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단두대(Digitine), 그리고 소셜 미디어 안녕하세요, 에디터 나나입니다. 여러분 5월 한 달은 잘 보내셨나요? 저는 이번 레터 마감과 컨퍼런스 일정이 겹쳐서 아주 바쁜 5월을 보냈어요.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더니, 장미의 꽃말은 컨퍼런스인가 봅니다. 각종 행사가 다 5월 ~ 6월에 몰려있잖아요.
오늘 레터에서 다루려고 하는 ‘멧 갈라(Met Gala)’또한 매년 5월 첫째 주 월요일에 열리는 이벤트인데요. 보그(VOGUE)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주최해 온 이 행사는 셀러브리티들의 화려한 패션으로 매번 주목받는 패션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멧 갈라는 누가 초청받았는지, 드레스코드는 무엇인지, 그리고 누가 가장 주제에 걸맞으면서 독창적으로 잘 입었는지 관심이 쏠리는 행사기도 해요. (올해 드레스코드는 ‘시간의 정원’이었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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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지털 단두대(Digitine)를 아시나요 2. 캔슬컬쳐, 혹은 마녀사냥 3. ‘행동’을 요구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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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단두대(Digitine)를 아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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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올해 멧 갈라가 열렸던 5월 6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근처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시위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시위대 인원들이 체포되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날 가자 지구에 대한 공습 계획이 알려졌는데요. 멧 갈라에 참석한 인플루언서 ‘헤일리 칼릴’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Let them eat cake)’라고 립싱크하는 영상을 업로드하며 크게 반감을 사고 말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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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한 틱톡 유저가 셀러브리티들이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며 디지털 단두대(Digital + Guillotine) 운동을 제안했어요. 지속되고 있는 전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셀러브리티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이들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 목표인 것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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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디지털 단두대’ 리스트에 들어가게 되면 특정 셀러브리티의 소셜 채널 계정을 모두 언팔로우 또는 차단하거나, 브랜드의 물품을 불매하는 등의 행동이 수반되는데요. 결국 이슈의 시발점이 된 헤일리 칼릴은 이 영상으로 인해, 팔로워가 1,000만 명에서 990만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헤일리 칼릴은 뒤늦게 자신이 올린 영상에 대해 해명하고, 그럴 의도가 없었음을 밝혔지만 이미 사람들은 떠나간 이후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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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캔슬 컬쳐(Cancel Culture)’의 연장선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캔슬 컬쳐가 처음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을 때는, 차별이나 혐오 발언을 이미 저질렀을 때가 조건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단두대’는 단순히 어떤 사회적 집단을 차별하거나 혐오해서 그 리스트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할 능력이 있는데도 행동하지 않은 것’이 골자입니다.
이 지점에서 ‘디지털 단두대’가 마녀사냥에서 비롯된 캔슬 컬쳐냐, 아니면 디지털 시대에서 새롭게 형성된 ‘액티비즘’이냐에 대한 논쟁이 생겨납니다. 개인적으로 원래 취지는 후자에 가깝고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글쎄요. 유명인에 대한 심판은 대체로 그 징벌적 액션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행동하지 않은 자’에 대한 심판을 긍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듭니다.
한편 이번 사건과 더불어 주목받은 또 다른 유명인이 있습니다. 바로 배우 케이트 블란쳇인데요. 지난 5월 20일 진행된 칸 영화제에서, 블란쳇이 영화 ⟪the Apprentice⟫의 시사회 레드카펫에서 입은 드레스가 이슈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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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하이더 아커만이 2023년 장 폴 고티에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위해 디자인한 이 드레스는, 얼핏 보면 핑크(사진에서는 레드카펫과의 대비효과로 인해 화이트로 보입니다)와 블랙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지만 사실 안감이 초록으로 대져 있었죠.
이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팔레스타인 국기를 연상시켰고, 공개적으로 레드카펫에서 팔레스타인이나 반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그녀의 ‘행동’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블란쳇은 따로 소셜 미디어를 하고 있지 않고, 해당 의상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 선언이라고 명시한 적은 없다고 해요)
사실 블란쳇은 이미 유엔난민기구 친선 대사로 활동하며, 지난 11월에는 유럽의회 연설을 통해 가자 지구 휴전을 촉구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그녀의 행동에 진정성과 연속성이 느껴졌고, 또 그 맥락 속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 행동’이 해석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녀가 해온 행동들과, 그녀의 용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면서도, 동시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비난받아야 하는가?’는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을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더라도, 수천만 원의 협찬을 받아 멧 갈라에 참석하고 동시에 사비로 가자지구 출신 난민들을 위해 기금을 조성하면 그 사람은 ‘단두대’에 서지 않을 자격이 있는 걸까요? 그 기준은 누가 정할 수 있을까요? 행동하지 않았다고 비난받고 나서, 사과문을 올리고 전쟁 반대를 위한 액션을 취하고 나면 그 사람은 다시 예전처럼 많은 팔로워들을 얻어도 되는 사람이 되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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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유명인에게 ‘하지 말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을 요구하게 된 지금의 상황은 결국 우리가 ‘액티비즘’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방향에서 쌍방향으로 미디어에 대한 소비 방식이 변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역으로 플랫폼과 유명인에게 ‘수익’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 기반으로 소셜 미디어에서 구독하고, 플랫폼은 이들의 ‘관심사’를 ‘타겟팅’하기 때문에 플랫폼의 승리로 보여 왔었죠. 하지만 플랫폼을 만든 것도 사람, 이용하는 것도 사람인지라 결국은 그 ‘알고리즘’도 역이용해 자신에게 맞게 활용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잖아요. (원하는 제품을 추천받기 위해 일부러 팔로우나, 콘텐츠 클릭을 조절하는 방식으로요)
그래서 원하지 않는 콘텐츠가 팔로우하고 있는 인플루언서 채널에 올라오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보이면 이를 감소시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기는 것도 당연합니다. 내 몫의 ‘노출’과 ‘도달’을 대가로 상대방이 ‘수익’을 얻고 있으니, 구독은 즉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로 인식되는 것 같아요.
여기서 마케팅의 대가 필립 코틀러가 제시한 개념인 ‘브랜드 액티비즘’이 떠오릅니다. 브랜드 또한 민감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브랜드의 목소리를 내도록 요구받는 상황이고, 앞으로는 그런 브랜드들이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에서요.
셀러브리티 또한, 브랜드나 제품처럼 ‘내가 소비하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보여요. 이렇게나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데, 이번 ‘디지털 단두대’ 같은 상황이 생기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흐름입니다. (브랜드나 제품과 달리, ‘실제 사람’이라는 문제가 있고 그래서 디지털 단두대가 사이버 불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일부 동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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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4일, 하버드대학교 졸업식 중 가자 전쟁 반대를 이유로 수백 명의 학생이 집단 퇴장했다고 합니다. 전쟁 반대 시위가 처음 시작된 뉴욕 컬럼비아대학은 아예 경찰병력이 투입되었고, 15일 예정이었던 졸업식도 취소가 되었다고 하고요.
여기까지 보면 미국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그러니, 유명인들이 이에 대해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반감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모든 문제에는 배경과 맥락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디지털 단두대’가 아직 현재 진행형이기는 하지만, ‘디지털 액티비즘’의 한 갈래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캔슬 컬쳐’의 아류가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전쟁 반대를 이유로 졸업식을 포기하고, 인터넷에 얼굴을 공개하며 유명인들에게 행동을 요구하는 이들이 유별나보이고, 세상에 겁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것, 보이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 않는 것, 전 지구적 이슈를 외면하는 것은 확실히 요즘 세대의 문법은 아닌 것 같아요. 똑같이 행동할 의무는 없더라도, 눈을 돌려서는 안되는 문제들이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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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나>의 코멘트
배우 카미유 코탱의 제77회 칸 영화제 개막 연설입니다. 자신의 의견을 쉽게 표출하기 어려운 시대에,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네요. 괜히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되는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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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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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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