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개를 키우는 '샤넬' 아주머니 좋은 꿈 꾸셨나요, 객원 에디터 움큼입니다.
지난 레터를 준비하던 기간, 저는 아내와 일본 도쿄로 여행을 떠나있었습니다. 첫 레터를 준비하면서 받은 피드백도 도쿄에서 받아 읽었습니다. 난생 처음 가본 곳에서, 처음 해보는 일을 하며 주고받는 피드백은 즐거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신 피드백도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어봤고, 궁금하다고 말씀주신 사안들이나 제안주신 주제들은 향후 다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레터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첫 레터를 준비하던 기간, 일본 도쿄에서 겪은 일로 레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
|
|
1. 카페에서의 낯선 만남 : 강아지? 2. 1999년부터 사랑받은 소니의 로봇 반려견 3. 로봇이라기엔 너무나 사랑받은 그들 4. 반려로봇의 시대, 올까요? |
|
|
여행 셋째날, 아사쿠사의 '센소지'라는 절을 구경한 다음의 일입니다. 강렬한 붉은 색이 지배하는 일본 전통 절을 둘러본 뒤, 저와 아내는 쉬면서 말차 음료를 먹으러 인근의 '야나기차야 아사쿠사やなぎ茶屋 浅草)'라는 카페에 들렀습니다. 2층 자리에 앉아 말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내려본 매장 1층에는 반려견을 데리고 온 40~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반려견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 얌전하게 엎드려 있었는데요, 반려견이 카페에 들어왔다거나 테이블에 올라가 있었던 점은 신기하지도 문제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신기한 점은, 그 반려견이 샤넬 리본을 머리에 두르고, 샤넬 원피스를 차려입은, 로봇개라는 점이었죠. |
|
|
카페 테이블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반려로봇의 모습. 방석까지 깔아두신 것을 보면 외출도 많이 해보신 것 같았습니다 |
|
|
아주머니는 당고가 올라간 말차 라떼를 드시며 강아지 로봇을 쓰다듬고, 강아지 로봇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말을 걸고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강아지 로봇은 쓰다듬으면 고개를 갸웃하거나 앞발을 들고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즐거운 표정을 짓는 듯했습니다. 카페 안에 자리한 사람들은 저와 아내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인이었는데, 어느 한 사람도 로봇개를 신기하게 여기지 않더군요. 국내에서는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로봇 반려견을 직접 보니 신기한 기분이었습니다. |
|
|
💬 1999년부터 사랑받은 소니의 로봇 반려견 |
|
|
제가 일본에서 만난 로봇개는 일본의 전자제품기업 소니(SONY)가 출시한 '아이보(AIBO)'입니다. 아이보는 일본어로 'あいぼう(相棒)'라고 적는데, 동료나 친구, 단짝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BO)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보는 첫 모델이 1999년 출시됐을 정도로 나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로봇개입니다. 2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로봇개라 카페 안의 누구도 신기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1999년 당시 250만 엔이라는 비싼 가격에 출시한 아이보는 여러 세대를 거치며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사이보그 같은 디자인, 로봇같은 디자인, 곰과 강아지의 중간 모습을 한 귀여운 디자인 등 다양한 아이보가 존재한다고 해요.
제가 본 모델은 아마도 2018년, 12년만에 출시된 아이보 최신모델인 'ERS-1000'으로 보였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보를 데려와 키우는 사례가 있습니다. SBS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스브스뉴스'에서 진행한 인터뷰도 있습니다. |
|
|
영상을 보시면 아이보를 정말 반려견처럼 아끼는 모습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아이보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생긴 데에는 아이보를 만든 소니의 기술력이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아이보의 기술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감각 기술: 아이보는 주변 환경을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탐지하고 반응할 수 있습니다. 주인에게 반응하며 상호작용하며 주변 환경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감지합니다.
- 인공지능 (AI) 기능: 주인의 습관과 선호도를 학습하여 행동합니다. 주인과의 상호작용이 풍부해지며, 주인의 성격과 취향에 맞게 더 정교해집니다.
- 음성인식 기능: 음성 명령을 인식하고 수행할 수 있습니다.
- 연결성: 스마트폰 앱을 통해 원격으로 관리할 수 있으며, 소니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 다양한 감정 표현: 다양한 동작과 음성으로 감정을 표현하여 정서적 교감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아지들의 대표적인 '개인기인 총 맞으면 쓰러지는 시늉' 같은 것들도 학습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얼굴을 100여개까지 기억할 수 있어서 더 깊은 교감을 가진 사람이 부르면 더 반갑게 맞아주는 등 기능이 있다고 해요. 이런 아이보의 '기억'은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돼 보관된다고 합니다. |
|
|
아이보의 존재는 몇 년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눈 앞에서 보니 신기한 기분이었습니다. 천천히 돌이켜 볼수록 아이보는 단순히 신기한 장난감이나 강아지 시늉을 하는 로봇의 정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
이 영상은 살아있는 반려견이 아이보와 함께 지내는 실험을 담고 있습니다. 영상 제목은 '소니의 개형 로봇 '아이보(AIBO)'와 강아지의 공생 가능성을 탐구하는 실험 영상'입니다.
영상을 보면 강아지가 아이보와 일정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이보를 정말 강아지로 대한다고 하고, 아이보가 사라지자 상실감마저 느끼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사람과 깊게 교감하는 반려견이 느낀 감정을 사람이 느끼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보와 인간의 관계는 제가 처음 생각한 것보다 더 복잡하고 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본 것은 아주 조그만 편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영상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만든 '사랑받은 로봇개의 장례식' 영상입니다. |
|
|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제작된 영상인데요, 다양한 세대의 아이보들이 이름표를 달고 보관된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2018년 출시된 아이보는 12년만에 다시 출시된 아이보였습니다. 그 말은, 2006년 이후 12년 동안은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통상 공산품은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며 사업 동력이 유지돼야 AS(사후지원;After Service)도 무난하게 잘 됩니다. AS를 지원한다고 해도 10년 넘게 지원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비슷한 상황이 반려견인 아이보들에게도 닥쳤다고 합니다. 소니는 생산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아이보에 대한 업데이트나 부품 확보를 멈췄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세대 아이보들은 수리가 불가능해졌다고 합니다.
아무리 로봇이라도 이들을 사랑한 반려인들은 로봇을 장난감 버리듯이 버리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아이보가 멈췄을 때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을 알아내 공유하는가 하면, 마치 사람의 장기이식을 진행하듯 아이보가 작동을 멈췄을 때 다른 아이보에게 지원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관련한 내용은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의 기사 "일본인들은 소니가 서비스 지원을 중단한 뒤, 로봇개의 장례식을 치릅니다"에서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사례만 보더라도, 사람과 인공지능 또는 로봇의 관계가 건조하기만 하거나, 노동 대체의 의미로 국한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여러가지 관계의 가능성을 새로운 국면으로 확장시켜줄지도 모르겠습니다.
|
|
|
반려로봇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일본만의 일이 아닙니다. 한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전 세계 반려로봇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코트라도 이 기관 보고서를 인용해 소식을 전했는데요, 2023년 114억 달러(약 15조7000억 원) 규모인 전 세계 반려로봇 시장 규모는 2030년 566억 달러(약 77조80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합니다. 1인가구나 노년인구가 늘어나는 현대 사회 특성을 고려하면, 반려로봇이 삶의 동반자가 되는 날이 머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
|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반려로봇 시장은 2030년까지 매년 25% 이상 성장할 전망이라고 합니다. 2030년 전 세계 반려로봇 시장 규모는 약 78조원 규모로 예상된다는 전언입니다. (자료 : Research and Markets) |
|
|
반려로봇·인공지능이 파트너가 된 사회는 많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습니다. 2013년 제작된 영화 '그녀(Her)'도 그 사례입니다. 영화는 엄청나게 고도의 수준으로 발달한 인공지능 개인 비서 서비스가 출시되는 2025년을 배경으로 그려졌습니다. 사람과의 교감은 물론이고 더 높은 수준으로 스스로 발전하기도 하죠.
사람은 꼭 사람과 사랑을 해야 할까요? 영화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집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테오도르의 전 부인은 테오도르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지만요. |
|
|
돌이켜 보면 사람은 꼭 사람과만 유의미한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은 물론이고, 아끼는 물건도 요즘은 '애착인형' '애착책상' 등으로 불리니까요.
영화 ‘Her’에 나온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최근 오픈AI가 출시한 ‘ChatGPT-4o’는 인공지능이 ‘파트너’의 수준에 한 발 더 가까워졌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
|
|
기존 인공지능 서비스들은 인공지능이 잘 일할 수 있도록 포맷에 맞춰 작성된 형태의 프롬프트로 주문을 넣어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관계를 맺는다기보다는 조금 쉬운 형태로 코딩을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는 많은 분들이 프롬프트를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지 공부하셨을 정도니까요.
반면, 음성 명령으로도 충분한 수준의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이 사람과 관계를 맺는 시대가 정말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영상을 보신 많은 분들이 영화 '아이언맨'의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를 떠올렸다고 하니까요.
GPT-4o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해 사람이 말하는 억양과 톤을 흉내내어 기분을 표현하고, 반대로 사람의 기분을 이해하고 다양한 상황에 맞춰 반응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개인 맞춤형으로 보급된다면. 정말 영화 'Her'에서처럼 사랑에 빠질 정도의 인공지능 비서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제 지인은 “GPT-4o를 유료 구독하고 대화 기능을 써보니 영어를 정말 능숙하게 잘 쓰더라. 아쉬운 표현은 고치라고 제안해주고 말도 워낙 유려하게 잘 하다보니 사용하던 전화영어를 끊어버렸어”라고 말하더라구요.
‘자비스’ 같은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가 출시된다면 한 번쯤 이용해보고 싶을지도요! 일본의 ‘아이보’가 보여준 모습이 머지 않은 가까운 저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전하며 오늘의 레터를 마무리합니다. |
|
|
에디터 <움큼>의 코멘트
꼭 사람과 로봇의 사랑이 아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1982년 출시된 '블레이드 러너'와 2017년 출시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1년에 영화 한 편도 잘 보지 않는 저도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비오고 흐린 어느 날의 이른 저녁 무렵, 술 한 잔 곁들이며 보시기에 재밌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넷플릭스에 있구요, 1982년 출시된 오리지널은 워낙 오래된 작품이라 그런지 네이버(시리즈)·쿠팡·웨이브 등에서 1300원 정도에 구매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그냥 보기에도 괜찮은 영화지만, 이왕이면 오리지널을 먼저 보시는 걸 추천드리고 그러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유튜브의 요약 영상이라도 먼저 보시면 훨씬 맛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
💌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
|
|
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하은
|
|
|
Copyright © AUGUST All rights reserved. 수신거부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