표적인 계정이 Maximal Nostalgia입니다. 이 계정에는 AI로 만든 1980~90년대 미국이 끝없이 등장합니다. 학교가 끝난 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쇼핑몰에서 노는 청소년들, 오래된 패밀리 레스토랑, 차고 앞에서 농구하는 아이들.
그런데 이 세계관을 구축한 Tavaius Dawson은 26세입니다. 자기가 그리워하는 1980년대를 살아본 적이 없죠. Dawson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시대에 자란 사람들이 그런 걱정 없이 살던 시대를 동경하는 것 같다고 설명해요. 수많은 사람이 그가 만든 과거를 함께 그리워하고 있죠.
인스타그램에서 Nostalgia를 검색하면, 비슷한 영상들이 수도 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참 이상하죠? 최첨단 기술을 손에 넣은 사람들이 자꾸 옛날 영화를 만들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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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80년대 미국을 겪어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이 영상들에 마음이 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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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상에 대해 취재한 뉴욕타임즈와 인터뷰 한 Sean Monahan은 재미있는 표현을 쓰는데요. "이상하게도, AI는 과거를 바라보는 기술이다(AI, weirdly, is a backward-looking technology)." 그는 LLM 역시 결국 과거의 정보로 만들어진 합성물이라는 점을 짚습니다.
그런데요, AI가 만들어내는 80년대, 90년대 풍경을 자세히 보면 좀 웃깁니다. 희한하게 늘 행복해 보여요. 아이들은 밖에서 놀고, 이웃끼리는 행복한 인사를 나누고, 아무도 식탁에서 휴대폰을 보지 않습니다. 경기침체도, 범죄도, 냉전도 잘 보이지 않죠. AI가 꽤 선택적으로 과거를 기억하던지, 아니면 AI를 통해 이 영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과거의 특정 장면만을 되살려내고 싶은 모양입니다.
실제로 심리학자 애나 벨러(Anna Behler)는 이런 현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과거를 ‘장밋빛 안경’으로 바라보는 집단적 향수와 연결짓기도 합니다. AI가 그리는 80년대에서는 당시의 불평등, AIDS 위기, 마약 문제 같은 현실이 지워져 있습니다. 대신 이 가짜 영상들에 담긴 모습은 풍성하게 부풀린 머리, 화려한 색상의 옷, 어깨 패드 등 당시를 대표하는 유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물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영상을 볼 때 누가 그런 어두운 과거를 보고 싶겠냐,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벨러 교수는 AI 영상의 품질이 너무나 사실적이기 때문에 과거의 실제 장면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흐릴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실 그리워하는 것도 특정 연도의 모습이라기보다 그 안에 있었다고 상상하는 어떤 풍경일 지 모른다는 거죠. 스마트폰 없는 저녁, 친구와 그냥 노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른한 화요일 아침 같은 풍경들요. 그러니까 이건 실제 1980년대라기보다, 2026년의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1980년대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겁니다. AI는 과거를 복원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욕망에 맞춰 과거를 다시 쓰고 있는지도 모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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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는 것이요, 똑같은 VHS로 촬영한 화면 느낌이 완전히 반대의 감정을 주기도 해요. 오래된 CCTV, 텅 빈 쇼핑몰, 사람 없는 호텔 복도, 형광등만 켜진 사무실. 괴물이 나온 것도 아닌데 왠지 무서운 느낌이 들죠. 우리는 호텔 복도가 어떤 공간인 지 압니다. 학교도 알고, 쇼핑몰도, 수영장도 잘 알죠. 그런데 원래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아무도 없으면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분명 잘 아는 장소인데 뭔가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실 이건 AI가 나오기 전부터 우리에게 공포로 익숙한 풍경이었어요. 이 감각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대표적인 인터넷 문화가 'Backrooms'입니다. 노란 벽지와 형광등으로 가득 찬 끝없는 사무실을 누군가 헤메는 거죠. 2002년 촬영된 어떤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이 현상은 관련 게임에 영화까지 등장할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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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공간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이에 대해 연구한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그 해답을 조금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가 건축 환경에서도 나타나는지에 대해 관찰했는데요. 해당 연구에 따르면 익숙한 공간의 구조가 우리가 예상하는 패턴에서 벗어날수록 기묘함(uncanniness)이 커지는 현상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고 합니다. 특히 무언가 일그러진 '공공장소'에서는 사람이 등장했을 때 기묘함이 줄어드는 효과도 관찰됐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AI 노스탤지어도 거의 비슷한 배경인데, 어떤 걸 조합하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이 달라진다는 게 참 재미있죠. 1987년 여름, 자전거, 친구들, 노을을 조합하면 노스탤지어가 되지만, 같은 1987년이라도 밤, 텅 빈 쇼핑몰, 형광등을 조합하면 공포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익숙한 공포물의 문법을 그대로 차용한 AI 영상들도 온라인을 점령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요새 재미있게 보고 있는 미래미디어 계정이 대표적인데요, 과거 어느 시점에 촬영된 극비 푸티지가 유출되었다는 컨셉으로, 70~90년대 익숙한 풍경들과 기묘한 영상물, 배경음악 등을 조합해 으스스한 연출을 꽤나 효과적으로 만들고 있는 채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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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오싹하게 느껴지는 클립들. © 미래미디어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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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초기 AI 영상 기억하시나요? 뭐 가끔 요새도 그런 모습들이 포착되곤 합니다만, 손가락이 여섯 개, 사람이 걷다가 다른 사람으로 갑자기 변하고, 들고 있던 물건이 다음 순간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런 영상들이요. 일반 영상이라면 이거 아주 엄청난 실패죠. 그런데 이게 공포영화라면 얘기가 완전 달라져요. 사람이 이상하게 걷고, 얼굴이 인간 같은데 인간 같지 않은 모습. 복도의 구조가 갑자기 조금 전과 달라진다거나, 뒤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죠. 전부 연출처럼 보일 수 있는 거에요.
앞서 본 연구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인간은 익숙한 것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일탈에도 기묘함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AI의 재능은 괴물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세계를 아주 약간, 한 5% 정도만 틀리게 만드는 능력, 그게 AI가 아주 잘 만드는 공포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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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포멧(Nicolas Pomet)의 <The Cartoonist>는 생성형 AI로 제작된 공포 단편인데요. Curious Refuge의 AI Horror Film Festival에서 1위를 차지했고, Artefact AI Film Festival의 finalist를 거쳐 New York International Film Awards에서도 Best AI Film을 받았습니다. AI로 제작된 공포물이 작품성도 인정받는 시대가 된 거죠. AI의 가장 큰 약점이, 공포영화에서는 가장 큰 재능이 된 건데요. 어쩌면 AI는 공포를 잘 이해해서 무서운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오히려 아직 현실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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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AI는 힙하고, 어떤 AI는 '밤티'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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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영상 제작에선 현장에서 하는 촬영 대신에 수많은 장면을 생성하는 일들이 반복됩니다. 결과를 확인하고 프롬프트를 수정하고, 또다시 수정버전을 생성하는 일들의 연속이죠. 영화 제작의 일부가 촬영에서 생성하고 고르는 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AI를 활용해 콘텐츠를 실제로 만드는 사람들도 이 변화를 마냥 낙관적으로만 보는 건 아닙니다. AI 콘텐츠 스튜디오의 감독 Han Lichen은 지금 쏟아지는 AI 단편 상당수에 대해,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핵심도, 내용도 없는 작업(assembly-line stuff, with no core or substance)이라고 표현했습니다. AI는 보기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뿐이고, 핵심은 인간에게 있다는 겁니다. AI 제작자 본인이 한 말이라 더 재미있죠. 다시 말해, AI가 과거에 비해 훨씬 빠르고, 훨씬 큰 제작 능력을 줄 순 있으나, 영화 스튜디오의 제작 능력을 제공한다는 게 영화감독의 능력까지 준다는 뜻은 아니라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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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AI Slop이라는 단어 들어보셨나요? 이 단어는 AI로 생성된 저품질 또는 중간 수준의 디지털 콘텐츠를 뜻하는 말인데요. 주로 관심을 끌거나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으로 대량 생산되는 콘텐츠를 의미합니다. 처음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일 수 있으나, 깊이나 독창성이 부족하고, 의미 있는 정보나 즐거움을 제공하기보다는 클릭이나 반응을 유도하도록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죠. '스팸'과 유사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들이 피드를 점령하면서, 제대로 된 창작자들의 활동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죠.
어떤 콘텐츠가 슬롭(Slop)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전 어쩌면 이에 대한 정답이 세계관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슬롭(Slop)이 많이 만들 수 있으니까 무분별하게 생성하고, 수많은 플랫폼에 배포되고, 관심을 확보하는 프로세스를 거친다면,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작업물들의 경우는 보여주고 싶은 세계를 먼저 상정하고, 영상 생성 후 제작자의 선택에 의해 수정 및 연결, 유사한 컨셉의 콘텐츠를 시리즈로 연재하면서 전체 세계를 구축해 나가죠. 물론 이게 정답도, 공식적인 정의도 아닙니다만, 생성 자체가 쉬워질수록 무엇을 생성했느냐보다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남겼느냐가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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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Shrimp Jesus'로 24년도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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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말 그대로 '누구나 영화감독이 되는 시대'가 온 걸지도 모르죠. 그런데 AI가 1970년대 호러와 1980년대 청춘물의 질감을 파악하고 있는 건, 이미 수많은 감독과 배우, 촬영감독, 일러스트레이터, 아티스트가 만든 이미지들을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고민들과 창작물이 선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거죠. AI가 영화를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은 어쩌면 벌써 오래된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만들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더 중요해지는 건 다른 질문일 거에요. 무엇을 만들 것인가, 수백 개의 장면 중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어떤 캐릭터를 다시 등장시킬 것인가. 이미 수많은 AI 콘텐츠 제작자들이 입을 모아 '결국 인간이 그 중심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진 한 장이 귀했던 시대에는 사진을 찍는 능력이 힘이었습니다. 영상 한 편이 비쌌던 시대에는 영상을 만드는 능력이 힘이었고요. 그런데 누구나 하루에도 수백 개의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미지 자체는 더 이상 희소한 게 아닌 시대가 되어버린 거죠. 결국 희소해지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취향일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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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Zoe>의 코멘트
AI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마르고 닳도록 여러분께 강조하고 싶은 건, 결국 AI도 사람이 쓰는 툴일 뿐이라는 겁니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에 더불어 점차 진짜와 AI를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세상이 올 때마다, 이 부분을 마치 주문처럼 외려고 합니다. (저 스스로를 위해서도요) 출근길에서 항상 미래에 뭐 먹고 살지, 하며 한숨과 함께 아침을 시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항상 출근을 하고 있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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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 장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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