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떨게 만드는 건 유령도 귀신도 아닌 불안
요니 "두달 전 장롱면허이던 저, 8시간 장거리 운전 다녀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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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요니입니다.
최근 직장에서의 나날들은 롤러코스터처럼 다이나믹해요. 막 정신없이 바쁘다가, 감정적으로 휘몰아쳤다가, 잠시 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으면 또다시 새로운 일과 갈등이 펑펑 터지고 있거든요. 이 시간 동안 저는 인생의 어느 때보다도 불안한 감정을 많이 느꼈습니다.
실행안 임원보고까지 올라갔다가 까이면 어떡하지? 협업 부서에서 거절하면? 예산을 못 받으면? 이 프로젝트 흐지부지되면? 내 성과는?
이런 불안한 감정은 단순 상황에 대한 걱정에서부터 시작해 저를 뒤흔들기까지 했습니다.
일에만 몰두해서 주변은 신경도 못 쓰고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왔는데, 나는 일도 관계도 개인적인 삶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사람이다.
하지만 불안한 감정은 의외로 그 본체에 부딪혔을 때 어이없게도 쉽게 해소되기도 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과연 불안을 느끼는 게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지, 대체 왜 자꾸 불안을 만들어내면서까지 자신을 괴롭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죠. 일에서의 불안뿐 아닙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중에 자꾸만 넘쳐흐르는 불안을 관찰하고 관리하는 법을 알아가게 된 과정에 대해 오늘의 레터에서 다뤄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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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안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가
2. 현대 사회는 불안을 활활 태우고 있다
3. 불안을 다스리고 함께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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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사전적 정의는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불행에 대한 염려 섞인 불편함이나 초조함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많은 동물에게 불안은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잠재적 위협을 피하고 더 안전한 행동을 하도록 몸과 마음을 미리 각성시키는 진화적 기능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 원시적인 경보 장치가 실제 생명의 위협이 거의 사라진 현대에 와서도 쉴 새 없이 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뇌과학에서는 불안이 미래 위협의 불확실성, 즉 그것을 피하거나 줄일 방법을 모른다는 데서 생겨나는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기에 일어날 일을 시뮬레이션하게 되고, 그에 따른 최악의 결말을 상상하게 된다는 겁니다.
철학자와 정신 분석가의 설명은 더 구체적이고 실제 현실과 가깝게 연결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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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영이 읽어 화제가 되었던 쇼펜하우어 © 유노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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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삶을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에 비유했습니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고통이 따르고, 채워지고 나면 얼마 못 가 권태가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저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임원보고를 통과한 순간의 안도감은 채 며칠을 가지 못하고 분주함과 불안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다음 할 일로, 다음 성과로 나아가기 위해 불안에 또 불을 지피고 있더라고요. 마음속으로 정해둔 목적지에 도착해도 그 자리에 머무르질 못하고, 곧바로 또 다른 결승선을 찾아 나서는 겁니다.
그런데 이 불안, 정말 제가 원해서 만들어낸 걸까요.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개인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욕망을 표현하는데, 그 언어 자체가 타자의 것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욕망도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에 의해 형성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반응이 정말 나의 기준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원할 거라 제멋대로 상상해 낸 기준인지, 그 구분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프로이트는 초자아라는 개념을 설명했는데요. 남들이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가혹한 평가를 내면화하고 나 자신이 나를 혹독하게 평가하는 엄격한 심사 위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불안감을 계속 조성한 건 이미 제 안에 들어와 자리 잡은 그 기준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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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제광
불안의 핵심 원료가 불확실성인데 한국 사회는 그 불확실성을 유난히 못 견디는 성향을 보입니다. 문화심리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의 문화 차원 이론에서 한국의 불확실성 회피 지수는 85점으로,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축에 속합니다. 이 지수가 높은 사회는 위험을 회피하고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않으며,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불편함을 관리하기 위해 엄격한 규칙과 계획으로 상황을 통제하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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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연인들이 서로를 통제하며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규칙 안에 가둡니다. 이러한 양육 문화나 교제 문화에 익숙해지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내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이런 통제 문화는 화면 안에서도 반복해서 재생됩니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조지 거브너의 배양 이론에 따르면, 텔레비전을 장기간으로 많이 보면 실제 세상을 그것보다 더 적대적이고 위험하다고 믿게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가 육아 공포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온 것도, <이혼숙려캠프>가 관계 회복이라는 원래 취지와 달리 갈등 장면 위주로 편집된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논쟁이 계속된다는 사실 자체가, 시청자들이 화면 속 극단적인 사례를 실제보다 더 흔하고 위협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니까요.
통제할 수 없어 보이는 남의 위기를 미디어와 SNS를 통해 지켜보면서 우리는 같은 일이 내게도 닥칠 수 있다는 상상을 키우고, 그 상상을 다시 통제 욕구로 발산하게 됩니다. 아이가 잠깐 떼를 써도 전문가의 소견부터 검색하고, 배우자와 사소하게 다투고 나서도 이혼을 떠올리며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러워지는 식으로요. 파국을 피하려는 마음이 불안으로 인해 통제 행동을 더 유발하게 되겠지요.
#️⃣ 성과주의
"일이 경제적 생산에 필요할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을 이루는 중심이라는 믿음." 저널리스트 데릭 톰슨은 2019년 디 애틀랜틱 기고글에서 워키즘(Workism)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성과 만능주의로 빠지게 되며, 어느 가치보다도 일의 성취를 추구하도록 학습해 왔습니다. 일에서의 성과=나의 가치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순간 업무에 대한 불안은 더 이상 업무만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전체에 대한 불안으로 확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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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우리 사회가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해진 단어가 떠오릅니다. '노오력'. 실력이니까, 노력한 결과니까, 그러니 잘되면 온전히 내 덕이고 못되면 온전히 내 탓이라는 공정의 논리입니다. 성과가 곧 능력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탓에 그 실패의 원인을 전부 내면의 문제로 돌리게 됩니다. 사회 전체가 우리에게 걸어놓은 가스라이팅인거죠. 언제나 다음 프로젝트, 내년 연봉 협상, 다음 직급으로의 진급이라는 끊임없는 목표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 비교
FOMO(Fear of Missing Out)는 요즘 주식, 부동산 시장을 두고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용어죠. 다른 사람들이 기회를 얻고 있을 때 자신만 놓치고 있다는 불안입니다. 예전에는 친구, 주변 사람들이 그 비교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알고리즘이 끊임없이 골라다 주는 무수한 타인의 하이라이트 장면과 비교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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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모 와서 삼전닉스 사신 분들 계시죠? (저는 돈이 없어서 못샀습니다…) 주식 커뮤니티, 블라인드,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리는 남들이 실시간으로 기회를 잡는 모습을 보게 되고, 실시간으로 불안해집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불안장애 진료 인원은 2017년 65만 3,694명에서 2021년 86만 5,108명으로 5년간 32.3% 늘었고, 그중 20대의 증가율이 86.8%로 전 연령대 중 가장 가팔랐습니다. 불안이라는 구조는 원래도 있었지만, 지금 이 사회는 그 구조에 유독 많은 연료를 붓고 있는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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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에서 언급했던 최근 저의 불안의 원인이 되었던 사건은 다 끝나고 보니 별 큰 일이 없었습니다. 보고나 협업 부서와의 소통 과정에서 몇 가지 피드백을 받았지만 제가 하고 있었던 일을 근본적으로 뒤집어버리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다 끝나고서 돌아보니 저의 불안을 지폈던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미리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해 버린 제 생각의 흐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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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뎌내고, 그 현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불안한 생을 다스리는 방법을 읽게 되었어요. 저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었던 말들을 소개합니다.
세네카 "인간이 지혜를 얻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런 현실에 격노와 자기연민, 고뇌, 분노, 독선과 편집증 등으로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세상을 더욱 완고하게 만들지 않는 요령을 터득함으로써 가능하다."
자책에 매번 휘둘리는 대신 벌어진 결과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괴로운 이유는 결국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데’라고 완강히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세네카의 주장입니다. 생각해 보면 ‘상사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절대로 받으면 안 돼!’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생각한 계획대로 모두 이루어져야 해’ 같이 완고하게 생각할수록 상황은 나에게 가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크라테스 "사람들의 반대를 마주하는 상황에서 소크라테스처럼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옳다고 믿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찬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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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반대를 마주하는 상황에서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일 겁니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느라 흔들리던 마음에, 타인의 인정 없이도 스스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되짚어 줍니다. 오히려 타인의 인정을 배제하고도 스스로 믿을 수 있는 개인으로서 사유하고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니체 "처음의 실패와 뒤이은 성공 사이의 간격에는, 또 우리가 언젠가 이루고자 하는 인간형과 현재의 모습 사이의 간극에는 고통과 고뇌, 부러움과 굴욕감 등이 채워져야 한다. 우리는 인간 완성에 필요한 요소들을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는 두루 갖출 수 없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성과주의는 실패를 곧 내 탓으로 돌렸지만, 니체는 그 고통 자체가 완성된 삶을 만드는 재료라고 말합니다. 실패가 능력 부족의 증거가 아니라, 원래 그 간극에 있어야 할 당연한 재료라는 겁니다. 정신승리라고 보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불안과 고통이 인생에서 사라질 수 없는 당연한 구성요소라고 하면 그것을 원망하고 탓하기 보다는 자양분으로 생각하는 편이 건강한 삶을 지속해나갈 수 있는 길일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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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라는 감정을 완전히 제거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겠죠. 타인과 함께 살아가고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인 한 불안은 불쑥불쑥 일어날 테니까요. 다만 나이가 들고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다루는 능력을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어떤 불안에 내가 가장 취약한지, 무엇이 나를 평정으로 돌려주는지. 불안의 소용돌이에 몸을 내맡기지만 말고 스스로의 생각을 관조해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다루는 방법을 찾아보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스스로 질문하기부터 시작하는 거죠.
요즘 나에게 가장 자주 찾아오는 불안은 무엇과 관련한 것이지? 그 불안은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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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요니>의 코멘트
부산에서 인디 음악가들이 공연하는 라이브클럽 오방가르드가 공연 중 '관객이 춤을 췄다'는 이유로 식품위생법 위반에 따른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을 통지받았습니다. 탈법적인 유흥업 방지를 위해 생긴 춤 금지 시행규칙이 정당한 음악 공연의 발목을 잡게 된 것입니다.
건전한 공연 관람 과정에서 발생하는 춤과 호응을 유흥행위와 동일하게 취급하고, 소규모 공연장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방식은 개선되어야 합니다. 법 개정 청원 동의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고 여러분도 관심을 가져주십사 오늘의 콘텐츠로 달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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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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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 장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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