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그리고 뉴진스라는 브랜드 안녕하세요, 에디터 나나입니다.
구독자 여러분은 주말에 어떤 콘텐츠를 즐겨 보는 편이신가요? 저는 평소에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영화나 드라마, 만화를 챙겨서 보는 편인데요. 지난 주말에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봤습니다. 2023년에 개봉한 작품인데, 감독 특유의 미감과 ‘연출’에 대한 애착이 매우 크게 느껴졌어요.
이 감독의 영화 출연진은 언제나 ‘웨스 앤더슨 사단’ 위주로 꾸려지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이번 영화의 메인 서사를 맡은 배우 ‘제이슨 슈워츠먼’의 연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슈워츠먼은 앤더슨 감독의 페르소나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98년에 앤더슨 감독의 영화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로 데뷔했다고 하니 말 다했네요.
그래서, 오늘 레터는 페르소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포함해) 최근 ‘페르소나’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일들이 여럿 있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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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르소나의 여러 세계 2. 뉴진스 = 민희진? 3. 그렇게 브랜딩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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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터를 읽는 분들께서는 평소에 ‘페르소나’라는 표현을 이미 알고, 자주 사용하고 계실 것 같아요. 페르소나(persona)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연극에 사용하는 가면에서 유래된 표현이라고 하죠. 분석심리학자 칼 융이 페르소나 이론으로 정립한 내용에 따르면 인간의 내면과 달리 개인이 주변 세계와 상호작용 하기 위해 활용하는 ‘매개체’로도 해석할 수 있고요. (칼 융은 사람이 보통 1,000개의 페르소나를 사용한다고 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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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개의 페르소나라니, 영화 ⟪변검⟫이 생각납니다.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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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보니, 고객 페르소나를 항상 생각하게 돼요. 마케팅에서의 페르소나는 간단히 말해 소비자를 어떤 가상의 인격으로 상상하는 것입니다. 잘 알려진 사례를 들자면, 룰루레몬은 연 소득 10만달러의, 32세 여성 오션(Ocean)이라는 페르소나를 설계했어요.
이렇게 설계된 ‘이상적인 고객’의 프로필을 바탕으로 제품의 방향성을 가져가고, 마케팅 캠페인도 이에 맞춰 진행됩니다. 고객에 대해 상상하지 않고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이렇게 페르소나를 설계하기까지는 기존 고객에 대한 아주 깊은 이해와 공감이 필요할 테지만요.
한편, 영화계에서의 페르소나는 주로 특정 감독의 애착 배우(?)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레터 서두에서 소개한 웨스 앤더슨과 그의 페르소나 제이슨 슈워츠먼(혹은 오웬 윌슨, 혹은 에드워드 노튼…)처럼요. 그 외에도 왕가위와 장국영, 봉준호와 송강호, 크리스토퍼 놀란과 킬리언 머피 등이 자주 언급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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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슈워츠먼이 연기한 어기 스타인벡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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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영화 감독에게 있어 배우가 ‘페르소나’로 소개되는 경우는 명확합니다. 감독이 표현하고 싶어 하는 내용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누군가를 말하죠. 그 배우는 이미 성공한 ‘명배우’일 수도 있지만, 특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모든 유명 배우가 페르소나가 되지는 않습니다. 감독의 ‘기획 의도’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주된 요소여야 하니까요.
또한 특정 감독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해당 배우가 떠오를 만큼, 서로를 믿고 오랜 시간 작업해 오는 ‘지속성’ 또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인물들은 대체로 영화배우를 지칭하게 되지만, 꼭 그렇게만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영화 음악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 시나리오에는 박찬욱과 정서경이라는 조합이 존재하는 것처럼요.
다만 배우는 ‘연기’로서 ‘캐릭터’를 보여주기 때문에, 마치 감독의 ‘가면’처럼 보이게 돼서 페르소나에 대한 원래의 정의와 맞아떨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페르소나’ 하면 배우와 감독을 떠올리게 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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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하이브-어도어 공방은 저에게 계속 ‘페르소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난 4월 26일 새로 공개된 뉴진스의 ‘How Sweet’ 티저는 여러 가지 의미로 주목을 받았어요. 티저 공개 전날인 4월 25일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이 엄청난 이목을 끌었죠. 기자회견은 뉴진스 컴백에 앞선 거대한 프로모션 이벤트가 되어버렸습니다. 4월 27일 자정에 공개된 신곡 뮤비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500만 조회수를 기록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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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는 뉴진스에 대한 응원의 댓글들이 가득합니다. 제 눈길을 끈 댓글들은 주로 기자회견을 언급한 내용들이었어요. 기자회견 이전에는 ‘완벽해 보이던’ 뉴진스의 이미지에 오히려 마음 아픈 ‘서사’가 생겨서 관심이 갔다는 반응들에 많이 놀랐습니다. 프로듀서가 보인 날 것의 모습들이 부정적인 인식이 되기는커녕,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감화했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그런데, 이번 티징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바로 티저 사진 속 뉴진스 멤버 민지의 착장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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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볼캡에 초록색 럭비 티를 입은 모습이 눈에 띕니다. (© 어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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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의 패션은 뉴진스 컴백 직전인 4월 25일 진행된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 착장에 빗대어졌습니다. 오죽하면 ‘회견 룩’ 이라는 표현까지 나왔을까요. 민 대표가 입은 티셔츠는 하루 만에 품절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일각에서는 뉴진스의 컴백을 고려해 일부러 맞춰 입고 나온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뉴진스는 민희진 대표의 페르소나인가? 라는 질문이 당연히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뉴진스 멤버 개개인으로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지만, ‘뉴진스’라는 그룹은 민 대표의 페르소나가 맞다고 생각해요. 뉴진스는 민 대표가 기획한 컨셉과 방향성을 흡수하고, 자신들의 색깔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치 앞서 말한 감독-배우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티저 컨셉에 맞춰서 민 대표가 기자회견 옷을 입고 나왔는지, 아니면 본인의 평소 취향에 따라 멤버에게 옷을 입혀 두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사람들의 기억에는 ‘민희진이 뉴진스에 진심이라는 사실’ 하나만 남으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그게 어떤 방향의, 어떤 깊이를 가진 진심이던 간에요.
뉴진스도 결국은 잘 만들어진 ‘브랜드’입니다. 브랜드에는 디렉터의 자아가 반영될 수밖에 없어요. 여기에는 디렉터의 취향, 가치관, 지향점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SM 시절의 민희진은 ‘희진 언니’였고, 지금은 ‘뉴진스의 엄마’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비판이 많았지만, 결국 사람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그 포지션을 납득해 버렸죠. 그래서인지 이번 티저에서는 더더욱 민희진이라는 ‘사람’이 더 뚜렷하게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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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던 뉴진스의 신곡 ‘Bubble Gum’은 뮤비와 컨셉 포토 공개를 통해, 이미 ‘여름 디토’로 불리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여름' + '디토'라는 표현이, 이번 컨셉 또한 잘 먹혀들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뉴진스’라는 그룹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신선함을 주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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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하이틴감성 자체가 트렌드가 되고 꽤 시간이 흘렀다 보니, 이제 슬슬 그 미감이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시점이었죠. 하지만 날이 더워지고, 여름이 다가오고, 뉴진스 멤버들은 또다시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그 ‘우리’는 현실의 ‘내’가 아니죠. 그들과 또래의, 함께 계절을 보내고, 비밀 이야기를 하고, 추억을 만드는 가상의 친구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니 뭔가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저는 뉴진스의 모든 컨셉이 정교하게 짜인 ‘고객 페르소나’로 연결 지어진다고 느꼈어요. 뉴진스를 브랜드로 치환했을 때, 그걸 보는 팬은 고객이 됩니다. 단순한 대치입니다만 그렇다고 크게 어긋나지도 않습니다. 잘 설계된 브랜드에는 컨셉이 있고, 그 이미지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타겟 고객층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이들과 소통합니다.
뉴진스가 주는 가치는 ‘노스탤지어’입니다. 동시에 과거에 머물러있지만도 않습니다. 스쿨 유니폼에 아크테릭스 백팩을 매치하고, 제주도 바닷가에서 나이키 코르테즈 스니커즈를 보여주는 등, 잘 재현된 ‘과거 이미지’에서 현재 가장 트렌디한 패션 아이템들을 보여주는 방식은 이질적이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제시합니다.
파워퍼프걸이 한창 TV에서 방영될 때(1998년~2005년) 태어난 세대가 파워퍼프걸의 이미지로 재탄생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작년 가을, 성수동에서 파워퍼프걸 팝업스토어를 할 때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파워퍼프걸이 뭐야?’라는 주변 방문객들의 대화에 놀랐어요. 뉴진스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이 애니메이션을 모를 가능성이 더 높고, 뉴진스 캐릭터로 기억할 수 있겠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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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저 컨셉을 반영한 뉴진스x파워퍼프걸 콜라보 이미지 (© 어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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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한 번의 이벤트성 콜라보에 그치지 않고, 스타일링이 바뀐 부분을 반영한 비주얼이 새로 나온 점도 치밀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 컨셉의 연속성이 충족됩니다) 실제로 ‘타겟’이 이 애니메이션을 잘 아는지도 상관이 없고요. 민희진은 알고 뉴진스 멤버 개인들은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서 나오는 새로움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이 시기를 민희진과 직접 경험했던 30대-40대에게도, 또 뉴진스가 실제로 또래인 10대-20대에게도 이 전략은 유효했습니다. 거기에 전국민적으로 컨셉을 공고히 할 기회까지 있었으니, 저에게는 이 모든 게 거대한 브랜드 캠페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뉴진스의 기획 배경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구현모 에디터의 레터를 읽어보세요. 👉'뉴진스는 ???의 승리다')
아직 앨범 발매가 되려면 한 달은 남았지만, 뉴진스는 ‘이번에도’ 승리할 것 같습니다. 위기를 기발한 방식으로 레버리지한 민희진 대표의 승리이기도 하고요. 자세한 법정 공방까지 모두가 이번처럼 관심을 가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좋든 싫든 이제 모두가 뉴진스의 컴백을 기억하게 된 게 우선이죠. 이후에는 멤버들의 퍼포먼스가 남았지만, 그걸 누가 걱정하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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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정서경 작가가 VOGUE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정 작가는 페르소나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 내 입장에서는 내 이야기가 영상으로 구현되는 것이 마냥 좋지만 감독님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쓰지 않은 이야기를 납득하고 소화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촬영을 마무리하기까지 말 못할 마음고생이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과정에서 내가 감독님의 자유와 진실을 너무 많이 빼앗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저는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고, 상대방이 나로 인해 내면의 어떤 점이 변할 수 있다는 점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해했어요. 창작자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자아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누군가는 그 자아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일방향이 아니라 꾸준한 인터랙션을 통해 이루어질 겁니다.
다른 사람과 페르소나를 공유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나의 ‘페르소나’가 된다는 것은 멋지고 설레는 일입니다. 하지만 페르소나 또한 결국은 진정한 자기 자신과 동일시될 수 없음을, 그리고 타인의 세계와 인격은 나와 별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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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나나>의 코멘트
제가 노래를 들으면서 우는 일은 잘 없는 사람인데요. 왜인지 올리비아 딘의 이 노래를 듣고 괜히 눈물이 났습니다. 지난 4월 중순, 코첼라 라이브 공연을 한 올리비아 딘의 영상을 오늘 콘텐츠로 추천해 봅니다. 따뜻한 햇살과 무대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의상, 그리고 행복한 얼굴로 함께 그루브를 타는 관객들의 모습이 어우러져 정말 멋진 무대가 완성되었어요.
내일은 벌써 5월이네요. 새로운 달의 시작을 설레면서도 따뜻하게 보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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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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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후니 • 찬비 • 식스틴 • 나나 • 오리진 • 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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