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완전 대한민국 축소판
구현모 "돈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광고주 여러분들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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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누가 봐도 바쁘게 작업할 것 같은 배우들이 할 일이 없어서 쉬고 있다는 기사였죠. 그와 동시에 제 지인들에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태프 기준으로 드라마와 영화판의 처우 자체는 많이 살만해졌으나, 전체적인 일거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요.
스태프들의 대우는 아주 좋아졌고, 제작비 규모도 커졌고, 콘텐츠 흥행의 고점은 정말 높아졌으나 정작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체감 일거리가 줄어들었다는 현실. 이게 궁금해서 조금 더 알아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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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 효과란 무엇인가
2. 웹드라마와 신규 IP의 실종이 보입니다
3. 진짜 문제 : 뉴비의 등용문이 안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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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게는 아마존 효과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아마존이 시장에 침투해서 새로운 시장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하죠. 아직 넷플릭스에게는 그러한 고유 명사는 없으나, 한국의 콘텐츠는 넷플릭스 전후로 분명히 나뉩니다.
우선, 넷플릭스 덕분에 드라마판과 영화판이 섞였습니다. 영화만 찍던 배우들이 드라마를 찍고, 영화에서 경력을 쌓던 감독 및 작가들이 드라마로 넘어오기도 했죠. 콘텐츠라는 큰 점에서는 같으나, 영화와 드라마는 제작비 규모부터 문법 그리고 제작 방식도 다른 명백히 다른 장르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무너질 뿐만 아니라 무의미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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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신인상 후보 《삼식이 삼촌》 © 디즈니플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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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제작비의 기준이 많이 올라갔습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2021년까지 회당 약 10억 원에 달했던 드라마 평균 제작비는 23년 기준 20억 원까지 무려 2배나 올랐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커진 제작비를 방송국이 맘 편하게 소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플랫폼으로 눈과 귀가 쏠리죠. 결국 국내에서 이 정도의 제작비를 안전하게 감내할 수 있는 채널은 디즈니플러스와 넷플릭스 그리고 쿠팡 등 '쩐주'가 든든한 플랫폼밖에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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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방송국의 제작사 분리가 좀 더 가속화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한국 드라마를 연출하는 피디들 중의 적잖은 수가 방송국 정규직 PD였습니다. 쉽게 말해 KBS PD가 KBS 드라마를 연출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이제 유명 제작사가 콘텐츠를 제작하고 방송국에 납품하는 구조가 기본값이 됐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외주 제작사가 있었으나, 차이점은 CJ ENM의 스튜디오 드래곤을 시작해 방송국들도 제작사를 분리해서 운영하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넷플릭스와 디즈니에게 콘텐츠를 파는 게 쉽기 때문이죠 (tvN과 넷플릭스는 경쟁자지만, 스튜디오 드래곤과 넷플릭스는 협력 관계인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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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글로벌'이 기본값이 됐습니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드라마가 해외에 들어가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자막 등 시청 편의성도 낮았고, 이걸 제대로 볼 수 있는 경로도 적었습니다. 그런데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디즈니 플러스로 콘텐츠가 유통되면서 모두가 글로벌을 시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와중에 《오징어 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모두가 글로벌 성공 가능성을 주요 콘텐츠 제작 기준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종합되면서 아래와 같은 현상이 발생합니다. 우선, 글로벌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최고의 연출진을 모읍니다. 왜냐면 글로벌 성공을 위해서죠. 물론 출연 배우에게 두둑한 몸값을 챙겨주는 건 기본입니다. 이걸 감내하기 위해선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 등 해외 OTT의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좋은 대본과 배우들이 모두 그쪽으로 몰려갑니다. 넷플릭스에만 대본이 집중되는 현상입니다. 좀 옛날 표현을 쓰자면, 운동장 두 바퀴 돌릴 수준으로 제작진들이 줄을 섰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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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분명히 종식되었지만, 콘텐츠 제작 현장은 아직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대작 블록버스터들이 코로나로 인해 제작이 지연되거나, 제작은 다 되었는데 송출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소위 대장급 작품들의 방영과 개봉이 밀리자 경쟁을 피하고자 방영을 늦추기도 했고, 제작 자체가 지연되기도 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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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국내외 플랫폼들이 특정 장르 콘텐츠들에 투자를 접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숏폼 웹드라마였습니다. 약 10년 전만 하더라도, 페이스북 등에서 '콬TV' 등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플레이리스트와 와이낫미디어의 경우 페이스북의 성장과 함께 수백만 뷰를 얻으면서 국내에 '웹드라마'라는 이름의 대명사가 되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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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두 회사, 어떻게 되었을까요? 두 회사 모두 연달아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플레이리스트는 2020년부터 꾸준히 손실을 보고 있고, 벤처확인기업 공시에 따르면 와이낫미디어도 올해 영업익이 -72억에 달했습니다. 이 시장이 크고 있다면 분명히 다른 사업자들도 생겨야 할 텐데, 웹드라마를 내세운 제작사들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적당한 연출력이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더 작은 규모의 시트콤을 유튜브에서 만들고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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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FX 회사들도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 덱스터와 위지윅 스튜디오 모두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더 상황이 힘든 건 이것보다 작은 제작사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블록버스터를 소화할 수 있는 제작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시도와 생존이 가능하나, 그것이 소화가 안 되는 소형 제작사들은 힘든 경기 상황과 더불어 인공지능에 대체되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도 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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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은 코미디인데 내용은 한국 콘텐츠의 위기를 담고 있답니다 © 삼프로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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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이슈는 바로 신규 IP입니다. 오징어게임 이후로 한국 드라마 판에서 새롭게 만들어져서 큰 성공을 거둔 IP가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는 IP는 하나의 완결된 드라마가 아니라 스핀오프까지 가능한 수준의 콘텐츠입니다. 최근 흥행한 《기생수 : 더 그레이》는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최근 여러모로 화제가 된 《종말의 바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흥행한 《삼체》 등을 보면 넷플릭스의 방향성 자체가 글로벌 IP를 능력 있는 제작자들과 엮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줄이겠다고 했는데요, 이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것은 1) 검증된 IP를 2) 가성비 있게 만드는 제작진과 합치는 것이죠. 이 현상이 계속된다면, 아마 신규 IP보다는 더 가성비 있게 만드는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게 될 듯 합니다.
여기까지 종합해 보면 아래 4가지 포인트를 알 수 있습니다.
1) 코로나로 인해 전체적으로 제작과 방영이 지연됐고
2) 그 와중에 글로벌이 화두가 되면서, 글로벌에 소구할 만한 규모와 배우 그리고 연출진들 중심으로 콘텐츠가 제작되면서
3) 신규 IP를 비롯해 중소형 드라마가 실종되기 시작했습니다.
4) 여기서 또 하나의 충격이 있었으나, 바로 웨이브와 티빙의 합병입니다. 현재 웨이브와 티빙은 합병을 전제로 협상하고 있는데요, 이 말인즉슨 시장에 또 하나 사줄 큰손이 사라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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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과 드라마판의 경계는 무너졌고, 제작비라는 자본은 더더욱 블록버스터에만 몰립니다. 이 과정에서 소위 검증된 인력에게는 기회가 가지만, 소위 말해서 입봉을 꿈꾸는 '뉴비' 제작진들의 등장은 더더욱 어려워질 겁니다. 과거 방송국 PD들이 드라마 등을 제작할 때는 나름 후배들을 챙겨주면서 입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방송국과 제작사가 분리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런 분위기는 없어졌죠. 포트폴리오가 있는 경력직은 취업이 잘 되지만, 아무것도 없는 신입은 취업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숏폼 드라마 제작사들도 위기에 빠지면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름 좋은 디지털 웹드라마 입봉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이런 곳들이 운신의 폭을 좁히면서 새로운 연출진이 두각을 드러내기도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신진 작가, 신예 프로듀서, 새로운 연출진과 배우들이 얼굴을 비추거나 경력을 쌓을 만한 공간이 없어졌습니다. 국내 예능과 드라마 사의 기라성 같은 작품을 내놓은 PD들이 만든 회사들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한국의 콘텐츠는 정말 훌륭한 콘텐츠 공장이었습니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능력 있는 인재들이 등장하면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곤 했죠. 하지만 이제 뉴비들은 시장에 들어오기가 더욱 어려워졌고, 시장의 기회도 상위 1%에게만 돌아가기 시작했고, 이 현상은 더더욱 가속화될 겁니다.
오늘의 글은 어떠한 답을 내놓거나, 어떤 행동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주 어쩌면 한국 콘텐츠의 정점은 오늘일 수 있고 내일부터는 이 판도가 흔들리거나 아예 붕괴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약간의 걱정을 담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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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구현모>의 코멘트
시사기획 창에서 영화산업의 위기를 다룬 바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올해 극장을 딱 한 번 갔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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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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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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