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한국말’이 재밌지 않은 이유
나나 "이번 감기는 유독 독했어요. 안 걸리는 게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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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나나입니다.
최근에 저는 프랑스 여행을 다녀오기 전, 듀오링고를 통해 프랑스어를 공부했었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언어를 많이 공부하는지 궁금해서 알아보니 2023년에 한국어가 듀오링고 학습자 수 순위에서 6위를 차지했다고 하더라고요. 기사에 따르면 2년 전 조사에서는 한국어 학습자 수가 906만 명이었다고 하는데, 올해에는 1,770만 명으로 무려 95%의 증가율을 보였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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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Duolingo Language Report © Duolin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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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우리가 접하는 많은 콘텐츠에서도 한국어로 말하는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죠. 특히 TV 예능이나 유튜브 콘텐츠에서 한국어로 말하는 외국인 크리에이터들이 많이 사랑받고요. 오늘 레터는 평소 미디어에서 접하게 되는 ‘한국말 하는 외국인’과 이들을 보는 시선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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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팬덤의 언어가 된 한국어 2. ‘팜국어’는 귀엽지 않다 3.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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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럽의 대학에 있는 지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현지 한국어과 학생들의 연구를 돕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최근 해외에서 한류가 유행한 시기를 기점으로 여러 해외 대학에 한국어 전공이 생기고 한국어 학습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는 종종 봤지만, 이렇게 체감하게 되니 새롭더라고요.
국제적으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교과목으로 채택한 학교는 2023년 기준 47개국 2,154개라고 알려져 있어요. 이는 7년 전 수치(2016년, 27개국 1,309개)에 비하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2025년부터는 홍콩 대입 시험의 제2외국어 영역에 한국어 과목이 신설될 예정이라고 하고요. 한국어능력시험(TOPIK)의 응시자 수 또한 매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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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른 언어에 비하면 여전히 한국어 학습자의 전 세계적 비중은 높다고 보기 어려워요. 하지만 저에게는 그 추세가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어 학습의 인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되는 주요인은 역시 한류인데요.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학당재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유학(25.1%)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23.5)이 한국어 학습의 주된 목적으로 드러났어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언어학을 가르치는 조지은 교수는 한국 문화, 즉 한류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지금의 현상을 두고 ‘Fandom Language Learning’이라고 지칭했어요(동명의 서적도 발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BTS, 블랙핑크, 뉴진스와 같은 케이팝 아티스트들과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촉발된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이 한국어에 대한 관심까지 이어졌다는 것인데요. 관련해 일본 NHK에서 발행하는 한국어 교재의 내용이 이슈가 되기도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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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2021년에는 '언니, 대박, 먹방'과 같은 한류 관련 단어들이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케이팝 팬덤 내에서 한국어가 활용되는 모습을 보면, 서브컬쳐씬에서 일본어가 소위 ‘오타쿠 라틴어’라고 불리며 일본 국적이 아닌 사람들끼리 일본어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게다가 최근 SM, 하이브와 같은 엔터 회사들 주변에 관광객들이 부쩍 많이 늘어난 것을 보면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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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인즉슨, 우리는 유창하지 않은 한국어를 접할 일이 전보다 많아졌다는 겁니다. 케이팝 팬덤뿐 아니라, 아이돌 그룹에서도 외국인 멤버 비중이 늘어나고 또 이들이 아이돌 활동을 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우는 모습이 당연해졌어요. 그중에서도 최근에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지난 10월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뉴진스의 하니입니다.
베트남계 호주인인 하니는 국정감사에서 통역 없이 한국어로 본인이 겪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해 발언했습니다. 엔터 업계 종사자의 처우와 아이돌의 근로자성이 관련한 쟁점이었습니다만, 하니는 ‘서로 인간으로 존중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겼죠.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남긴 이벤트였지만, 제가 신경이 쓰였던 것은 그녀의 ‘브로큰 코리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하니의 한국어는 ‘팜국어’라며 팬들 사이에서 여러 유행어를 만들어 냈어요. 심지어 ‘팜국어 모음집’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요. 하니가 서툴게 말하는 한국어가 귀엽게 느껴진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팬의 눈에는 어떤 모습이든 사랑스럽게 느껴질 수 있죠. 하지만 그 억양과 틀린 맞춤법에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결국 하니의 언어를 대상화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최근 논란의 중심이었던 SNL의 문제점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하니의 국정감사 발언을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는 모습은 ‘실패한 패러디’ 그 자체였죠. 국정감사에서 발언을 마치며 하니는 ‘다음부터는 한국어를 더 많이 공부해 오겠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발화자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서투른 억양만이 개그 소재로 재생산될 뿐이었습니다. 결국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하니의 언어가 타자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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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무한도전 광복절 특집의 일부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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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은 유독 한국에서 콘텐츠 소재로 자주 활용됩니다. JTBC 《비정상회담》의 성공 이후로 등장한 많은 프로그램이 한국어를 잘하거나 한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철저히 외국인으로 라벨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전히 미디어에서 한국인처럼 말하는 외국인은 웃음을 주는 신기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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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퀴즈온더블럭》의 재한 외국인 인터뷰를 보면서도, MC의 뉘앙스가 이들로부터 ‘신기함’을 계속 끌어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10년 전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던 관점 그대로, 여전히 비슷한 인식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개인이 일상에서 한국어 실력이 좋은 외국인을 만났을 때 반가움을 느끼는 것과, 미디어에서 외국인을 표현할 때 필요한 존중은 완전히 다른 문제인 데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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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와 팬덤 속의 한국어에 대해 오늘 레터를 시작했지만, 90년대 이후로 한국어의 주요 수요층에는 유학생과 결혼 이민자, 이주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20년 전, KBS의 《폭소클럽》에서 스리랑카 출신의 이주 노동자 캐릭터 ‘블랑카’가 등장했죠. 그의 유행어 ‘사장님 나빠요’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요.
‘블랑카’를 연기한 코미디언 정철규 씨는 3년간 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들 일하며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해요.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대부분 개그로 승화되기는 했으나, ‘블랑카’가 당하는 차별에 대해서는 실제로 그와 함께 지내던 외국인 근로자들이 당한 일들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 외국인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 운영된 '고용허가제(EPS, Employment Permit System)'의 영향이 큽니다. 고용허가제는 한국인의 일손이 부족한 분야에서 합법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제도인데요. 최근 JTBC에서 방영된 《극한투어》의 스리랑카 편에서는 ‘한국어 능력자’ 스리랑카인들이 등장해 패널들이 놀라워하는 모습이 담겼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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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해 스리랑카에서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고용허가제 시험을 응시한 인원이 총 8만 5천 명이었다고 해요. 2022년 5월 스리랑카의 국가부도 사태의 여파 한국에서 일하려는 인력은 더더욱 몰리는 상태이고요. 이들의 한국어가 보는 사람은 신기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생각하면 재미를 느끼기는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반대의 상황이 미디어에서 표현된 내용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보다가 문득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떠올랐어요. 배우 이세영과 사카구치 켄타로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홍’은 타지인 일본에서 일본인 연인 ‘준고’를 만나 함께 지냅니다. 하지만 외로운 시간이 계속되고, 결국 울분 섞인 진심이 상대방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어로 터져 나오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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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도, 누군가는 이런 일을 직접 겪고 있을 거예요. 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다른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며 고군분투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현재 상황을 보면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이 ‘익숙한 존재’가 되기까지는 아무래도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도 이들은 이 사회에 함께 존재하고 있고, 그래서 ‘재미 요소’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한국어의 인기가 연일 이슈가 되자, 일각에서는 한국어를 알아듣는 외국인이 늘었으니 해외에서는 말조심을 하자는 의견도 종종 보이는 요즘인데요. 사실 이 모든 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늘었다고, 알아듣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그 존중의 중요성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타인의 언어를 그 완성도로 따지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말하고자 하는 진심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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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나나>의 코멘트
데이빗 보위와 류이치 사카모토, 기타노 타케시 주연의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이름만 들어도 놀라운 캐스팅에 더불어, 류이치 사카모토의 대표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로도 유명한 이 영화가 41년만에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국내에 개봉합니다. 저도 노래로 처음 접하고 궁금해진 영화인데, 극장에서 볼 기회가 생기게 되어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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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하은• 움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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