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예능 콘텐츠를 대하는 자세
Zoe "매운맛을 너무 봤더니 이제는 순두부 같은 프로그램이 그리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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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Zoe입니다.
솔직히 고백할게요. 저 연애 예능 좋아합니다. ⟪나는 솔로⟫, ⟪환승연애⟫, ⟪솔로지옥⟫, ⟪하트시그널⟫등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방영할 때마다 놓치지 않고 꼬박꼬박 시청했던 열혈 시청자입니다. 그런데 있죠, 유독 이번 ⟪나는 솔로⟫ 16기 방송은 평소와 조금 다르게 와 닿았습니다. 무려 3개월간 프로그램 안팎으로 계속해서 논란이 이어지고, 여러 매체들이 이 논란을 재생산하면서 시청자 입장에서는 피로도가 느껴질 정도였는데요. 오늘은 이 논란을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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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솔로⟫, 화제의 중심이 되다
2. 한편으론 논란, 뒤집으면 화제성
3.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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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나는 솔로⟫ 보시나요? 최근 무슨 자리에 가던, 어떤 사람들을 만나던 ⟪나는 솔로⟫가 화두에 오를 때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번 ‘16기’ 방송이 특히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었는데요. 보통 7~8개 정도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지던 지난 기수와는 달리, 이번 16기는 무려 11개의 에피소드로 제작되어 약 3개월간 장안의 화제로 등극했습니다.
16기의 최종 대단원을 장식했던 지난 10월 4일 방송은 닐슨코리아 집계 결과 평균 시청률 7.05%, 분당 최고 시청률 7.93%을 기록하기도 했죠. 본 방송 직후 유튜브에서 진행된 라이브 방송에는 25만명이 넘는 접속자가 동시에 몰리기도 했고요. 에피소드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16기가 방송되는 동안 시청률은 8%대를 돌파하며 ⟪나는 솔로⟫ 프로그램 방영 이래 최대 시청률 기록을 경신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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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아예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조금 설명을 드리자면, ⟪나는 솔로⟫는 싱글 남녀가 출연해 약 5~6일간 숙박하며 서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최종적으로 커플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방송 출연을 통해 일반인에서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출연하는 경우들이 잦은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나는 솔로⟫는 실제 결혼을 하고 싶은 남녀를 많이 선발한다는 이유로 진정성이 높은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죠.
출연자들의 직업도 엔지니어, 의사, 은행원, 인사팀 직원 등 다양합니다. 나이대도 20대에서 30, 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죠. 출연자를 선발하기 위해 면접을 보고, 그 면접과정에서 출연자가 답변한 내용들도 방송에 실립니다. 모태솔로 특집, 돌싱 특집 등 다양한 컨셉으로 방송을 진행하기도 하죠. 이번 16기는 이른바 돌싱 특집으로, 이혼 또는 사별의 이유로 돌싱이 된 이들이 출연해 짝을 찾는다는 컨셉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나는 솔로⟫가 화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출연자들의 논란을 다룬 나무위키가 따로 있을 정도로 그동안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2021년 첫 방송을 진행한 이래 ⟪나는 솔로⟫는 에피소드가 방영될 때마다 화제가 되곤 했지만, 화제가 된 이유의 대부분은 설레는 연애 스토리를 담았기 때문도, 결혼으로 이어진 커플이 탄생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죠. ‘빌런'이 탄생할 때마다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이어갔습니다. 그게 이번 기수에서는 극대화되면서 더욱 입방아에 오르게 된 겁니다.
16기 출연자들은 방송 촬영 당시 시작된 오해와 싸움이 현실로 번져 서로를 헐뜯거나 반목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줬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위 ‘빌런'이라고 칭해질 만한 캐릭터들이 여럿 발굴되며 뭇매를 맞기도 했고요. 뒷담화, 악소문이 만드는 웃지 못할 상황에 어떤 이들은 ‘연애 프로그램을 넘어선, 인류학 교재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사회 실험처럼 이들이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밑바닥을 보여줬다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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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동안 여럿 있어왔지만, ⟪나는 솔로⟫ 만큼 방송 출연자의 행동이나 언행이 화제가 되었던 프로그램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제가 될 발언은 편집없이 내보내고, 출연진들간의 갈등 장면에서는 자막으로 강조해가며 주의깊게 다루기도 하며, 예고편과 다시보기를 통해 여러 차례 장면을 반복하면서 다음 에피소드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해왔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출연자들을 더 아름답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타 프로그램에 비해, ⟪나는 솔로⟫는 영상미조차도 적나라한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타 콘텐츠들과의 차별성을 가진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모두가 입을 모아 "예능이 아니라 다큐"라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인간군상을 한데 모아 이들의 민낯을 필터링 없이 보여주는 것이 그동안 ⟪나는 솔로⟫가 취해 온 방식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남규홍 PD는 한 언론사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순화 편집은 방향만 맞으면 하지만 그게 내용이 부실하거나 왜곡되면 할 수 없다. 원칙은 가능한 정직하고 공정한 편집이고 그것이 더 출연자를 위한 편집이라고 본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일반인 출연자들이 행동하는 그대로를 담아내는 것이 출연자를 위한 편집이라는 주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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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화제가 되었던 연애 예능 프로그램 포스터. 홍보 포스터부터 그 프로그램의 기조가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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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런 기조 덕분일까요? 수많은 논란이 생겨나는데도 제작진은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거나, 시청자들이 오해하는 지점을 먼저 해결하려고 나선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 16기때도 그랬죠. 매 주차마다 ‘빌런'이 바뀌고, 출연자들이 네 명이나 사과문을 SNS에 게재하는 동안 제작진들은 묵묵히 침묵을 지켰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PD가 시청률과 화제성을 좇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솔로⟫와 같이 특수한 세팅에서 일반인 출연자가 보여주는 언행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이 제작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남규홍 PD가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촬영은 4박 5일 또는 5박 6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집니다. 마지막날 출연자들은 커플이 되고 싶은 사람을 ‘최종 선택’해야 하기에, 짧은 시간동안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대화를 이어갑니다.
출연자들이 술을 마시는 상황에 대해 제작진이 딱히 제지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첫 입소한 출연자들이 ‘(촬영하는 동안) 잠을 못 잔다기에 미리 준비하고 왔다'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도 종종 포착됩니다. 수십대의 카메라 앞에서 술을 마시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상황 속에서 일반인 출연자들은 긴장감과 해소감의 연속을 맛봅니다. 때문에 며칠밖에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운명'을 찾았다는 착각 속에 빠져들기도 하죠. ⟪나는 솔로⟫를 연출하는 제작진들은 이 모든 과정에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출연자가 어디까지 스스로를 보여주는지를 묵묵히 지켜볼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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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글즈 출연자가 밝힌 방송 이후 소회. 어쩐지 낯설지 않게 느껴지죠? © MB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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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 출연자의 논란에 대처하는 제작진의 소극적인 태도가 이슈가 된 것 역시 비단 ⟪나는 솔로⟫뿐만은 아닙니다. 리얼리티를 강조하면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이라면 한두번씩은 다 이런 이슈에 휩싸인 적이 있을 정도죠. 어찌보면 개인의 일탈일 뿐인데, 제작진이 왜 적극적으로 편집을 해가며 출연자들을 보호해 줘야 하냐는 의문을 던지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일반인' 출연자라는 점입니다. 출연계약서에 서명하고 자발적으로 촬영에 참여했을지라도 이들 중 대부분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반인이고, 방송 시스템과 매커니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라는 점이죠. 본인이 던지는 말 한 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 눈빛이나 표정 하나가 매체를 통해 어떤 파급력을 얻고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나는 솔로⟫는 짧은 시간 동안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 안에 출연자를 넣어두죠. 출연자들이 보여줬던 모습 중 분명 사회적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는 모습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때문에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출연자들도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반성한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기수 역시 예외는 아니었죠. 앞서 언급했던 극한의 세팅 속에서 나오는 모습이 정말로 그들을 대변할수도 있겠지만, 진짜 그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인지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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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제작진도 제가 앞서 언급했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지도, 아니면 지금 시청률 고공행진을 보면서 PD로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분명한 건 콘텐츠가 자극적일수록 시청률은 올라가고, 화제성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번 기수가 확실하게 증명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유형의 예능프로그램은 결국 타인의 생활과 행동을 엿보려 하는 관음적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빌런'을 보면서 타인보다 내가 낫다는 도덕적 우월감을 충족시켜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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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 또는 보이어리즘(voyeurism)이라는 단어는 타인의 사적인 활동을 몰래 엿보는 변태성욕장애의 한 유형을 일컫기도 하지만, 영상 콘텐츠의 매커니즘에 대해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로라 멀비(Laura Mulvey)는 본인의 논문을 통해 시선의 소유자는 시선의 대상을 효과적으로 전시할 수 있는 형식에 의해 작동한다고 보았고, 이는 기술적으로 관음적 기계 장치인 카메라에 의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카메라가 촬영하고 보는 대로 볼 수밖에 없도록 강요당하는 관객의 수동적 위치에 의해 시선의 대상은 특정 시선으로 전시된다는 거죠.
로라 멀비는 영화의 특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보이어리즘의 개념을 도입했지만, 작가나 감독에 의해 연출된(staged) 것이 아닌 관찰 예능 프로그램 포맷이야말로 관음증적인 욕구를 극적으로 충족시켜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적 영역을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충족시켜 미디어 이용에 더욱 만족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계속해서 나왔던 것 역시 이런 부분을 뒷받침합니다.
다수의 논문에서 언급되었듯 시청자들은 동일시하기 좋은 출연자들이 등장하는 콘텐츠에 더욱 만족을 느끼는 경향이 높습니다. 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대상이 적극적으로 배치되면서 프로그램과 시청자 간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거죠. 게다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는 관찰자적 시점을 제시하는 연예인 패널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그야말로 관음적인 시선으로 출연자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죠. 기계적 카메라에 의해 편집된 시선, 그리고 패널들에 의해 편집된 시선을 통해 시청자는 출연자에게 접근하고,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평가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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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카메라가 보여주는 일부의 모습을 봅니다. (프레이밍 이론/framing theo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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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가 비판적인 입장에서 콘텐츠를 봐야 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생산자가 아무리 공정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현실을 담아내려 한다 할지라도, 러닝타임에는 한계가 있고 카메라 안에 담기는 내용은 결국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방송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출연자를 고르는 그 시점부터 이미 PD의 연출적 시각이 개입되고, 어떤 구성의 출연자들을 한데 모아둘지, 그리고 여러 커플 중 어떤 커플의 이야기를 비중있게 다룰지를 결정하는 시점에서 이미 객관성과 공정성은 상실되고 생산자의 관점이 개입되기 마련입니다. 카메라는 기계장치일 뿐이지만 카메라를 잡고 있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클로즈업되는 장면과 그 영상의 길이를 통해 우리는 생산자의 의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출연자가 일반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에 면죄부를 부여해주자는 게 아니라, 이 콘텐츠 역시 제작진에 의해 매개된 현실(mediated reality)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 콘텐츠가 달콤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우리의 가장 깊숙한 욕망 중 하나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은 그동안 사랑받았고, 앞으로도 사랑받을 포맷 중 하나일 겁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수많은 논란도 어쩌면 계속해서 이어지겠죠.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이 계속되는 '마라맛' 논란에 피로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방송 과정에서 상처받고 고통받는 출연자들을 양산하지 않으려면, 어떤 시선으로 이들을 지켜봐야 할지 고민해야 할 타이밍이 아닐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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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Zoe>의 코멘트
그러고보면 저는 레터에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의 중요성에 대해 종종 언급해왔던 것 같습니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진실을 보고, 내가 본 진실이 전부인지에 대해 돌아보는 건 지금과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더욱 중요한 기술이니까요.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개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지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읽고 싶은 것만 읽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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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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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후니 • 찬비 • 식스틴 • 나나 •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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