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되고 싶지 않은 마음
하은 "요즘 저는 ‘커피프린스 1호점’을 처음 보고 있습니다. 그 시절 감성과 연출이 너무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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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하은 입니다.
요즘 유튜브에 ‘드라마’, ‘영화’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드라마 몰아보기’, ‘영화리뷰 결말포함’같은 자동 완성 검색어가 제일 먼저 보입니다. 게다가 검색 결과를 살펴보면 조회수 100만 회, 심지어 인기 있는 영상은 조회수 1,000만 회가 넘습니다. 요즘은 영상을 온전히 감상하기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엿보이는 것 같아요.
오늘은 '우리가 요약 영상을 보거나 빨리 감기 기능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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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58분을 40분으로 단축하는 방법이 있다?
2.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3. 시성비를 따져가면서까지 영상을 보는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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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8분을 40분으로 단축하는 방법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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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비디오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기억하시나요? 흡입력 있는 내레이션과 속도감 있는 전개로 영화를 소개하는 MBC 예능의 고전이죠. 올해로 방영 31주년을 맞이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엔 영화 줄거리를 요약해 주는 유튜버가 많잖아요. 생각해 보면 ‘출발! 비디오 여행’이 그 원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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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프로그램 제목인 ‘비디오’라는 단어도 멀게 느껴지는 시대가 도래했네요 ©경향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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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의 조사에 따르면, 성인 남녀 1,000명 중 49.7%가 유튜브나 OTT를 볼 때 요약 영상을 자주 시청한다고 답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주된 시청 플랫폼은 달라졌지만, 드라마와 영화 요약 영상의 인기는 여전합니다.
다만 차이점을 하나 짚어보자면, '출발! 비디오 여행'은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흥미를 유발할 정도로만 소개해 직접 영화를 감상하도록 권장하죠. 반면, 유튜브에 올라오는 요약 영상은 결말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결말이 포함된 영상은 제목에 [결말포함]이라고 친절히 표시도 되어있습니다. 사실, ‘영화·드라마 리뷰’라는 제목이 달린 영상들을 살펴보면,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을 담은 ‘리뷰’라기보다 대부분 ‘패스트 무비’에 가깝습니다. ‘패스트 무비’란 드라마나 영화를 짧게 요약한 영상으로, 단순히 영상 길이를 줄이는 것을 넘어서 자막이나 내레이션을 통해 편집자 개인의 관점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2~3시간가량의 영화도 요약본으로 보는데 드라마는 오죽할까요. 영화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잖아요. 16부작 드라마를 정주행하려면 대략 16시간이 필요한데, 그만한 시간을 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요약 영상의 분량이 대체로 영화보다 길기도 하고요. 이럴 때 쓰는 치트키가 바로 빨리 감기 기능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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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자체 조사에 따르면, 85% 이상의 사용자가 빨리 감기를 사용합니다. 기본 속도를 제외하고, 사용 빈도는 1.5배속, 2배속, 1.25배속 순으로 높았습니다. 심지어 4배속을 요청하는 의견도 있었다고 하네요.
극단적인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SBS 16부작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총 러닝타임은 958분이며, SBS 공식 유튜브 계정인 ‘빽드’의 ‘스토브리그’ 요약 영상은 60분입니다. 만약 이 영상을 1.5배속으로 본다면 어떨까요? 958분을 40분으로 단축하는 엄청난 효율을 경험할 수 있는 셈입니다. 물론, 단순 숫자로만 비교한다면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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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요약 영상을 보거나 빨리 감기 기능을 자주 사용할까요? 일본의 칼럼니스트 이나다 도요시는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에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봐야 할 작품이 너무 많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영상 작품을, 가장 값싸게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에 지상파 TV, 기타 방송 미디어, 유튜브를 비롯한 무료 영상까지 더하면 작품 수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분명한 공급 과잉이다.”
결정에 관해 다뤘던 이전 레터에서도 OTT의 보편화로 콘텐츠가 쏟아지고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무엇을 볼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정작 영상을 시청할 시간은 부족해졌습니다.
체감되는 영상 콘텐츠의 가치도 낮아졌습니다. 매월 OTT 구독료를 내지만, 평소에는 돈을 내고 영상을 보고 있다는 인식이 무뎌집니다. 개별 영상마다 돈을 내지 않으니까요.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돈을 내야 본전을 뽑고 싶은 마음도 들고 그 소중함을 느끼기 마련이잖아요. 공급은 넘치는 반면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인식이 약해지면서, 더 이상 한 편의 영상에 온전한 집중력과 시간을 쏟지 않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영화관에서는 어떤가요? 빨리 감기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집중을 방해하는 ‘관크 빌런’이라도 겪게 되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죠. 장면을 놓치면 10초 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 편의’ 영화 관람을 위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요즘 영화 티켓값도 비싼데 최소한 손해는 보면 안 되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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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성비(時性比)’라는 신조어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시간 대비 성능’을 뜻하는 단어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생활 방식을 의미합니다. 현대인이 시성비를 추구하면서 나타난 큰 특징은 실패 가능성을 극도로 피한다는 점인데요, 앞서 소개해 드린 책에서도 관련 내용을 언급합니다.
"가성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빨리 감기, 10초 건너뛰기로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시간 가성비’다.”
“그들은 재미없는 작품 때문에 시간 낭비하는 일을 피하고 싶어 한다.[...] 가급적 힘을 덜 들이고 돌아가는 길을 피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빨리 감기로 영상을 시청하는 동기와 뿌리를 같이 하는 맥락이다.”
시간은 과거나 현재를 막론하고 언제나 중요한 자원입니다. 시간에 관한 명언도 많죠. ⟪트렌트 코리아 2024⟫에서는 시간의 가성비를 설명하며 “소유 경제에서 경험 경제로 이행하면서 요즘 사람들은 볼 것, 할 것, 즐길 것이 너무 많아졌다.“ 라고 말합니다.
시성비를 따질 만큼 유독 현대 사회에서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뭘까요? 한정된 시간을 투자 할 선택지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많은 선택지가 모두 좋을 거라는 보장은 없죠. 한정된 시간을 아까운 선택에 낭비하지 않으려면 불확실성을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보려는 영상이 재밌있을지 확신을 얻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요약 영상을 보거나 빨리 감기 기능을 사용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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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서 시간이 부족하면 영상을 안 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영상을 보는 걸까요? ‘내용이 궁금하지만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단순히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정의했습니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동시에 사회 속에서도 존재합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이나 학교에서 보냅니다. 좋든 싫든 타인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가죠.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화가 중요합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일상적인 대화가 자연스럽게 협업으로 이어져 창의성, 혁신, 성과를 향상시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관심사나 경험을 공유하며 친밀감을 형성하기도 하죠. 이러한 ‘스몰톡’의 단골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최신 인기 콘텐츠입니다. 최신 드라마·영화·숏폼·음식 등의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소재가 되어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인기 콘텐츠를 알면 대화에 쉽게 참여할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수월합니다. 반대로, 혼자만 모르면 자연스럽게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겠죠. 이를 ‘FOMO(Fear Of Missing Out)’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재미있거나 유익한 일에서 나만 소외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요약본이나 빨리 감기 기능을 사용해서라도 영상을 보게 되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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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이런 불안함을 느끼신 적이 있나요? 이 현상은 꼭 영상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특히 SNS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감정이죠. 남들이 무엇을 하고, 어디에 가는지 시시콜콜 알게 되면서 나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과 뒤쳐지는 것 같은 불안함을 느끼기도 하죠. 이러한 이유로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올해 초부터 지인들과 팔로우 되어 있는 인스타그램 본 계정은 거의 들어가지 않고, 부계정을 만들어서 정보성 게시글을 보는 용도로만 사용 중인데요, 처음엔 지인들 소식을 모르게 된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안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고 하루에도 여러 번 들어가기도 했고요. 그런데 점차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마음은 편해졌습니다. 이와 관련된 개념을 ‘JOMO(Joy Of Missing Out)’라고 하는데, ‘FOMO’의 반대로 자신이 놓치는 일이나 소외되는 것에 별로 불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마음입니다.
제가 작게나마 몇 개월 동안 경험해 본 후기는 소외되어도 생각보다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소외되는 부분은 확실히 있습니다. 친구들과 만나면 인스타그램에 올린 내용들은 당연히 봤을 거라는 전제로 나오는 대화 주제들이 있거든요. 그럴 땐 그냥 ‘난 못 봤는데, 그건 무슨 내용이야?’라고 물어보면 되더라고요. FOMO든 JOMO든 개념적인 측면을 다 떠나서, 내가 보고 싶으면 보고 너무 피로하다 싶으면 잠시 쉴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정신적 피로와 불안함의 일부는 스스로 조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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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하은>의 코멘트
'출발! 비디오 여행'의 MC '김경식'님이 영화 소개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 다들 알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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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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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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