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이라는 이름의 함정 안녕하세요, 에디터 하은입니다.
다들 새해는 잘 맞이하셨나요?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무겁고 아팠던 2024년을 지나 2025년을 맞이했습니다. 올해는 모든 분들의 일상이 무탈하고 따뜻한 순간으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얼마 전, 지난해 어거스트에 제가 기고했던 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여러 주제를 다뤘지만 글 곳곳에 공통된 소주제가 스며들어 있더라고요. 멀티태스킹, 선택을 망설이는 넷플릭스 증후군, 영상을 빨리감기로 보는 현상,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가속 노화까지— 바로 ’시간’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었는데, 되돌아보니 저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하고 싶은 건 많고, 맡은 일도 척척 잘 해내고 싶거든요.
요즘 저는 새벽에 퇴근하는 날이 잦고 주말에도 일을 하며 꽤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에 대해 고심하다가 ‘효율적으로 일한다는 건 뭘까? 결과물을 내기 위한 시간을 줄이면 그게 효율적인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언제부터 이토록 삶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는지도 궁금해졌고요.
그래서 오늘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해 온 효율성의 의미와 기업이 바라보는 효율성,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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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라진 시대, 달라진 효율성
2. 기업이 효율을 높이는 전략, '인재 밀도'
3. 번아웃을 부르는 효율성의 함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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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에서 ‘효율’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효율이 10배 오르는 OO”, “120%의 효율을 만드는 OO” 같은 제목의 책들이 끝없이 등장합니다. 이런 제목들을 보고 있자니 효율적으로 살지 않으면 마치 손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효율 중심의 사고방식은 산업혁명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기계화가 시작됐고, 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컨베이어 벨트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3차 산업혁명에서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정보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죠. 1, 2차 산업혁명 시기의 효율성은 단순명료한 개념이었습니다. 자동차 생산을 예로 들면 부품 조립 순서부터 필요 인력, 공정시간까지 모든 과정이 표준화되어 있었습니다. 즉,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요소를 수치로 측정할 수 있다는 말이죠. 목표 역시 ‘하루 생산량 100대’와 같이 숫자로 명확히 설정할 수 있고요. 당시 효율성은 곧 생산성을 의미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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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포드의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헨리포드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하고, 노동의 효율을 중시했던 인물입니다. © 테크월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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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생산직 노동자가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지식 노동자가 주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는 흔히 지식 사회(knowledge society)라고 불리기도 하죠.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1950년대에 이 개념을 처음 제시하며 ‘경제의 중심이 산업 사회에서 지식 사회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또한, 한 저서에서 ‘미래의 핵심 자원은 지식이고, 지식 근로자가 가장 지배적인 노동 계층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지식이 중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효율성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효율'은 투입한 리소스 대비 산출물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공식이 단순하게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문제 해결력, 데이터 활용 능력, 혁신적인 아이디어 등 무형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한 명이 하루 만에 낸 10개의 아이디어보다 세 명이 사흘 동안 고민해 낸 단 하나의 아이디어가 더욱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할 수 있고요.
과거에는 더 많은 노동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면 더 나은 결과물이 보장됐지만, 지식 사회에서는 더 많은 리소스를 투입한다고 반드시 더 나은 결과물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식 노동자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기본 업무 시간 외에도 자기계발이나 연장 근무 등 개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죠. 이처럼 투입하는 리소스의 범위가 넓고 모호해지면서 효율성을 측정하기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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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이 효율을 높이는 전략, '인재 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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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식사회의 기업은 어떨까요? 기업의 효율성은 구성원 개개인의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최소 인원으로 최대 성과를 내는 것은 기업 효율성 측면 중 하나이죠. 즉,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고, 얼마나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게 평가됩니다.
기업 입장에서 이러한 전략은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인력이 1명 늘어나면 단순히 인건비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관리·커뮤니케이션·조직 문화 유지를 위해 여러 부수적인 비용이 함께 증가합니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 달리 해고가 자유롭지 않다는 구조적 특성이 있어서 인력 감축이 필요할 때 제약이 따르기도 하고요.
이러한 환경에서 IT 업계, 특히 스타트업은 '인재 밀도(Talent Density)'를 높이는 전략을 택하기도 합니다. 넷플릭스의 성공 철학을 담은 책 ⟪규칙없음⟫에서 인재밀도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는데요. 몇 년 전, 스타트업 업계에선 이 책이 한창 유행했습니다. 건너 듣기로는 입사 시 필독서로 지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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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2001년 닷컴 버블 위기로 경영난을 겪으며 120명의 직원 중 40명을 정리 해고했습니다. 그러나 남은 직원들은 더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했고, 사내 분위기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이는 성과로도 입증되었는데요. 2002년 1억 5000만 달러였던 매출은 7년 만에 17억 달러로 10배 이상 증가했으며, 유료 회원 수는 76만 명에서 10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인재 밀도를 통한 업무 효율을 체감하고, 창의성이 중요한 직군에서는 높은 인재 밀도를 유지하는 전략을 이어갔습니다.
평범한 직원 10명을 채용하는 대신, 같은 비용으로 업계 최고 수준의 '베스트 플레이어' 1명을 영입하는 거죠. 입사 후에도 인재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6개월마다 '키퍼 테스트(Keeper Test)'를 진행합니다. 만약 팀원이 내일 당장 퇴사 의사를 밝힌다면, 매니저는 이를 만류할지 혹은 사직서를 수리할지 생각해보는 겁니다. 후자라면 개선방법을 논의하되, 나아지지 않는 경우 퇴직금을 지급하고 새로운 베스트 플레이어를 물색합니다.
넷플릭스가 말하는 '규칙없음'은 뛰어난 인재들로 구성된 조직에 걸맞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베스트 플레이어'에겐 굳이 엄격한 규칙과 잣대를 적용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규칙이 방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뛰어난 인재에겐 최고의 직장일 수 있지만, 높은 보상과 자율성의 이면에는 개개인이 N명의 몫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함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래 이미지는 국민대학교 김성준 교수님이 2020년에 Glassdoor(잡플래닛과 유사한 미국 서비스)에 평가된 데이터를 크롤링하여 분석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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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전·현직 구성원들이 "fear", "culture of fear"라는 단어를 언급하였고, 이는 전체 응답에서 약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적지 않은 수치이죠. 이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실존한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최고의 성과를 보장하기 위한 효율적인 구조이지만, 구성원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환경으로 느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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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만큼의 업무 강도는 아니더라도, 직장인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 효율성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의 기자였던 올리버 버크먼은 저서 ⟪4000주⟫에서 '효율성의 덫'에 대해 경고합니다. 효율성이 개인에게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바쁘게 돌아가는 삶과 번아웃을 초래한다고 주장합니다.
"꽤 그럴듯해 보이는 효율성을 높이는 삶은 더 빨리 돌아가는 삶을 보장할 것이고, 업무를 빨리 처리할수록 그 자리엔 더 많은 업무가 쌓이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메일을 예시로 듭니다. 이메일을 받는 것은 끝없이 쏟아지는 '인풋'입니다. 반면, 그 이메일을 읽고 회신하거나 불필요한 메일을 삭제하는 '아웃풋'은 한계가 있죠. 여기서 문제는 회신을 빨리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이메일이 돌아온다는 점입니다. 즉, 빠르게 처리할수록 더 많은 일이 쌓이는 ‘효율성의 함정(Efficiency Trap)’에 빠지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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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의 함정에 빠지면 무한한 일의 쳇바퀴를 돌게 되고, 결국 번아웃으로 이어집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증상이죠. 번아웃이 질병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국제질병분류(ICD-11)에서 번아웃을 직업 관련 증상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번아웃이 직업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건강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유럽 국가 중 이탈리아와 라트비아는 번아웃을 직업병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산업재해보험국립연구소(INAIL)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 사이에 보고된 총 1,555건 중 128건이 번아웃으로 인정됐다고 합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번아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제도적 보호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부터 2021년 사이 과로로 사망한 노동자가 2503명에 달합니다. 매년 약 500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는 의미입니다. IT업계에서는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일정 기간 강도 높은 야근과 철야 근무를 이어가는 '크런치 모드'가 노동자 건강권을 위협한다는 우려도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업무 강도를 노동자 개인이 조율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IT 업계뿐일까요? 대다수의 노동자는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죠. CJ 대한통운은 며칠 전 1월 5일부터 주 7일 배송을 시작했고, 시작 첫날부터 택배 기사들 사이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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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업과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제도적 보호와 시스템 개선, 그리고 노동 환경의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리 흘러가고 있죠. 사회가 발전할수록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 강도는 오히려 높아만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이 가끔은 너무 팍팍하게 느껴집니다. 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말이죠. 최근 읽었던 글의 한 구절을 공유하며 오늘의 레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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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하은>의 코멘트
최근 디즈니+ 구독을 다시 시작했는데요. 벌써 두 번이나 볼 정도로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입니다. 요즘 조명가게 때문에 디즈니+ 많이 구독하시던데 '인사이드 아웃 드림 프로덕션'도 추천해 드려요. 츄라이 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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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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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하은 • 움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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