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일본 영화 ⟪괴물⟫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얼마 전 감독과 두 주연 아역배우가 내한을 해 한국 관객을 만나기도 했는데요. 한 번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은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생소한 이름이더라도 송강호, 강동원, 아이유 주연의 영화 ⟪브로커⟫의 감독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실 것 같네요. 오늘은 영화 ⟪괴물⟫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연출한 영화를 소개하는 내용을 다루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거장이자 소외당하는 사회와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영화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연출자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떤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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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큐멘터리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 2. 사회파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3. 일본을 넘어 세계로,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사실 극영화로 커리어를 시작한 감독이 아닙니다. 그는 와세다 대학 문화부를 졸업하고 독립 프로덕션 TV Man Union에 입사해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커리어를 시작했죠. 고레에다 감독은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는 여러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피디였습니다. 그의 영화 연출, 카메라 앵글과 무빙을 모면 이 점이 뚜렷이 포착되기도 합니다. 유유하게 인물을 따라가면서도 대상화하지 않는 카메라 무빙은 고레에다 감독의 특징이기도 하죠.
그가 다큐멘터리라는 매체를 통해 포착한 인물들은 다큐멘터리가 으레 그러하듯 사회적 약자에 시선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표작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는 일본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미나마타병의 보상금 처리를 담당한 이상과 소명을 가지고 있었던 보건복지부 고위 관리 야마노우치의 자살. 다른 하나는 잘 나가는 호스티스였으나 말년에 복지급여가 끊겨 스스로 삶을 버린 여인 노부코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서로의 연관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두 사건을 병치시키며 일본 사회의 비정한 복지 시스템과 관료주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1994년엔 일본 내에서 처음으로 동성애 에이즈 환자임을 고백한 히라타 유타카에 대한 다큐멘터리 ⟪그가 없는 8월에⟫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여러 환경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오염은 어디로 갔는가⟫, ⟪또 하나의 교육⟫ 등이 대표적입니다. 장병원(전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DMZ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다큐멘터리스트로써의 그의 감각은 이후 그가 연출한 극영화에 전이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 같습니다.
“야마노우치는 복지 관료로서 이상과 소명에 헌신하지만 일본 사회의 현실은 이상과의 거리를 만들어낸다. 추념과 애도의 형식을 취한 이 영화는 옴진리교 사건을 소재로 한 ⟪디스턴스⟫, 스가모 어린이 유기 사건을 영화화한 ⟪아무도 모른다⟫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야마노우치의 미망인으로부터 받은 감흥은 ⟪환상의 빛⟫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고레에다 감독을 명명하는 여러 말 중 가장 흔하게 쓰이는 말이 바로 ‘사회파 감독’입니다.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여러 작품들이 일본 사회의 사각지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가모 어린이 유기 사건을 다룬 ⟪아무도 모른다⟫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감독의 작품입니다. 영화는 한부모 가정에 살고 있는 각기 다른 아버지를 둔 아이들의 이야기로 부모로 부터 방치된, 어쩌면 세상으로 부터 방치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주연배우 아기라 유아는 14세에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아무도 모른다⟫는 그가 생애 처음 본 오디션을 통해 뽑힌 영화였다는 점은 놀라운 비하인드이죠.
⟪아무도 모른다⟫ 외에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세 번째 살인⟫, ⟪어느 가족⟫ 등 그의 작품들은 거시적으로 하나의 사회적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미스터리물이 아닌 그 사건 안에서 사회가 주목하지 않는 것들을 길어 올립니다.⟪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산부인과에서 바뀐 자식을 키운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그래서 왜 아이가 바뀌게 되었는지라는 근본적 원인 따위를 깊게 다루지 않습니다.
영화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두 가족과 아이의 관계를 밀도 있게 다루고 있죠. 그중에서도 부성애는 찾아보기 어려운 아버지 노노미야가 아버지라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어가는 과정을 서정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회파 영화감독이라고 불리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는 선과 악의 구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는 배제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흔히 가해자라고 치부하며 이해할 필요 없다고 느꼈던 이들의 삶을 들춰보기도 하죠.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도 그렇습니다. 영화 ⟪기생충⟫의 전년도 수상작이 바로 고레에다 감독의 ⟪어느 가족⟫입니다. 영화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아이를 유괴해 키우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가족은 그 이유와는 상관없이 범죄자로 낙인찍히게 되죠. 누군가는 이 몇 줄만 읽고도 어떤 이유와 상관없이 아이를 유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겠지만 영화는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영화는 가정폭력을 당한 아이를 거두어 키우는 이 ‘어느 가족’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일본 사회 방치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을 영화 전면에 내세워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애써 무시해 온 그런 ‘어느 가족'을 다루고 있는 셈이죠.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세 번째 살인⟫은 어쩌면 사회파 감독이라는 명칭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인지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 살인⟫은 승리밖에 모르는 변호사 ‘시게모리’가 자신을 해고한 공장 사장을 살해하여 사형이 확실시되고 있는 인물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미스테리극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이 변호사로 변호사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화는 ‘진실'은 법정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 살인⟫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우리가 흔히 ‘진실’이자 ‘절대 선’으로 여기는 법정과 그 시스템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하는 영화입니다.
일본을 넘어 세계로,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 ⟪괴물⟫ 이전 고레에다 감독이 연출한 작품은 ⟪브로커⟫입니다. CJ ENM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영화 ⟪브로커⟫에는 국내 정상급 배우들이 총출동합니다.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아이유), 이주영이 출연합니다. ⟪브로커⟫ 개봉 당시, 영화를 일본 감독이 연출했다는 사실에 놀라는 이들을 종종 목격하고는 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원정 연출은 ⟪브로커⟫만이 아니죠. 그 전에 이미 프랑스에서 프랑스 배우들과 영화를 연출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브로커⟫가 개봉하기 3년 전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라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괴물⟫이 나오기 전까지 연달아 두 작품을 자국이 아닌 해외에서 연출했다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두 작품 모두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던 것은 아닙니다.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었죠. 하지만 다시 자국으로 돌아와 연출한 영화 ⟪괴물⟫을 선보인 후 감독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바로 뒤집어 졌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이 다시 돌아왔다며 감독의 오랜 팬들은 영화 ⟪괴물⟫에 열광했습니다.
감독의 이번 작품에는 그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영화의 극본을 스스로 써왔던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는 전적으로 연출을 맡았다는 점입니다. 이번 영화의 극본을 맡은 이는 사카모토 유지로 일본 내에서 여러 히트작을 탄생시킨 인물입니다. 대표적으로 국내에서도 리메이크 된 이보영 주연의 드라마 ⟪마더⟫ 그리고 평단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작품 ⟪그래도, 살아간다⟫등을 집필한 거장입니다.
국내에도 출간된 감독의 자서전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본다면 감독이 영화를 찍으며 고민한 지점들과 연출법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작업자의 진정성과 그 진정성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해 드리는 책입니다.
Edited by. 구현모
𝗦𝗼𝘂𝗻𝗱𝘁𝗿𝗮𝗰𝗸ㅣ괴물 (Monster 怪物 , 2023)
에디터 <식스틴>의 코멘트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영화음악 작업이 바로 이 영화 ⟪괴물⟫입니다. 이제 그의 작업물을 들을 수 없다는 점은 너무나도 아쉽고도 슬픈 일인데요. 이번 영화 ⟪괴물⟫의 사운드트랙을 듣는다면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