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보기엔 찜찜한 그런 거 아시죠 안녕하세요, 에디터 구현모입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콘텐츠에 높은 윤리적인 기준을 들이대지 않습니다. 소위 기사로 '논란'이 생길지언정 콘텐츠 내부적 맥락에서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자유가 허용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최근 따라 스스로에게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완전한 허구의 캐릭터와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실존 세계에서 일어난 현상을 다루는 콘텐츠도 동등한 잣대를 들이밀어도 되냐는 의문이죠. 오늘은 범죄를 소재로 한 예능과 다큐멘터리에 대해 시청자로서 느끼는 윤리적 고민을 말해보고자 합니다. |
|
|
1. 범죄를 재구성할 것인가 아니면 재정의할 것인가? 2. 객관적인가요, 주관적인가요? 중립이라는 환상 3. 범죄 콘텐츠와 보는 이의 윤리 |
|
|
🗼범죄를 재구성할 것인가 아니면 재정의할 것인가? |
|
|
최근 몇 년간 범죄 다큐멘터리와 범죄 예능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 카테고리의 메인 쇼였지만 지금은 《용감한 형사들》, 《스모킹 건》, 《세계 경찰: 슈퍼 폴》, 《프로파일러》와 같은 다른 프로그램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Netflix 발 범죄 다큐멘터리의 영향, 폭력 범죄에 대한 대중의 불만 증가, 《공개 수배 사건 25시》 같은 범죄 프로그램의 역사적 인기 등이 모두 한몫했습니다.
전 세계 최초의 범죄 콘텐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의 미제사건 '잭 더 리퍼'가 그 주인공입니다. 1800년대 후반 성장하던 영국의 신문 및 잡지 산업은 당시 잭 더 리퍼 연쇄 살인 사건을 더욱 선정적으로, 더욱 자주 보도했습니다. 수백 년 전의 연쇄 살인 사건이 여전히 수많은 게임, 영화, 만화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유명해진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는 현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범죄 뉴스를 찾다 보면, 고속도로 등에서 범인이 도망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방송국에서 헬리콥터를 띄우고, 경찰과 범죄자의 추격을 실시간으로 보내면 시청률이 나오는 공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범죄자 조두순이 출소할 때 수많은 BJ와 유튜버가 현장으로 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작의 관점에서 볼 때 범죄 콘텐츠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상당한 이점도 있습니다. 범죄 수사의 특성상 정확한 정보 수집이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강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에 용이합니다. 그리고 범죄 프로그램에는 유명 연예인이나 정교한 세트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제작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합니다. 특히 실제 형사가 등장하는 경우 사전 취재에 들어가는 시간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
|
|
그렇다면 이 장르가 현재 한국에서 그렇게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청자 입장에선 시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분노와 욕망 그리고 희로애락은 대뇌의 '변연계'에서 주관하는데요, 자극적인 콘텐츠는 도파민을 분비합니다.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 보는 심리와 범죄 콘텐츠를 보는 심리는 궁극적으로 닮아있습니다. 실제 범죄를 소재로 한 콘텐츠는 도파민뿐만 아니라 인간 기저에 있는 두려움을 촉발하는데요, 시청자 입장에선 '안전한 두려움 (당장 겪는 두려움이 아닌, TV로 구현된 두려움)' 이기에 뒤틀린 기쁨이 주는 도파민인 셈입니다.
제작자 입장에선 앞서 말씀 드렸듯 제작이 용이합니다. 제가 언급한 콘텐츠들의 경우, 대형 연예인들도 없으며 야외 촬영도 없습니다. 제작비가 크게 들 일이 별로 없습니다. 제작비나 시청률 이외의 요인도 있는데요, 바로 정무적 리스크로부터 안전하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범죄는 시사교양국에서 다루는 TV 저널리즘에 속합니다. 방송국 중에서도 교양국에 소속된 PD들이 제작하는 콘텐츠입니다. 대명사가 된 《그것이 알고 싶다》, 《추적 60》, 《PD수첩》 모두 TV 저널리즘의 대표작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2000년 이후 한국의 TV 저널리즘 생산자들은 여러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합니다. 정권에 따라 언론사의 입지가 흔들리기에 제작 인력이 대량으로 퇴사하거나,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파업으로 인해 방송국 자체가 뿌리째로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교양국은 정치적 리스크로 흔들리고, 방송국은 재정적 위기로 흔들리니 결국 PD가 주도하는 TV 저널리즘이 축소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범죄 관련 교양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리스크도 덜하며, 화제성도 가져갈 수 있는 나름 최적의 포맷이었을 겁니다. 이후 이 장르는 예능으로도 확대되게 되고요.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플랫폼의 투자 유입도 국내 범죄 콘텐츠 증가를 더욱 촉발했습니다. |
|
|
🪐 객관적인가요, 주관적인가요? 중립이라는 환상 |
|
|
하지만 하나 물어봐야 합니다. 콘텐츠의 양은 증가했지만, 그 품질은 어떠할까요. 나아가 우리 사회는 이 '범죄 콘텐츠'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을까요?
최근 프로그램 《나는 신이다》를 둘러싼 논란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현재 해당 프로그램의 제작진은 성폭력처벌법 위반으로 송치되었습니다. 경찰은 제작진이 콘텐츠에서 성범죄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당사자 의사에 반하여 모자이크 없이 노출했기에 특별법을 위반했다고 합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경찰의 입장도 이해가 되며, 이에 크게 반발한 제작진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해당 콘텐츠는 영리 목적이었으며 당사자의 동의가 없었습니다. 물론, 이미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심사와 결정을 받고 공개되었으며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콘텐츠라는 맥락을 고려하면 참작할 여지도 있습니다.
전 여기서 큰 딜레마를 겪었습니다. 범죄자의 악랄함을 보여주기엔 그가 저지른 범죄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범죄 재현을 통해 피사체가 되는 사람들의 의견이 묵살된 것이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을 위해 제작 과정의 과오를 눈감고 넘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자문했는데,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벌의 정도는 검사와 판사 선생님들이 잘하시겠지만, 기본적으론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범죄 기반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풍경을 살펴보면 한 가지 명확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범죄 콘텐츠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객관적인 사실을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종종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우선시하며 완전하고 세밀한 이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것이 알고 싶다》는 '피프티피프티' 사태와 관련하여 한쪽의 의견만을 크게 담은 콘텐츠로 가수의 해당 방송국 보이콧까지 불러왔습니다. 결과적으로 경찰과 법원이 무죄로 판결 내린 사람을 특정 사건의 진범처럼 몰아가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범죄를 소재로 한 콘텐츠는 필연적으로 제작진의 열정은 물론이고, 꽤 깊은 감정이 수반됩니다. 취재 과정에서 여러 인물을 만나고, 그 인물들이 겪은 이야기를 들으며 일부 동화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취재 과정이 담보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 객관적이거나 정의로운 심판자 위치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그것 역시 충분히 주관적이고 편향적일 수 있으니까요. |
|
|
이에 따라 중요한 질문을 제기해 볼 수 있습니다. 콘텐츠 제작자는 이러한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 자신을 객관적인 심판자로 위치시킬 수 있을까요? 범죄 콘텐츠 제작자들은 종종 자신이 다루는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깊이 빠지게 되고, 이는 사건의 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시청자로서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편집자의 결정에 의해 형성된 주관적인 재구성이라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이때 콘텐츠 제작자의 윤리적 책임이 중요해집니다. 선정주의가 시청률을 높일 수는 있지만, 제작자는 자신이 공정하고 존중하며 진실하게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높은 시청률과 수익을 유지하려는 압박은 현실적이지만, 무책임한 스토리텔링의 결과도 그만큼 심각합니다. 실제로 진실을 호도시킨 경우도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의 윤리적 논의는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1960년대에 장 루슈(Jean Rouch)와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 같은 감독들은 실제 사람들을 화면에 담는 것의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고든 퀸(Gordon Quinn)은 피사체의 안전과 존엄성을 선정주의보다 우선시해야 한다는 '해를 끼치지 말라'는 원칙을 제시하며 오늘날 윤리 기준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 감독 샘 폴라드(Sam Pollard)는 강력한 장면이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감독의 개인적인 편견이 개입되면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윤리적 저널리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전 세계의 콘텐츠 제작자들이 신중하게 다뤄야 하는 문제입니다. |
|
|
《그것이 알고 싶다》 밀양 편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피해 자매가 직접 출연했기 때문입니다. 더 놀란 부분은 해당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 《한공주》부터 그들의 이름을 판 유튜버 모두 단 한 번도 그들에게 의사를 묻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모든 재현이 당사자의 동의 하에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일절 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제 놀라움은 KBS의 《스모킹 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최근 《스모킹 건》은 오원춘 사건을 다루었는데요, 해당 범죄 과정을 꽤나 생생하고 자극적으로 재현했습니다. 자극에 무덤덤하다고 자평하는 저 역시 "이건 너무 적나라하지 않나"라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피가 튀거나 잔인한 사진이 나오지 않지만,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이었습니다. |
|
|
범죄를 소재로 한 콘텐츠의 의의는 무엇일까요? 공분보다는 재발 방지와 범죄 피해자를 위한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켜서 관심을 환기하는 것도 훌륭한 기능이지만, 그 기능에만 집중할수록 방향을 잃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렉카'라는 콘텐츠에 가까워지면서,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와 존중도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 발짝 더 나아간 콘텐츠를 원합니다.
'매개체'라는 뜻을 가진 미디어의 본질에 충실하게 해당 문제의 당사자와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솔루션을 희망하는 거죠. 가치는 있지만 시청각적인 재미는 없으며, 사회에 의미는 있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콘텐츠가 거의 요식행위에 가까울 정도로 짤막하게 정책 전문가의 인터뷰를 넣습니다.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최소한이기에 아쉽습니다.
질문의 방향을 약간 틀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장면의 목격자인 우리는 죄가 없는 걸까요? 시청자로서 우리는 범죄자에게 분노를 표하고, 저런 놈들에게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거나 저런 놈들에게 세금이 들어가는 사회가 개탄스럽다고 혀를 쯧쯧 찹니다.
여기서만 끝나면, 더더욱 많은 제작자가 그저 자극에 충실하게 만듭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공분이 제도화되는 시스템입니다. 여러 명의 공분이 더 나은 제도를 만들 때만 범죄 콘텐츠는 유의미합니다. 결국, 미디어가 사회와 긴밀하게 소통해야만 하는 거죠. 태완이법과 정인이법이 그 예시 중 하나입니다.
* 태완이법 : 황산 테러로 어린이가 피해를 보고 사망하였으나, 범인을 잡지 못한 채로 공소시효가 지나 영구 미제로 남게 된 사건. 해당 사건이 촉매제가 되어 발의된 살인죄의 공소 시효를 없애는 법안
** 정인이법 : 16개월의 어린이가 아동 학대 탓에 사망한 사건. 아동 학대를 방지하기 위해 아동학대살해죄 신설, 아동 학대 신고에 대한 대처 등을 담아 발의된 법안 |
|
|
범죄 다큐멘터리가 해외에서 중요한 입법 변화를 끌어낸 사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 《가늘고 푸른 선(The Thin Blue Line)》은 잘못된 유죄 판결을 폭로하며 미국 사법 체계에 대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무고한 사람의 석방을 끌어냈습니다. 다큐멘터리 《살인자 만들기(Making a Murderer)》는 미국 사법 시스템의 결함에 대해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잘못된 유죄 판결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습니다. 또한 켄 번스(Ken Burns)의 다큐멘터리 《센트럴 파크 파이브(The Central Park Five)》는 사법 제도 내 인종적 편견을 강조하며 형사 사법 개혁 요구로 이어졌습니다. 영국의 다큐멘터리 《질 단도 살인 사건(The Murder of Jill Dando)》은 경찰 절차에 대한 감시와 수사 절차 개선을 위한 대중의 압력을 증가시켰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범죄 콘텐츠가 책임 있게 제작될 때, 의미 있는 사회적 및 법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범죄 콘텐츠는 재미있습니다. 피해자가 있는 범죄가 콘텐츠로 만들어지고 그것을 시청한다는 것 자체가 참 안전하고 따뜻한 온실에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재밌다는 감정 이후에는 무섭고, 씁쓸하다는 감정이 이어집니다. 범죄를 흥미로 소비하는 내 자신에 대한 반성과 범죄 콘텐츠에 나온 피해자들의 일상이 얼마나 복구되었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죠.
종종 생각해봅니다. 내가 피해자라면 자신을 둘러싼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말이죠. 제작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좋은 감정이 들 리는 만무합니다. 그렇기에 제작자와 시청자는 좀 더 진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공분이 아닌 공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목격자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의 위치 변화가 필요할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
|
|
에디터 <구현모>의 코멘트
《범죄도시 4》, 《베테랑 2》, 《조커 2》. 평론가가 좋은 후기 남겼다고 논란이 되는 세상이 참 논란입니다.
|
|
|
💌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
|
|
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하은 • 움큼
|
|
|
Copyright © AUGUST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