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고찰
Zoe "요새 교육과 철학에 대한 콘텐츠가 제 알고리즘을 점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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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Zoe입니다. 최근 여러분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는 한동안 범죄 관련 콘텐츠들이 제 알고리즘을 점령했었는데, 곧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이제 슬슬 교육과 인간 철학, 삶의 교훈 등에 대한 콘텐츠들이 제 알고리즘을 점령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그거 아세요?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결국 호르몬에 의한 프로세스라는 것. 어쩌면 인간은 '호르몬에 지배당하는 동물일 뿐인 걸까'라는 고민이 슬금슬금 쓸데없이 제 머릿속을 흔드는 요즈음, 인간의 자유 의지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하는 유튜브 영상을 한 편 접하게 되었답니다. 오늘은 그 유튜브 영상에서부터 출발해, 영상 매체와 문화 속에서 인간이 끊임없이 탐구해 온 '자유 의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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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뇌가 이미 결정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자유를 믿을까? 2. 네오, 코브, 프로타고니스트 - 스크린 위 자유 실험 3. 선택의 순환, 한국 영화 속의 자유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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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이미 결정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자유를 믿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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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주 흥미로운 유튜브 영상을 하나 접했습니다.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님께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이 콘텐츠는 '과연 내가 내리는 선택이 정말 나에 의해 이뤄질까?'라는 흥미로운 제목을 달고 있었어요.
영상 속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1983년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신경생리학자 벤자민 리벳(Benjamin Libet)이 발표한 실험의 내용에 대해 소개했는데요. 이 실험 결과는 세계 철학계와 신경과학계를 동시에 뒤흔드는 변화를 가져온 실험이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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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콘텐츠 흥미로우니까 꼭 한번 시청을 권합니다. © 장동선의 궁금한 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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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실험에 참여한 피험자에게 '원하는 시점에 손가락을 들라'는 단순한 지시를 내리고, EEG(뇌파계)를 통해 ‘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를 측정했습니다. 실험 설계 시점에서는 참가자들이 '버튼을 눌러야지'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확인하고, 뇌에서 손가락 근육을 움직이는 명령을 내리고, 마지막으로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구진의 예상과 달리, 결과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피험자가 손가락을 들겠다고 ‘의식적으로 인식’하기 약 0.35초 전, 이미 뇌에서 운동 신호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뇌파의 발생이 먼저 일어났고, 그 이후에 움직여야겠다는 의식이 생겼고, 행동을 하게 된 것이라는 거죠.
즉 우리가 '내가 선택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사실 사후 보고에 불과하다는 뜻이었습니다. 벤자민 리벳은 이 실험의 결과를 통해 '자유의지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충격적인 질문을 학계에 던진 셈이 된 겁니다. 저는 이 실험의 내용을 위 영상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이미 80년대에 저런 실험 결과가 증명되었다는 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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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은 당시 과학, 철학을 넘어 심리학, 신학마저도 뒤흔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당시 옥스퍼드 철학자 댄 웨그너(Dan Wegner)는 본인의 저서 ⟪The Illusion of Conscious Will⟫(2002)에서 '인간은 단지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꾼에 불과하다'며, 리벳의 실험이 증명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의미를 구성하는 인간의 필요였다고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리벳의 실험은 과학적 언어로 스피노자의 결정론을 되살린 셈이었습니다. 스피노자는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의 사슬에 따라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역설했던 철학자인데요. 인간이 자유롭다고 느끼는 이유는 단지 '자신의 원인을 모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칸트는 스피노자의 결정론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그는 '자유는 도덕법칙을 스스로 부여하는 자율성'이라며, 우리가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이미 자유를 행사하고 있다고 봤죠.
결국 두 철학자의 논쟁은 '자유란 무엇인가?'에서 '어디에서 자유를 발견할 수 있는가?'로 옮겨갑니다. 리벳의 실험이 뇌 속 필연을 보여줬다면, 칸트는 그 필연 속에서도 윤리적 결단의 자유를 인정한 것이죠.
칸트의 주장과 유사하게, 벤자민 리벳은 실험 결과를 자유의지의 부정이 아닌 '의식의 최종 검열권'으로 해석했습니다. 즉, 뇌가 행동을 준비하더라도, 인간은 마지막 순간에 그 행동을 억제할 자유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는 99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우리가 결국 뇌에 의해 준비된 행동만 실행한다면, 왜 어떤 충동은 실행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이 질문 하나가 논쟁의 균형을 바꿔놓았습니다. 인간의 자유는 절대적이지 않지만, 행동의 맨 마지막 순간에 '거부할 수 있는 자유(Veto Power)'가 있다는 것이죠.
뇌의 신호는 인간이 제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끊임없이 자유의지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 탐구하고 실험해왔습니다. 다양한 철학 사상과 예술 속에서 자유의지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미학적,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논해 왔죠. 저는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도 특히 영화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탐구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영화 속 프레임 하나 하나, 컷 하나가 인간의 '선택'과 '결과'를 시각화하여 보여주기 가장 좋은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레터에서는 다양한 영화들을 통해 자유 의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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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코브, 프로타고니스트 - 스크린 위 자유 실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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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영화들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논할 때, 던지는 질문들은 유사합니다. '결정된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스스로를 선택할 수 있을까?' 이미 선행적으로 결정된 세상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의 순간, 바로 그 장면들이 자유의지의 드라마를 구성하는 인간의 '선택'이고, 우리는 그 '선택'을 그동안 스크린을 통해 여러 차례 목격해 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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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장면, The Red Pill or The Blue Pill © Warner Bros. Entertain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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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199년 워쇼스키 자매가 만든 영화 ⟨매트릭스⟩일 텐데요.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실존적 자유'의 영화적 선언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속 인류는 가상 현실, 즉 매트릭스에 갇혀 살며 그것이 현실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인 네오는 ‘빨간 약’을 선택하는 순간, 진짜 세계를 향한 각성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깨닫고, 그 안에서 다시 ‘자신의 길’을 만들죠.
이 영화의 뿌리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인간은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으로 존재를 규정한다'는 사상을 말하고,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은 '현실과 가상이 구분되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모조된 세계를 현실로 착각한다'는 개념입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네오는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사실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가상현실임을 깨닫고, 진짜 현실로 깨어나기 위해 선택을 해야 하는 인물로 등장하죠. 붉은 약과 푸른 약 중 하나를 고르는 상징적인 장면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선택하는 실존적 결단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짜 현실 속에 안주할지, 혹은 고통스럽지만 진실한 세계를 마주할지를 결정하는 그의 여정은 결국 사르트르가 말한 '존재를 스스로 선택하는 인간'의 모습이자, 보드리야르가 경고한 '시뮬라시옹의 세계에서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의 초상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특히 영화 속에는 네오가 보드리야르의 저서인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을 읽는 장면까지 대놓고 등장하기도 하죠. 또한 모피어스는 영화 속에서 매트릭스를 빠져 나온 네오에게 '현실의 사막에 온 것을 환영하네'라며 보드리야르의 책에 나온 한 구절을 인용하기도 하고요.
이 외에도 영화 ⟨매트릭스⟩ 속에는 허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불교적 세계관, 여성주의, 마르크스주의 등 다양한 철학 사상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가 등장합니다. 철학적인 사상을 차치하고라도, 결국 영화 ⟨매트릭스⟩가 증명해내고자 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결국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며, 정해진 시스템 속에서도 결국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선택'이라는 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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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감독이 이후 인터뷰에서 '마지막 장면의 팽이는 멈췄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여러 가지 메시지를 던져주는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 영화 ⟨인셉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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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에 관해서라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 분야의 탑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놀란 감독은 2010년 영화 ⟨인셉션⟩, 2020년 영화 ⟨테넷⟩ 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자유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해오고 있습니다.
⟨인셉션⟩은 잘 알고 계시다시피 '현실과 꿈'의 경계를 통해 인간 인식의 자유를 탐구한 영화입니다. 주인공 코브는 타인의 꿈 속에 들어가 아이디어를 훔치는 인물로, 아내의 죽음 이후 자신의 죄책감과 현실 구분을 잃은 채 살아갑니다. 그는 마지막 임무로 타인의 '꿈' 속으로 들어가 아이디어를 심는 '인셉션'을 수행하며 여러 겹의 꿈속을 오가죠. 하지만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지금 내가 믿는 이 현실은 진짜인가?'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코브는 회전 팽이를 돌려놓고 걸어가는데, 그 팽이가 멈췄는지 아닌지를 영화는 끝내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믿기로 선택'했을 뿐이죠. 코브의 ‘믿음’은 도덕적 판단의 은유입니다. 그는 외부의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내면의 윤리적 확신을 선택했습니다. ⟨인셉션⟩에서 말하는 자유는 ‘진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에 있습니다. 때문에 이 장면은 칸트의 사상을 거의 그대로 구현합니다. 칸트에게 자유는 '도덕법칙을 스스로 부여하는 자율성'이며, '자유는 외부 세계의 조건이 아니라, 이성의 결단'이기 때문입니 다.
2020년 ⟨테넷⟩은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는 파격적 설정을 통해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거뒀던 작품인데요. 영화는 시간의 흐름이 거꾸로 흘러가는 세계, ‘인버전’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시간의 법칙 속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테러 조직으로부터 미래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시간을 역행하는 전쟁'에 뛰어듭니다. 그는 과거로 달려가 미래를 구하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든 사건은 이미 예정된 필연의 일부임이 드러나죠.
워낙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보니, 이와 관련해 다양한 해석과 연구들이 있기도 했죠. 전문가들은 영화 ⟨테넷⟩에 대해 형이상학적 숙명론에 대해 논하는 작품이면서도, 운명론적인 세상에서 우리의 행동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탐구를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테넷⟩의 인버전 세계에서 인물들은 시간의 법칙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필연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그들은 오히려 ‘자유’를 획득합니다. 시간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의 시작이죠.
놀란은 영화 속 주인공에게서 '운명을 바꾸려는 인간'이 아니라 '운명의 법칙을 이해함으로써 자유를 얻는 인간'을 보여줍니다. 이쯤에서 스피노자의 명제를 다시 떠올려보죠. 자유란 필연을 인식하는 것이다. 필연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자유롭다.
세 영화의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모두 ‘결정된 세계 속에서 자유를 증명하려는 인간’을 다루고 있죠. ⟨매트릭스⟩는 실존의 각성을, ⟨인셉션⟩은 신념의 자율을, ⟨테넷⟩은 필연의 인식을 그립니다. 이 작품들을 통해 자유 의지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깨닫느냐’의 문제로 변모합니다. 즉, 자유란 행동의 원인이 아니라 자각의 과정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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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본 영화들이 개인의 '선택'을 중심에 둔다면, 한국 영화의 트렌드는 '관계'와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향이 더 짙습니다. '내가 무엇을 선택했는가'보다, '그 선택이 나와 타인에게 어떤 파장을 남겼는가'에 더 집중하는 거죠. 여기서 ‘자유의지’는 윤리나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인연과 책임의 문제로 바뀌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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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2024년 작 ⟨어쩔수가없다⟩는 결정론적 현실 안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들이 어떤 결론으로 치닫게 되는지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사회적 조건과 상황, 관계, 혹은 감정에 이끌려 이른바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합니다.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선택의 결과는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되어 있죠.
⟨어쩔수가없다⟩는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만수가 돌연 해고되면서 시작됩니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던 그가 실직 위기에 처하고, 아이 교육비·아내의 생활비 등 급격히 무거워진 부담 속에서 점점 비틀린 선택들을 하게 되다, 결국 경쟁자들을 제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적 논리까지 도달하죠. ‘살아남기 위해서라면’이라는 논리가 그를 서서히 변질시켜 가는 과정을 영화는 날것 그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택’의 연속입니다. 경쟁자를 밀어내야 할 순간, 진실을 외면할 유혹, 그리고 도덕과 생존 사이의 경계. 만수는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며, 결국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죠.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 구범모, 고시조, 최선출과 같은 인물들은 모두 만수의 내면 일부처럼 보입니다. 순수, 자존심, 권력욕이라는 세 얼굴이, 그 안에서 갈등하며 한 인간의 몰락을 완성하죠.
엔딩 크레딧에 점점 가까워지는 동안,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겁니다. 이 사람은 결국 자유로워진 걸까요, 아니면 자신이 만든 업(業)의 굴레 안에서 순응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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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자유를 ‘무한한 가능성’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緣起)의 인식 속에서 비로소 얻어지는 깨달음이라고 묘사합니다. '모든 것은 인연으로 생겨나고, 인연으로 사라진다'는 불교의 가르침인 연기법(緣起法)의 핵심을 담은 말인데요. 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원인과 조건이 모이면 생겨나고 흩어지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가족, 사회, 감정, 기억, 그 모든 것의 그물 속에서 인간은 살아가고, 그 모든 조건이 우리의 선택을 형성합니다. 그렇다면 자유는 이 조건들을 초월하는 게 아니라, 조건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리벳의 실험이 '뇌가 이미 결정을 내린다'라는 결론을 지었을 때, 불교는 오히려 그 결정을 관찰하는 마음에 주목합니다. 그 마음이 바로 자유의 주체이며, 자유란 행위의 주도권이 아니라 인식의 깊이에 있다고 보는 것이죠.
비슷한 맥락에서,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은 자유의지의 또 다른 측면, 즉 믿음과 의심의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종구는 믿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순간마다 자신의 가족을 파멸로 몰고 가죠. 과연 믿음은 자유의지의 산물일까요, 아니면 운명의 도구일까요? ⟨곡성⟩은 끝내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대신 인간의 선택이 불러오는 파국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비극으로 묘사합니다. 어쩌면 자유의지란 결국, 후회와 고통을 감내할 의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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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벳의 실험은 인간의 자유를 해체한 듯 보였지만, 오히려 인간의 본질을 더 뚜렷하게 드러냈습니다. 뇌가 신호를 보낼 수는 있어도, 그 신호의 의미를 결정하는 건 인간의 ‘의식’이기 때문이죠. 결국 자유의지란 '원인 없는 행위'가 아니라, 주어진 원인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신경과학으로 측정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 다시 말해 윤리, 사랑, 책임, 그리고 깨달음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원인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원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지는 선택할 수 있어요. 따라서 자유의지는 존재의 전제라기보다, 해석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뇌의 신호를 따르는 존재이지만, 그 신호를 해석하고 윤리를 부여하는 순간, 그 행위 자체가 곧 인간의 자유가 됩니다. 즉, 자유란 뇌의 신호를 초월하는 해석의 의식, 그리고 그 해석을 계속해서 갱신하는 의지인 거겠죠. 결정된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의미를 만들어갑니다. 그 의미가 곧, 우리가 잃지 않은 자유의 형식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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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Zoe>의 코멘트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다 이루어질지니⟩ 속 주인공 기가영 역시 인간의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가영은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충동에 따라 행동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배웁니다. 그 이유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사이코패스의 특징이지만, 수많은 시행착오와 학습을 통해 결국 가영은 '사회화된 사이코패스'가 되죠.
선택의 기로에서 가장 '인간적인' 선택을 내리는 가영을 보면서, 결국 수많은 작품을 통해 우리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한 가지로 귀결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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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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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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