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WWDC가 뭔데?

그래서 이번 WWDC에서 주목하는 점은?

이번 6월 5일에 열리는 WWDC에서 주목하는 점은 애플의 MR 헤드셋이 드디어 공개될지입니다. 기대만큼 성장하고 있지 않은 VR & AR 기기 시장(22년 전 세계 기기 출하량이 12% 줄었다고 하죠)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지가 관건입니다.

여기서 MR이 뭔데? 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MR을 설명할 때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먼저 AR은 현실 위에 가상의 디지털 콘텐츠를 띄우는 기술입니다. 반면 VR은 만들어진 온라인 가상 공간에서 실감 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이에요. 예시를 들자면, 구글맵의 라이브 뷰(카메라로 건물 등을 비추면 건물명/도로명을 보여주는 서비스)나 포켓몬 Go 등이 AR 서비스이고, 헤드셋 기기를 끼고 즐기는 대부분의 360도 몰입형 게임은 VR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MR은 ‘혼합현실’로, AR과 VR가 합쳐진 개념입니다. 현실 세계와 가상현실을 합쳐서, 현실 세계의 콘텐츠와 가상의 콘텐츠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요. 

‘14년 초부터 이러한 기술들을 상용화하는 데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어요. 삼성은 오큘러스와 협력해 ‘14년 9월 머리에 착용하는(HMD, Head Mounted Display) 기어 VR 기기를 출시했고, 구글은 ‘16년 자사 개발자 컨퍼런스 I/O에서 ‘데이드림’이라는 가상현실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Facebook은 ‘14년 Oculus를 인수한 후 ‘17년 Oculus Go를 발표했어요. 삼성과 구글은 이후 VR 기기 지원 중단, 데이드림 프로젝트 중단을 발표하며 발을 뺐으나 Facebook은 이후 ‘21년에 사명을 Meta로 변경하며 가상현실 중심의 회사로 방향성 변경을 발표하게 됩니다.

현재 VR기기 시장은 75%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Meta의 Quest 기기, 중국 Bytedance 자회사인 Pico 의 Pico 기기, Sony의 Playstation VR 등이 나눠 가져가고 있어요. VR 기기는 점점 더 경량화되고, 초기 단점이라고 여겨지던 멀미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개발이 진행되었지만, 콘텐츠 측면에서 게임 외로는 크게 사용할 만한 콘텐츠는 나오지 못하고 있어 ‘더 나은’ 게임 콘솔기기로도 여겨지고 있는 현실이에요. Meta는 게임 외의 콘텐츠 측면에서, 탄탄한 SNS를 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는 Meta Horizon 등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하고 있지만 아직 기기 수익 외로는 손실만 증가하고 있으며 성공 가능성도 작게 점쳐지고 있어요. 그다음 순으로 시장을 나눠 가져가는 Pico 도 마찬가지입니다. 

AR의 경우 글래스 형태로 여러 번 구상되었지만, 아직 기술적 한계로 주목받을 만한 출시는 없었고, MR기기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가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홀로렌즈는 기업용으로 ‘16년 출시한 이후 30만 대를 팔았지만, 이 중 절반 이상은 미군에 팔린 것으로 알려져 판매량도 용처도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홀로렌즈 다음 버전이 대중 타겟으로 개발될 거라는 말도 있었지만, 최근 AR/VR 팀을 줄이고 해당 사업을 중단한다는 루머도 돌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렇게 VR/AR/MR 모든 분야에서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애플은 적어도 7년 동안 혼합현실 기술을 개발해 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5년에 아이폰을 삽입하여 모니터로 활용하는 VR 기기 형태에 대해 특허를 얻은 것이 알려진 이후, '17년 증강현실 개발 도구인 AR Kit 공개, '17-'20년 관련 기업 인수 (ex. '20년 Space 인수) 등 꾸준히 관심을 표명해 왔죠. 다만 '19년에 출시를 목표로 한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연기되었고, '22년에 애플 AR 글래스가 공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기술적인 이유로 공개되지 않는 등 실제 상품 출시는 미뤄져 왔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23년 6월 5일 WWDC에서 RealityOS와 함께 AR/VR을 혼합한 MR 헤드셋(Reality Pro)이 발표될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어요. '23년 3월 GQ와의 인터뷰에서 팀 쿡이 MR 헤드셋에 대해 언급했기도 하고, 그 달에 스티브잡스 극장에서 약 100명의 애플 최고위 임원들을 대상으로 MR 헤드셋을 시연하기도 했죠.

VR/AR/MR은 현재 기술에 대한 관심이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의 다음 단계가 될 것이다’라는 기대만큼 혁신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애플이 이번에 MR 헤드셋으로 시장에 새로운 혁신을 제시하고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인 거죠.

애플의 MR 헤드셋 내 화면 상상도는 아래와 같아요. 아이패드의 모든 앱을 2D 형식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예상되고, 별도의 컨트롤러 없이 12개의 내장된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핸드 트랙킹/아이 트랙킹/음성 인식으로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외부 카메라를 통해  VR 화면에서 벗어나 주변의 실제 환경을 볼 수 있게 하는 패스스루(Pass-through) 모드를 지원한다고도 하고요. 기기 자체의 무게는 약 200~300g으로 예상되는데, 약 600g인 Pico 신형과 700g 수준인 Meta Quest Pro 신형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수준입니다. 두 개의 4K 지원 Micro-OLED 디스플레이를 사용하여 지원하는 화질도 높을 것이며 120도 시야각을 제공하여 높은 몰입감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돼요.

그래서 이번 MR 헤드셋 출시는 또 다른 ‘아이폰 모멘트'가 될까요?

업계의 의견은 양분되어 있어요. 애플의 삽질이 될 것이라는 의견과, 또 다른 혁신이 될 것이라는 의견으로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애플의 삽질이 될 것이라는 의견부터 말씀드리면 시장 수요 대비 높은 가격 때문입니다. 애플 헤드셋 가격이 3천 달러가 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죠. 애플 기기 중 가장 비싼 맥 데스크탑이 1,699달러라는 걸 생각해 보면 3,000달러 가격은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잘 팔릴 수 없는 가격이기는 합니다. Meta에서 최근 출시한 고급형 기기인 Quest Pro도 1,499달러로 출시했다가 999달러로 가격을 내린 바 있어요. 정확하지 않은 수요에 대해 터무니없이 비싼 제품을 내놓는 것에 대해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먼저 애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애초에 이번 1세대로 대중화를 노리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여요. 

애플은 매출 구조상 아이폰 의존도가 높습니다('22년 매출의 52%가 아이폰에서 왔어요.). 그렇지만 스마트폰 시장은 성장이 더뎌지고 있으며(전 세계 출하량으로 보았을 때 매년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여러 값싼 기기와 함께 등장하는 사업자들이 넘치는 경쟁 포화 상태입니다. 이러한 구조에서 새로 제시하는 폼팩터가 MR 헤드셋인 만큼 이번 제품은 중요한 기점입니다. 

정말 바로 당장 1세대로 컴퓨터나 핸드폰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효과를 노렸다면 출시가가 3천 달러 수준으로 추정되지 않았을 거예요. 기기 스펙을 낮춰서라도 낮은 가격대에 발표하거나, 아니면 기술이 무르익을 때까지 무기한 연장했을 겁니다.

1세대 출시 후 Apple이 1년간 예상하는 출하량은 100만 대 정도 ('22년 아이폰 출하량은 2억 2천만 대 수준)인데 이는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물량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애플이 이번 MR 헤드셋을 통해 목표로 하는 부분은 마케팅 측면에서 기술 혁신을 선보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1세대로 시장의 기대감을 높이고, 개발자 대상으로 OS를 선보여 전용 서비스를 더 확보한 후 저렴 모델로 대중화를 노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Bloomberg의 Mark Gurman에 따르면 ‘24년 혹은 ‘25년 초에 더 낮은 가격의 MR 기기가 계획되어 있다고도 하고요. 

두 번째로는 차별화할 수 있는 포인트가 확실히 있다는 점입니다. 

먼저 서비스적 강점이 있습니다. 애플은 게임 콘솔 기기로 주로 사용되던 헤드셋 기기에 게임 외적 사용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Pool을 이미 보유하고 있어요. 아이폰, 아이패드에 올라가는 자체 서비스(뮤직, TV+, 인터넷, 메시지, Facetime, 캘린더, 맵,피트니스 +, 아케이드, 금융서비스 등) 뿐만 아니라 앱스토어를 통한 3자 앱 사용도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Meta와 Pico가 새로 VR용 앱스토어를 만들며 원점부터 시작해야 했던 것과 달리 애플은 이미 약 200만 개의 앱이 등록된 앱스토어로 서비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수량도 수량이지만, 없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객이 평상시에 익숙하게 사용해 오던, 수요가 이미 있는 서비스를 확장해 제공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큰 강점을 가지고 있어요. 팀 쿡 체제의 애플은 지금까지 새로운 기기를 낼 때 하나의 킬러 서비스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지원하는 점을 중점으로 해왔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애플의 새로운 MR 기기도 이러한 기보유한 자산을 활용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애플 자체 서비스 같은 경우는 MR 환경을 위한 최적화가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 예로 루머에 따르면 애플은 제작하고 있는 애플 TV+ 오리지널의 콘텐츠를 기기에 맞게 변용하려고 하고 있고 디즈니, 돌비 등과 몰입형 영상 개발 논의를 하고 있다고도 해요. 기존 이미지 스크린을 크게 보여주는 수준이었던 VR 영상을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할지 기대가 되는 부분입니다. 

자체 OS와 연속성(Continuity) 기능으로 기존 타 기기가 가지고 있는 사용 경험의 한계를 넘을 수 있을 것으로도 보고 있어요. 

Meta가 발표한 신형 디바이스인 Quest Pro를 보면 세 개의 버추얼 확장 데스크탑으로 업무를 할 수 있는 모드를 제공하지만, 컴퓨터에 앱을 설치한 후 앱 기반으로 컴퓨터 화면을 확장 스트리밍하는 수준입니다. 정해진 스크린 수와 구획 외의 작업이 어려우며 여러 앱을 동시에 띄워놓고 조작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기능이 지원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 컴퓨터나 핸드폰에서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일상적인 업무를 하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Meta가 자체 OS가 없어 (안드로이드 OS를 활용하고 있어요.)최적화된 플랫폼을 구축할 수 없기 때문으로 봅니다. 이 부분은 Pico 4도 마찬가지로 버추얼 데스크탑 정도로만 제공하고 있어요. 

애플 MR 헤드셋이 별도의 컴퓨터 없이 맥과 같은 환경을 제공하고, 확장된 화면에서 여러 개의 앱을 동시 조작 또는 작업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기기들과 차별화된 혁신일 것입니다. 애플은 자체 OS와 서비스를 통해 그 부분을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연속성이란 여러 기기 간에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기능을 의미하는데요, 이 기능을 통해 조작 측면에서 더 자연스러운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현재 예상되는 부분은 카메라와 센서를 활용해 물리 컨트롤러 대신 트랙킹 기반의 조작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Pico 의 신형 디바이스 Pico 4, Meta의 신형 디바이스 Quest Pro 모두 핸드 트랙킹 기능을 제공하긴 하지만 보조 컨트롤러 없이는 사용할 수 없거든요.

현재 애플 MR 헤드셋은 핸드 트랙킹 기반으로 손동작 제스처와 에어 타이핑 기능(눈동자의 움직임과 손동작을 인식해 키보드 없이 공기 중/표면 위에서의 타이핑 지원)을 제공할 것으로 얘기되고 있어요. 컨트롤러가 없어 손이 자유로워지고 미세 컨트롤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장시간 사용에 있어 피로감을 줄 수 있다는 단점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연속성 기능을 활용하면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 더 풍부한 조작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애플은 '14년 핸드오프 기능(기기 간 전환하여 연속 이동, 작업할 수 있는 기능), 여러 기기의 OS 개발에 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개발언어 Swift를 공개한 이후 지속 발전시켜 왔는데요, 근 2년간 WWDC에서 연속성 기능의 고도화를 중점적으로 발표해 왔어요. 그중 주요 기능으로는 Universal Control과 근거리 상호작용 강화가 있습니다. 

Universal Control은 ‘21년에 발표한 기능으로 하나의 마우스/키보드/터치패드로 여러 기기 화면(맥-아이폰-아이패드)을 오가며 동시에 작업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근거리 상호작용 기능은 애플 워치, 아이폰 등에 들어있는 U1 칩*을 활용하여, 같은 공간의 기기를 인식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제스처를 통해 근처의 전구 등을 끄거나 노래를 켜는 등 조작할 수 있도록 고도화되었어요.

*U1은 초광대역 기반의 칩으로 기존 아이폰의 Air drop 등에서 주변을 인식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러한 기능들은 '23년 3월 애플이 낸 특허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특허대로 연속성 기능을 MR 헤드셋으로 확장한다면, 기존의 핸드 트랙킹 기반의 제스처 컨트롤에 더해 사용자가 맥락에 따라 다양한 조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제스처가 불편하고 물리적 조작 방법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맥을 기반으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조작하고 MR 헤드셋을 확장 모니터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패드나 아이폰과의 연결성도 고려하면 아이패드 펜슬로 그림을 그리고 필기하거나 아이폰 터치스크린 키보드로 입력하는 등 사용 맥락에 따른 다양한 조작도 가능해 보입니다. 이러한 조작 방식을 같이 제공하게 되었을 시 기존 VR 기기가 보조 컨트롤러로 제공하지 못했던 다양한, 자연스러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강점이 있어요.  

또한 손동작 제스처로 가상 물체만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물체의 조작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 풍부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연속성 기반으로 아이클라우드에 저장된 음악을 손짓해서 옆의 홈팟에서 재생되게 하거나, 맥에서 작업하던 내용을 MR 헤드셋으로 옮겨 더 큰 스크린에서 작업하는 등의 그림을 상상해 볼 수 있어요. 

이처럼 이미 보유한 자산과 기술을 통해, 당장 1세대로 대중화는 하지 못하더라도 일상생활 중에서 MR 헤드셋이 현실적으로, 자연스러운 맥락 하에 사용되는 시나리오를 애플이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공한다면 가상현실이 게임 중심으로 활용되는 현 시장에서, 시장에 파장을 일으키는 혁신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애플 MR 헤드셋이 어떻게 발표될지 모르지만, 이미 시장은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먼저, '23년 2월 삼성-퀄컴-구글이 혼합현실을 위한 파트너십 체결을 발표했어요. 삼성과 구글은 각각 기어 VR, 데이드림 VR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으나 '19년도 이후로 중단했던 부분인데, 애플의 헤드셋 출시 소식에 대한 경쟁 대응 측면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미 타 VR 기기에 적용되고 있는 퀄컴의 기술, 삼성의 기기, 구글의 스토어 및 소프트웨어 기반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인데 이렇게 되면 Meta, Pico, Sony와 달리 애플과 맞대응할 수 있는 그림입니다. 아직 기기 개발이나 발표 계획보다는 파트너십 발표의 수준이지만, 애플 헤드셋이 시장을 설득할 만한 그림을 보여준다면 시장 내 경쟁이 생각보다 빨리 불붙을 수도 있겠습니다.

과연 생각대로 이번 WWDC에서 애플이 MR 헤드셋을 발표할지, 애플이 그리는 미래는 어떨지 구독자분들도 저와 함께 같이 6월을 주목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