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지가 너무 많은 정보 과잉 시대 안녕하세요, 객원 에디터 하은입니다.
여러분은 결정을 잘 내리시는 편인가요? ‘오늘 점심 뭐 먹지’하는 소소한 결정들이요. 이직이나 결혼처럼 삶에 큰 변화를 불러오는 결정은 당연히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작은 결정에도 의외로 많은 고민이 따릅니다. 때로는 결정할 일이 너무 많게 느껴져서 피곤할 때도 있더라고요. 오늘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결정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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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택지가 많아도 너무 많아요
2. 결정이 어려운 건 사회현상일까
3. 결정을 도와주는 힉의 법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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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날씨가 많이 더워졌죠? 얼마 전 서울은 낮 최고 기온이 30도 가까이 오르기도 했답니다. 역대 가장 더운 4월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더라고요. 이렇게 바뀌는 계절이 체감될 때면 옷장 앞에서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더운 날씨에 입을 옷을 사기 위해 한동안 출근길 전철을 타면 쇼핑 앱들을 열심히 살펴봤는데요, 결국 전철을 내릴 때까지 마음에 드는 옷을 구매하지 못했습니다. 하루도 아니고 며칠 내내요. 보여주는 옷은 너무 많은데,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과 가격을 둘 다 갖춘 옷은 왜 이렇게 찾기가 힘든지··· 요즘은 쇼핑 앱에 들어가는 것조차 피로감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오프라인으로 쇼핑을 하자니 귀찮고요.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3년 유통업계 매출 중 온라인이 50.5%, 오프라인이 49.5%의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온라인 매출 비중이 오프라인을 넘어선 건 사상 최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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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온라인 쇼핑 너무 편하죠. 오늘 아침에 주문하면 밤에 도착하고, 신선식품을 주문해도 다음 날 새벽에 문 앞에 놓여 있는 모습이 점점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온라인 쇼핑이 정말 편하기만 할까요? 구매 이후의 배송 과정을 떼어보면 명백히 편리하지만, 정작 구매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프라인에 비해 온라인은 사실상 선택지가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옷 한 벌을 구매할 때도 수많은 브랜드를 검색하고 상세 페이지와 후기를 살펴본 뒤, 타 사이트와의 가격까지 비교하는 긴 여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관여 제품일수록 이 여정이 더욱 험난하죠. Statista의 올해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3년 온라인 쇼핑 장바구니 이탈률은 70.19%에 달합니다. 2013년 이후 처음으로 70%를 넘어섰다고 하네요. (여기서 말하는 이탈률은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은 후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은 비율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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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가 많아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할 때 넷플릭스를 빼놓으면 섭섭하죠. 몇 년 전, 넷플릭스 증후군(Netflix Syndrome)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넷플릭스 증후군이란 콘텐츠를 시청하는 시간보다 무엇을 볼 지 고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2018년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졸업생 대표 피트 데이비스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합니다.
“잠에 들기 전, 넷플릭스를 탐색하며 시청할 콘텐츠를 찾기 시작합니다. 리뷰도 몇 개 읽어봤지만, 여전히 어떤 영화를 볼 지 결정하지 못하고 결국 30분이 훌쩍 지납니다. 무한 스크롤에 갇혀 아무것도 시청하지 못한 채 손해를 감수하고 잠에 듭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세대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제한된 TV 채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정해진 시간대에 챙겨 보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은 OTT(Over-The-Top)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콘텐츠가 쏟아지다 보니, 무엇을 볼 지 고르는 행동 자체가 하나의 일이 된 셈이죠. 그냥 머리나 식힐 겸 재밌는 영상 하나 보고 싶을 뿐인데 요즘은 이조차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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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과학자 정재승 교수님이 결정에 관한 재미있는 사례를 들어주셨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걸까?’ 하는 고민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썸 탄다.’ 라는 표현이 새롭게 등장한 건 예전에 비해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표현하는 사람이 현저히 줄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이유로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지면서 고백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썸’이라는 모호한 관계가 늘어나고 있는 거죠. 이처럼 과거에 비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고민하는 사람들이 사회현상이라 불릴 만큼 흔해졌습니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해외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코로나 이후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급증했습니다. 미국심리학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 응답자 중 약 1/3이 무엇을 입을지·먹을지 등 기본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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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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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전에 비해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졌을까요? 그 이유는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 때문입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오히려 판단력이 흐려져, 선택지가 적을 때보다 안 좋은 결정을 내리거나 만족도가 낮아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하는 거죠.
이 개념을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사례로 컬럼비아 대학과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진이 진행한 잼 실험이 있습니다. 식품점에서 잼을 시식할 수 있도록 하고 실험 조건을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한쪽에는 24가지의 잼을, 다른 한쪽에는 6가지의 잼을 진열했습니다. 실험 결과, 24가지의 잼을 진열했을 때 시식한 고객이 더 많았지만, 6가지의 잼을 진열했을 때 실제 구매율이 10배 이상 높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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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선택의 폭이 넓으면 처음에는 흥미를 끌어 낼 수 있지만, 실제로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 결정하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된다는 겁니다.
요즘은 정보 과잉 시대라고 불릴 만큼 정보가 너무 많죠. 선택지의 수 자체도 많을뿐더러 고려해야 할 사항도 너무 많아서 결국 선택을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분석 마비(Analysis Paralysis)'라고 하는데, 실패 가능성을 피하고자 뇌가 선택을 포기하는 현상입니다.
또한, 선택지가 넘쳐나는 환경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회피하는 모습도 자주 보입니다. 우리가 밥 친구로 무한도전이나 하이킥을 자주 보는 이유는 뭘까요? 만약 새로운 콘텐츠를 열심히 찾았는데 재미가 없다면 그 시간이 버려지는 거잖아요. 실패하기 싫어서 재미가 보장된 고전 예능을 자주 찾게 되는 거죠.
정보뿐 아니라 재화와 서비스도 과잉의 시대입니다. ⟪큐레이션⟫의 저자 마이클 바스카는 이를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200년간 지속된 긴 호황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그동안 사회는 데이터·부채·먹거리 등을 막론하고 '더 많이' 생산하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과잉의 시대를 겪으며, 이제는 '덜어내는 것'이 가치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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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경험(UX) 설계에서 중요한 심리학 법칙 중 하나인 '힉의 법칙(Hick's Law)'을 살펴보겠습니다. 힉의 법칙은 선택지의 수와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시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면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집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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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방법은 선택지 수를 줄이는 것이겠지만, 당연히 좋은 해결책은 아닙니다. 힉의 법칙의 목적은 의사 결정 과정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단순화하는 데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를 시각적으로 강조하여 우선순위를 두거나, 사용자가 복잡한 선택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힉의 법칙은 선택지를 무작정 줄이기보다는 사용자가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UX 설계 원칙을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앱에서는 힉의 법칙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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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달의민족
배민 자체 리서치에 따르면, 사용자 중 52%는 메뉴는 정하고 가게는 정하지 않은 상태로 앱을 사용하고, 32%는 메뉴와 가게 모두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민 앱을 사용합니다. 즉, 사용자의 84%가 메뉴나 가게에 대한 탐색이 필요한 거죠.
이에 배민은 AI 기술을 활용하여 메뉴와 가게를 추천해 줍니다. 보통 주문을 하기 전에 리뷰를 참고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기존엔 사용자가 리뷰를 하나하나 읽었다면, 이제 AI가 리뷰를 분석하여 사용자에게 맞는 메뉴와 가게를 추천해 줍니다. 단순히 맛에 관한 내용뿐 아니라, 음식을 먹는 상황이나 함께 먹는 사람 등의 맥락적 정보까지 함께 분석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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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퇴근길 메뉴’, ‘매콤한 메뉴’와 같이 특정 상황이나 원하는 맛을 검색해도 적합한 메뉴를 추천해 줍니다. 검색 경험이 단순 키워드 중심에서 개인화된 맥락 검색으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죠. 최근 대규모 언어 모델(LLM) 서비스가 점차 상용화되면서 이러한 변화가 가능해졌는데, 앞으로 사용자가 익숙해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근에 도입된 이 기능이 궁금하신 분은 해당 링크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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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포티파이
선택지가 많은 서비스를 생각해 보면 음악 앱을 빼놓을 수 없죠. 하루에도 새로운 곡이 수십 곡, 많게는 수백 곡이 발매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음악 앱을 사용하시나요? Statista의 올해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기준 전 세계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서 스포티파이가 31.7%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2위는 텐센트 뮤직 14.4%, 3위는 애플뮤직 12.6%로, 스포티파이의 점유율은 꽤나 압도적인 수치입니다.
스포티파이의 인기비결 중 하나는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나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찰떡같이 추천해 준다는 점이죠. 저는 원래 애플뮤직을 사용하는데요, 오랜만에 스포티파이를 들어가보니 숏츠 기능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 노래에서는 후렴구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잖아요. 숏츠를 재생하면 노래의 후렴구부터 바로 들을 수 있어서 5~10초만에 내 취향에 맞는지 빠르게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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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순히 사용자의 노래 내역을 기반으로 한 수동적인 추천을 넘어서,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로 느껴졌습니다. 이미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익숙한 UX라 부담없이 접근할 수도 있었고요. 음악 앱에서 숏츠 기능을 접한 건 처음이었는데요, 사용자에게 더 나은 음악 탐색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시도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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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는 더욱 신중해지기 마련이죠. 옷을 고르는 일이 어떤 사람에겐 단순히 출근 준비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겐 그날의 기분을 결정하는 것처럼요. 또한,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있듯이 신중함을 타고난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우유부단함의 장점에 관한 연구 결과도 있더라고요. 연구원인 야나-마리아 혼스벤은 "망설임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쉼을 줄 수 있고, 세상의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이는 우리가 신중한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라고 말합니다. 결정을 내리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덧대고 싶었습니다. 오늘 레터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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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하은>의 코멘트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기 전 이어폰을 꽂고 산책하는 시간이 소중한 나날입니다. 요즘 산책할 때 즐겨듣는 노래인데, 뭔가 몽환적이면서도 청량한 느낌의 사운드가 너무 좋더라구요.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참고로 한글 제목은 ‘꽃사슴’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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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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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후니 • 찬비 • 식스틴 • 나나 •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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