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도 결국 비즈니스입니다
장희수 "저 오늘 생일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좋은 일만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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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장희수입니다. 2026년에 한국에 있게 되면서 다시 어거스트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트 구독자 분들과 커피챗을 해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연락 주세요!
오늘은 언론 이야기를 할 때 늘 뒤로 밀려났던 ‘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불편하지만, 언론의 위기를 이야기하려면 결국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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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론은 왜 가난해 보일까?
2. 한때 잘 나갔던 모델: 광고라는 황금알 3. 뉴스는 여전히 언론이 만들지만... 플랫폼이 재편한 뉴스의 질서
4. 그래서 등장한 새로운 실험들
5. 이제야 시작된 고민: 언론은 뭘 파는 산업인가?
6. AI가 이 판을 더 엉망(?)으로 만드는 이유
7. 앞으로 살아남는 언론의 공통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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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가지는 영향력은 큰데, 왜 돈 얘기만 나오면 초라해질까요. '돈'에 대한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공공연히 던져지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더 익숙한 표현을 반복해 왔어요. “저널리즘의 위기” 이 말은 너무 자주 쓰여서, 이제는 거의 자동완성처럼 느껴집니다. 클릭 수가 줄어서, 신뢰가 무너져서, 젊은 세대가 뉴스를 안 봐서. 이유는 늘 많고, 위기는 늘 현재진행형입니다. 광고에 너무 의존했다는 말, 구독은 어렵다는 말, 플랫폼이 다 가져갔다는 말. 다들 알고 있고, 다들 한 번쯤은 해본 이야기들이죠.
언론의 위기를 말하면서도, 정작 언론이 어떻게 먹고사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이야기하지 않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돈 이야기말로 언론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던져야 하는 핵심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품질과 윤리, 신뢰조차도 언론이 스스로 무엇을 하는 사업인지 알고 있을 때에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언론이 무엇을 파는지 명확하지 않으면, 무엇을 기준으로 좋은 기사인지, 어디까지가 윤리적 판단인지, 어떤 신뢰를 약속하는지 역시 흐려집니다. 수익 구조는 단순한 재정 문제를 넘어서, 언론이 스스로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어떤 돈을 받는지는 어떤 저널리즘을 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습니다.
언론산업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언론은 민주주의의 4권력” 같이 원론적인 이야기 혹은 반대로 “이 돈 받고 이런 글을 쓴다고? 기레기” 혹은 “언론이 뒷돈 받았다” 이런 부정적인 얘기는 많이 들어도, 실제로 언론이 수익구조 상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들을 기회가 많지는 않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언론을 비즈니스로서 바라보고 수익구조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우리가 생각보다 많이,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언론의 위기를 이야기하려면 이 이야기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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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위기...10년이 넘도록 ing...(그나저나 국민배우 손현주의 거지짤은... 정말 에버그린 콘텐츠인 것 같습니다.) 출처: MBC '베스트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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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더 따라옵니다. 이게 왜 언론 종사자들만의 고민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상관해야 할 문제일까요? 돈이 안 되는 비즈니스라면, 그냥 사라져도 되는 거 아닐까요?
언론을 단순한 산업으로 본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시장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는 역할을 맡아왔어요. 감시, 기록, 공론장의 형성. 이 기능들이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부담할 것인지는 결국 사회 전체의 선택과 연결됩니다. 언론의 비즈니스 모델은 기업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어떤 정보 환경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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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라떼’는 화려함 그 자체였습니다. 신문은 잘 팔렸고, 방송은 영향력이 곧 수익이었으며, 광고는 자연스럽게 따라붙었습니다. 언론이 지금처럼 갑자기 수익 걱정을 하게 된 건, 사실 그 전에는 너무 잘 벌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언론의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했고, 꽤 안정적이었어요. 독자는 뉴스를 보고, 언론은 그 독자의 시선(attention)을 광고주에게 팔았습니다.
독자 → 언론 → 광고주 로 이어지는 이 구조는 한동안 거의 의심받지 않는 공식이었습니다. 언론은 정보를 제공하고, 광고주는 비용을 부담하며, 독자는 무료로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이 모두에게 합리적인 균형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돈을 어떻게 벌고 있는지보다 어떤 뉴스를 만들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신문을 사면 광고가 딸려 왔고, 방송을 켜면 광고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어요. 지역 신문은 지역 상권을 독점했고, 지면과 전파는 희소했습니다. 언론을 거치지 않고는 광고가 대중에게 닿을 방법이 많지 않았고, 언론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는 장소’를 장악하고 있었죠. 이때의 광고 수익은 정말로 황금알에 가까웠습니다.
이 모델이 저널리즘의 질과 직접 충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독자는 돈을 내지 않아도 뉴스를 볼 수 있었고, 언론은 “우리는 공공재를 제공한다”는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었죠. 비용은 광고주가 부담했고, 언론은 비교적 당당하게 ‘돈 얘기’를 뒤로 미룰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모델이 기술 변화에 너무 취약했다는 점입니다. 광고 모델은 언론이 뉴스를 잘 만들어서 작동한 게 아니라 유통 채널이 희소했기 때문에 작동했어요. 인터넷과 모바일이 등장하고,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이 전제가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더 이상 특정 언론사에 머물지 않았고, 광고주는 언론이 아니라 플랫폼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죠.
여기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언론은 여전히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지만, 수익을 설계하는 권한은 점점 잃어갔어요. 광고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 광고를 누가 배분하는지는 달라졌습니다. 언론은 더 많은 클릭을 만들어야 했고, 더 빠르게 더 자주 생산해야 했으며, 그 대가로 받는 몫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가 저널리즘의 질과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속도와 양이 보상되는 구조에서는 검증과 맥락, 장기 취재가 점점 부담이 됩니다. 주목을 끌지 못하는 중요한 뉴스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오는 콘텐츠가 우선되기 쉬워지고, 편집의 기준 역시 저널리즘적 판단보다 플랫폼의 반응에 더 민감해집니다.
그런데도 한동안 언론은 이 모델을 쉽게 놓지 못했습니다. 광고는 여전히 가장 익숙했고, “언젠가는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어요. 무료 뉴스에 익숙해진 독자 문화 역시 이 구조를 더 오래 붙잡아 두었습니다. 광고라는 황금알은 이미 금이 가 있었지만, 깨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엔 너무 오래 의존해 왔던 거죠.
이 지점에서 언론의 오늘이 시작됩니다. 광고 모델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언론을 떠받치는 중심 축이 되기에는 부족해졌어요. 그리고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언론은 처음으로 아주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이제, 누구에게서 돈을 받아야 할까?”
이 질문은 단순한 경영 전략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음 섹션에서 보게 되겠지만, 이 질문은 곧바로 독자, 시민, 그리고 언론의 정체성 문제로 이어집니다. 광고 다음에 등장한 대안들은 단순한 수익 다각화가 아니라 언론과 독자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이에요. 이제 황금알은 더 이상 혼자서 굴러가지 않습니다. 언론은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시점에 와 있었던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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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티비에서 방송이 격일로 두 시간씩 나와도 감지덕지였어... (feat. 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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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여전히 언론이 만들지만... 플랫폼이 재편한 뉴스의 질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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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모델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많은 언론사는 플랫폼을 구원자처럼 맞이했습니다. 포털과 소셜미디어는 뉴스를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빠르게 전달해 주는 통로였어요. 검색과 추천을 통해 독자는 늘어났고, 트래픽은 숫자로 눈에 보였습니다. 한동안은 이 흐름이 언론의 생존을 도와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언론은 플랫폼이 가져간 것이 단순히 광고 수익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플랫폼은 유통을 가져갔고, 데이터를 가져갔고, 관계를 가져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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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짤 찾다보니 영화 다시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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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유통입니다. 독자는 더 이상 언론사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포털 메인에서, 소셜 피드에서, 알고리즘이 골라준 뉴스를 스치듯 소비해요. 어떤 기사를 읽었는지보다, 그 기사가 어느 언론사에서 나왔는지는 점점 중요하지 않아졌습니다. 언론은 콘텐츠를 생산하지만, 그 콘텐츠가 어떻게, 누구에게, 어떤 맥락으로 전달되는지는 플랫폼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다음은 데이터입니다. 누가 무엇을 읽고, 얼마나 머물고, 무엇을 클릭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플랫폼에 쌓입니다. 언론은 “조회수”라는 결과만 받아볼 뿐, 독자가 누구인지, 왜 왔다가 떠났는지는 충분히 알기 어렵습니다. 이건 단순한 기술 문제라기보다, 수익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힘의 문제입니다. 데이터를 가진 쪽이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는 관계입니다. 플랫폼은 언론과 독자 사이에 서서, 그 관계를 중개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독자는 특정 언론을 신뢰해서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을 통해 습관적으로, 그리고 우연히 뉴스를 보게 됩니다. 이 구조에서 언론은 점점 ‘선택받는 주체’가 아니라, 선택되는 콘텐츠 공급자에 가까워졌습니다.
이 지점에서 언론의 수익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광고 수익은 플랫폼으로 이동했고, 트래픽은 플랫폼의 규칙에 따라 출렁입니다. 알고리즘이 바뀌면 유입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면 노출이 사라집니다. 언론은 더 많은 클릭을 만들기 위해 플랫폼에 최적화된 제목과 형식을 고민하지만, 그 노력의 성과를 안정적인 수익으로 전환하기는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언론이 무엇을 잃었느냐입니다. 단순히 돈을 잃은 게 아닙니다. 언론은 독자와 직접 관계를 맺을 기회,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가격으로 매길 권한을 잃어갔습니다. 플랫폼은 말 그대로 플랫폼을 제공했지만, 그 대가로 언론의 자율성과 협상력을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언론은 이상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콘텐츠를 만들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고, 콘텐츠를 만들어도 그 가치가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 구조. 플랫폼 없이는 독자에게 도달할 수 없지만, 플랫폼에 의존할수록 더 약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플랫폼 역시 비즈니스이고, 플랫폼의 입장에서 보면 이 과정은 매우 성공적인 사업 전략이었습니다. 이용자를 모으고, 데이터를 축적하고, 광고 시장을 재편한 것은 플랫폼의 능력이자 성과였죠. 문제는 그 과정에서 형성된 관계의 비대칭성였습니다. 플랫폼과 언론은 같은 방향을 보는 파트너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권한과 정보가 동등하지 않았어요. 플랫폼은 규칙을 만들고, 언론은 그 규칙에 적응해야 하는 위치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이 불균형을 언론이 너무 늦게 인식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특히 유통, 데이터, 관계의 중요성을 하나씩 잃어가면서도, 그 의미를 제대로 자각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트래픽은 늘었지만 그 트래픽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독자는 늘었지만 관계는 쌓이지 않았어요. 언론은 콘텐츠를 공급했지만, 독자와의 연결 고리는 플랫폼이 쥐고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언론의 수익 문제는 단순히 외부 환경 탓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플랫폼이 가져간 것들도 있었지만, 동시에 언론이 너무 늦게 중요하다고 인정한 것들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통을 통제할 권리, 데이터를 이해할 능력, 그리고 독자와 직접 관계를 맺는 일의 가치 말이에요.
플랫폼 이후의 시대에 언론은 다시 독자와 어떤 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을까요? 구독과 멤버십이라는 선택지는 단순한 수익 모델이 아니라 이 관계를 되찾으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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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할 때가 오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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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라는 황금알에 금이 가고, 플랫폼을 통해 유통·데이터·관계를 잃었다는 사실이 조금씩 분명해지면서, 언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이제, 누구에게서 돈을 받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새로운 실험들이 등장합니다. 구독, 멤버십, 후원, 이벤트, 교육, 뉴스레터, 커뮤니티까지. 언론사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시도하기 시작했어요. 중요한 건, 이 실험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건 언론이 독자와의 관계를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에 가까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구독 모델입니다. 무료 뉴스와 광고에 기반한 구조에서 벗어나, 독자에게 직접 비용을 받겠다는 선택이었죠. 이 전환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왜 뉴스에 돈을 내야 하죠?”라는 질문에 답해야 했고, 수많은 대체 콘텐츠 속에서 ‘굳이 이 언론이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구독 모델은 언론에게 콘텐츠의 질뿐 아니라, 정체성과 일관성을 요구하는 모델이었습니다.
멤버십과 후원 모델은 조금 다른 방향에서 접근합니다. 여기서 독자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언론을 지지하는 존재로 설정됩니다. “이 기사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이 언론이 필요해서” 돈을 낸다는 논리입니다. 저널리즘을 공공재에 가깝게 이해하려는 시도이기도 해요. 다만 이 모델은 규모의 한계와 지속성이라는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사 밖에서 수익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늘어났습니다. 행사, 강연, 교육 프로그램, 리서치, 컨설팅까지. 언론이 가진 신뢰와 전문성을 콘텐츠 외부로 확장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언론을 단순한 뉴스 생산자가 아니라 지식과 해석을 제공하는 조직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실험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광고 모델처럼 자동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앉아서 굴러오는 광고를 받는 데 익숙했던 언론은 이제 스스로 낯선 노동을 해야 합니다. 독자를 설득해야 하고,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지속적으로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이 모델들은 모두 관계 노동을 전제로 합니다. 플랫폼 시대에 잃어버린 관계를 되찾으려는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 실험들은 늘 불안정해 보입니다. 성공 사례도 있지만, 쉽게 확장되지는 않습니다. 많은 언론사들이 여전히 “이게 답일까?”라는 질문을 붙잡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이 실험들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딪혀보지 않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다는 점입니다. 광고로 돌아갈 수도 없고, 플랫폼에 더 의존할수록 더 약해지기 때문이에요. 이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언론은 생존의 길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언론은 왜 늘 가난해 보일까요?
어쩌면 그 이유는 단순히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라 언론이 이제야 돈을 어디서, 어떤 관계 속에서 벌 것인지를 정면으로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실험들은 아직 미완이고 불안정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히 드러냅니다. 언론의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어떤 독자와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라는 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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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시작된 고민: 언론은 뭘 파는 산업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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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 멤버십, 후원, 이벤트 같은 실험들이 이어지면서, 언론은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이 질문은 생각보다 단순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불편합니다.
언론은 도대체 무엇을 파는 산업인가요? 콘텐츠를 만드는 비용은 낮아지는데, 정작 저널리즘의 가치는 더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시대에 말이에요.
이 질문은 오랫동안 굳이 던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광고 모델 아래에서 언론이 파는 것은 분명해 보였거든요. 뉴스 콘텐츠, 혹은 사람들의 관심. 독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고, 언론은 자신이 무엇을 팔고 있는지 명확히 설명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공공재를 제공한다”는 말은 사실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질문을 미뤄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하지만 독자에게 직접 돈을 받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이제 언론은 독자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이 기사가 왜 가치 있는지, 왜 이 언론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이 관계가 지속될 만한지 말이에요. 이 순간부터 언론은 단순히 뉴스를 생산하는 조직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언어로 설명해야 하는 산업이 됩니다.
여기서 흔히 등장하는 답은 “뉴스를 판다”, “정보를 판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 답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어요. 정보는 넘쳐나고, 속보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며, 요약과 번역은 AI가 대신해 줍니다. 콘텐츠 그 자체는 더 이상 희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그래서 언론이 실제로 팔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신뢰, 해석, 맥락, 책임, 혹은 세상을 이해하는 특정한 방식. 독자는 사실 ‘사실(fact)’만을 사는 게 아니라, 그 사실을 어떻게 엮고, 무엇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는지를 함께 소비합니다. 다시 말해, 언론은 정보를 파는 산업이 아니라 판단과 해석을 조직적으로 제공하는 산업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 전환은 저널리즘의 윤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무엇을 다루고, 무엇을 다루지 않는지, 어떤 어조로 말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취재하고 검증하는지... 이 모든 것을 이제는 비즈니스 모델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언론이 무엇을 파는지에 대한 정의는 곧 어떤 저널리즘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선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기술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페이월을 어디에 둘 것인가”나 “가격을 얼마로 할 것인가”보다 앞에 와야 할 질문이에요. 언론이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먼저 정리되지 않으면 어떤 수익 모델도 오래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이 지점에서 언론의 가난함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건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정체성을 다시 정의하는 과정에서 겪는 불안정함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팔고 있는지 명확히 말하지 못하는 산업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기 어렵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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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이 판을 더 엉망(?)으로 만드는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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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우리는 무엇을 파는 산업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AI가 등장했습니다. 질문이 정리되기도 전에 판이 한 번 더 뒤집혔습니다. 그래서 요즘 언론계에서 AI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기대와 불안이 묘하게 섞여 있습니다. 생산성은 높아질 것 같고, 비용은 줄어들 것 같지만, 동시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따라옵니다. (또다시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ai ver…)
AI가 이 판을 더 엉망(?)으로 만드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AI는 콘텐츠를 만드는 비용과 함께 콘텐츠의 가치도 낮춰버리기 때문입니다. 기사 초안 작성, 요약, 번역, 제목 추천까지... 이제 많은 작업을 AI가 빠르고 그럴듯하게 해냅니다. 그 결과, ‘기사’라는 형태 자체는 더 이상 희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디에나 있는 것이 되어가고 있어요.
구글에 검색만 해도 검색 결과 상단에서 AI 오버뷰가 핵심 내용을 요약해 주고, 포털에서는 기사 몇 줄만 훑어도 대략적인 맥락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 뭐야?”라는 질문에는 기사 링크 대신 챗GPT에게 한 줄 요약을 부탁하는 게 더 빠른 선택이 되기도 했죠.
이 변화는 언론의 수익 구조에 치명적입니다. 이미 플랫폼 시대를 거치면서 “콘텐츠만으로는 돈이 안 된다”는 사실을 경험했는데, AI는 그 현실을 더 빠르고 더 확실하게 만듭니다. 독자 입장에서 보면, 굳이 특정 언론사의 기사 하나에 돈을 낼 이유가 더 줄어드는 거죠. 요약은 무료이고, 해설은 넘쳐나며, 비슷한 정보는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습니다.
AI는 언론이 그동안 미뤄왔던 질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듭니다. “우리는 무엇을 팔고 있는가?”라는 질문 말이에요.
AI 시대의 언론 위기 역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 문제에 가깝습니다. AI는 언론에게 묻고 있는 셈입니다. “당신들이 하는 일이, 내가 못 하는 일인가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순간, 언론의 비즈니스 모델은 더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AI가 잘하는 것은 반복, 요약, 패턴화입니다. 반대로 AI가 잘하기 어려운 것은 맥락 판단, 책임 있는 해석, 그리고 왜 이 뉴스가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일입니다. AI가 기자를 대체한다는 말의 이면에는, 기자를 그저 정보제공자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만약 언론 스스로도 자신이 파는 것이 단순한 정보라고 믿고 있다면, AI는 그 자리를 아주 빠르게 대체해 버릴 수 있습니다.
모순적이게도, 저는 AI를 마주한 2026년이 언론의 전환점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사 생산 비용이 낮아질수록, 언론이 정말로 차별화해야 할 지점은 더 또렷해지기 때문입니다. 속보 경쟁이나 양적 생산이 아니라, 신뢰, 판단, 책임, 그리고 관계. AI는 이 영역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걸 독자에게 가격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가치는 여전히 수익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2026년은 이 가치를 독자에게 가격으로 설명해야 할 시기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요. 그래서 AI는 이 판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판의 본질을 드러내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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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다는 것... 그것이 곧 강하다는 것! (출처: 불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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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언론이 살아남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놓기는 어렵습니다. 언론의 미래는 기술, 정치, 경제, 문화가 동시에 얽혀 있기 때문이에요. 다만 지금까지의 변화와 실험들을 지켜보면 몇 가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공통점은 보입니다. 정답이라기보다는 방향에 가깝습니다.
먼저, 살아남는 언론은 트래픽에 덜 집착할 가능성이 큽니다. 클릭 수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자체를 목표로 삼지는 않습니다. 대신 어떤 독자에게, 어떤 관계로 도달할 것인지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읽히는 언론보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언론이 되는 쪽을 선택합니다.
독자를 더 이상 단순한 소비자로만 보지 않는 언론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구독자, 멤버, 참여자, 지지자… 표현은 다르지만,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할 겁니다. 살아남는 언론은 독자를 트래픽이 아니라 함께 가는 존재로 상상합니다. 이 관계는 느리고, 관리가 필요하며, 자동화되기 어렵습니다. 노력없이 들어오던 다른 자산과는 달리 계속 관심과 노동이 필요한 자산입니다. 그래서 더 어렵지만 동시에 쉽게 대체되지 않습니다.
기자와 편집자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살아남는 언론은 기자를 ‘콘텐츠 생산자’로만 보지 않습니다. 기자 개인의 전문성, 신뢰, 목소리가 곧 언론의 자산이 됩니다. 이건 스타 기자 중심의 구조와는 다릅니다. 특정 인물에 의존하기보다는 조직 차원의 신뢰를 축적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살아남는 언론일수록 비즈니스 모델을 윤리 문제와 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돈 얘기를 하면 저널리즘이 훼손된다”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어떤 돈을 받을지, 어떤 돈은 받지 않을지를 명확히 합니다. 수익 구조를 타협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의 기록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규모에 대한 태도일 겁니다. 살아남는 언론은 무조건 커지려 하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크기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지속 가능성을 찾으려 합니다. 무리한 확장보다 오래 가는 구조를 택해야 할 시기입니다.
이 모든 특징을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가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무엇을 파는지에 대한 설명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살아남는 언론은 자신이 처한 조건을 과장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을 거고요. 플랫폼을 이용하되 의존하지 않으려 하고, AI를 활용하되 정체성을 넘기지 않을 겁니다.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은 언론들은 점점 더 자신을 설명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이게 될 거라 전망해봅니다.
써놓고 보니, 어쩌면 이건 언론의 이야기를 넘어서 동시에 대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뉴스레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고민을 하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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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장희수>의 코멘트
서른 넘으니까 거짓말처럼 미국-한국 오갈 때 컨디션이 곤두박질칩니다. 창가 자리는 20대의 사치... 무조건 화장실 자주 가고 자주 일어날 수 있는 복도 자리를 고수합니다. 그런데 또떠남이 29시간 직항 노선을 탔더라고요. 간접 체험 한 번 같이 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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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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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 숭이 • 장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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